15. 가족의 모습을 한 가족

그 속에 내 자리도 있을까

by 새록

철컥-

“Hi Marcy! Good to see ya!” (안녕하세요 마시선생님! 반가워요!”) 풍채가 큰 여자분이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Good to see you too, Ellen. Here, let me introduce Miss Choi from South Korea.” (저도 반가워요, 엘렌. 여기, 한국에서 온 아이를 소개할게요.) 마시 선생님은 내 등에 손을 대어 살짝 앞세우며 말했다.


그때 여자분의 뒤에서 장신의 남자가 고개를 빼꼼 내보이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You must be Ashley! We’re Ellen and Charlie.” (네가 애슐리구나! 우린 엘렌과 찰리야.)


“……….”


“….. come on, let me give you a hug.” (자 한번 안아보자.)


40대 부부로 보이는 그들은 둘 다 키가 굉장히 컸는데, 인사와 동시에 엘렌은 나를 덥석 품에다 끌어안았다.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면 몸을 최대한 움츠리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했던 나는 방어할 틈도 없이 눈을 질끈 감고 뻣뻣한 통나무가 되었다. 그녀의 넓고 푹신한 가슴팍과 퉁퉁한 팔이 내 몸을 감쌌을 때, 뒤에서 눈물을 훔치던 찰리의 모습의 흐릿하게 보였다가 이내 뿌옇게 사라졌다. 아마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머물게 될 방은 2층에 있었고 싱글 침대와 책상, 붙박이 옷장과 서랍장 등 필요한 것은 다 갖춰져 있는 아늑하고 좋은 방이었다. 어른들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방에 남아 배경음악처럼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방을 등에 메고, 또 손에 쥐고 한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똑똑-


“We’re heading out to school to pick the girls up. Would you like to come along?” (우리는 아이들 픽업하러 학교로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엘렌이 반쯤 열린 문틈으로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등에 메고 있던 백팩을 내려놓고 따라나섰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엘렌과 찰리는 조용할 틈이 없이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목소리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스스로를 모니카와 티파니로 소개한 중국, 대만 출신의 두 명의 언니들이 차에 올라탔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나를 중심으로 양쪽 옆에 한 명씩 탔는데, 이들 역시 가는 내내 엘렌과 찰리가 그랬던 것처럼 궁금한 것들을 계속 물어보았지만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온 모니카는 이 집에 가장 처음 왔던 홈스테이 학생이었고 인터를 거쳐 11학년이라고 했고, 티파니는 대만에서 왔고 인터에서 레벨 5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오며 가며 나를 본 적이 있다며 인터에서 가장 어린 여자애라는 얘기를 들어서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있던 그들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봤다면서 엽기적인 그녀, 대장금, 명랑소녀 성공기 등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놨다.


집에 도착해서 모니카와 티파니는 방에 가방만 던져두고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1층으로 내려가서 저녁 준비를 하는 엘렌을 돕는 듯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아래층에서 들리는 소리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마치 영화 속에서 볼 법한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졌다.


순간적으로 그 장면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하얀 벽 위로 문만 열면 보이는 나선형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가 달그락달그락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아빠는 맥주 한 캔을 손에 쥐고 준비된 음식을 나르고, 딸들은 부모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거리는 장면 속에 나도 간절히 들어가고 싶었다.


이미 달려 내려간 내 영혼과는 달리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날부터 한 마디도 못하게 됐다. 언제나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나는 항상 방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멍하니 책상에만 앉아있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말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있는 나를 제외하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빨리 감기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집에 오고 나서 주말이 몇 번이나 지났을까. 밤늦은 시간, 아래층 거실에서 엘렌이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찰리가 웅얼웅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I can’t. I just can’t” (난 못해. 그냥 못하겠어.)


“Let’s give her some time. You know she deserves that…” (시간을 좀 주자. 그 아이는 그게 필요하다는 걸 알잖아…)


“Yeah I know but I can’t live with her anymore...”
(응 알아 하지만 난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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