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람 Aug 12. 2024

성심당, 단단한 철학으로 국내 최고 로컬 브랜드를 굽다

기본기로 세우고 뚝심으로 완성한 로컬 브랜드의 자존심

내가 올초 가장 흥미롭게 본 기사를 꼽으라면 국내 주요 베이커리 브랜드인 파리바게뜨-뚜레쥬르와 성심당의 영업이익을 비교한 기사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과점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바 있을 정도로 프랜차이즈와 경쟁 시 결과가 불 보듯 뻔한 업종이기 때문이다.


흔히 동네 맛집과 프랜차이즈 간 경쟁을 '다윗과 골리앗'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그 비유처럼 성심당의 승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의외성을 안겨주었다.


성심당과 주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브랜드 실적 비교 (출처: 뉴스웨이)


물론 중소 빵집과 프랜차이즈의 사업 모델이 다르기 때문이라곤 하지만 모든 지역 명물 빵집이 성심당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내는 것은 아닐뿐더러, 브랜드 마케터로서 더 주목했던 것은 "역시 성심당!"이라며 반가워하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단순히 제품을 구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응원하고 옹호하게 되는 브랜드.


성심당이 마케팅의 끝이라는 '옹호(Advoacate)' 단계까지 갈 수 있었던 비결은 단단한 브랜드 철학에 있다.



성심당이 보여주는 브랜드 철학


56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가치


1) 맛있는 빵과 합리적인 가격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10년 후에 변할 것'보다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렴한 가격과 빠른 배송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 냈다.


누군가 성심당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다면 성심당은 맛있는 빵과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답할 것이다.


성심당 BI


한국전쟁 피난민이었던 부부가 성당에서 밀가루 두 포대를 받아 찐빵집을 시작한 것이 성심당의 모태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부는 찐빵집 이름을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뜻의 성심(聖心)으로 짓고, 팔고 남은 찐빵은 주변에 굶주린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56년 전 창업주 부부가 따랐던 성경의 한 구절은, 지금도 성심당의 사훈으로 남아있다.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십시오


빵집에서 실천 가능한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이라면 맛있는 빵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다.


실제로 성심당은 '가성비'가 좋기로 유명하다. 한국은 유독 빵값이 비싼 데다가, 유명세를 좀 탔다는 디저트 가게에서는 식사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성심당의 대표 메뉴인 튀김소보로는 1,700원, 판타롱부추빵은 2,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자랑한다. 


김미진 성심당 이사는 '성심당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너무 초라해서 부자가 못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또 너무 화려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 그런 빵집이 아니"라고 지향점을 밝혔다. 대전을 들른 사람들 모두 성심당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것도 저렴한 가격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2) 사랑의 문화


성심당이 만족시키는 '모든 이'는 고객에 국한되지 않는다. 직원, 지역사회, 환경까지. 유무형의 대상을 포함한다.


성심당은 이를 '사랑 경영'이라고 부르는데, 사랑 경영은 구호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기업 구성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사고과 제도에도 녹아있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등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들이 점수화되어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그 비율이 무려 40%나 되고, 특진 혜택도 있다고 하니 경영철학이 구성원들에게 빠르게 전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심당의 '사랑 경영' 사례는 여러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출처: 가톨릭신문 유튜브)


이러한 성심당의 가치는 성심당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도 자부심이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심당의 영업이익률이 프랜차이즈를 넘었다는 기사에 기뻐한 이들이 많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시장을 만족시키는 제품은 많지만, 사회를 만족시키는 기업은 많지 않다. 성심당이 사랑받는 이유는 파타고니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짜 로컬 브랜드


(출처: 위키트리)


"10월 17일에 대전 가지 마세요"

이 같은 제목의 글이 인터넷에 빠르게 퍼졌다. 다름 아닌 성심당의 휴무일이었기 때문이다.


성심당은 대전광역시의 대표적인 지역 관광 명소다. 2022년 대전을 찾은 관광객의 63.9%가 성심당을 방문했다고 하니(나는 60%대밖에 안 되는 게 더 놀라웠다!) '대전은 성심당의 도시'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울에서 진행된 <로컬 크리에이티브 2024: 더 넥스트 커뮤니티> 전시에 성심당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알려지자마자 성심당 빵도 구매할 수 있는지 문의가 폭주했다. 성심당이 인스타그램에 "성심당 빵! 대전에서만 판매합니다."라는 공지를 띄우고 나서야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김미진 이사는 타 지역 분점에 대한 유혹이 많았다면서도, 완성도 높은 경험을 위해 대전에서 집중하며 찾아오고 싶은 빵집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성심당은 2013년 서울과 부산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지만, 로컬 브랜드로서 가치가 높아질수록 타 지역에서 빵을 판매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자사가 출판한 책과 함께 빵을 판매하는 정도다. 이때 빵은 브랜드 가치를 담은 책을 잘 팔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성심당 60주년 앰블럼


성심당은 2012년부터 로고에 하단에 大田(대전)을 표기하기 시작했는데, 2012년 이후 현재까지 로고가 4차례나 바뀌었음에도 빠지지 않고 있다. 60주년 기념 앰블럼에는 "나의 도시, 나의 성심당"이라는 문구를 더해 로컬 브랜드로서의 색채를 더욱 진하게 드러냈다.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가치 있는 기업이 되겠습니다"라고 밝힐 정도다.


특정 지역에만 있는 로컬 브랜드는 확장성의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잘 만들어진 로컬 브랜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헤리티지가 된다. 성심당이 그 대표적인 예다.


성심당은 '노잼 도시' 대전을 '유잼 도시'로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대전에만 있었기에 더 가치 있는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이는 얼핏 당연해 보일 있지만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성심당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유혹은 더욱 커졌을 터. 성심당의 성장세가 눈부실수록 그 뚝심에 감탄하게 된다.



성심당의 브랜딩


성심당은 브랜딩의 정석과 같은 사례다. 옳은 기업가치와 좋은 제품, 헤리티지를 만들어가는 전략까지. 기본에 충실한 작은 브랜드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좋은 브랜딩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 고객을 동참시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성심당은 빵이 "지역 경제와 사랑의 공동체,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또 하나의 가치이며 동력"이라고 말하면서, 잘 만든 빵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과정에 고객을 동참하게 만든다. 성심당의 가치를 아는 이들은 성심당을 찾고, 주변에 추천하고, 대전까지 가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아가 성심당의 성공에 함께 기뻐한다.


단단한 철학으로 만든 브랜드, 성심당. 

성심당이 오직 빵 맛으로 평가받지 않는 이유다.



이전 06화 헤이딜러, 중고차 시장의 문제를 스타일리시하게 혁신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