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려고 흰 도화지를 책상에 반듯하게 펼칠 때마다 드는 생각.
'또 하나의 삶을 그리는구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비슷하다.
백지같은 인생도화지를 한 발자국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삶이 서서히 그려지는 것처럼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나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없는 직관과 선택들에 직면한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나의 직관을 믿고 질러버릴까?'
그림을 그리다가
'에라 모르겠다. 이 색깔이 왠지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아'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색깔로 그림을 그리듯이
그림 과정에도 직관과 선택이 늘 공존한다.
흰도화지를 꺼내고 무엇을 그릴지 생각해 본 다음 색깔을 선택한다.
철저하게 이 작품을 색칠하기 위해 계획한 색깔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직관에 의존한 색깔을 집어들기도 한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색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무 계획없이 덤벼드는 것과 같아서
그 직관적 선택에 의한 대가를 그림을 그리는 내내 치러야한다.
그리고 또 계획과 직관 사이에서 선택을 하고
그러한 선택들이 수 없이 겹쳐지면서 그림이 차차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얻은 성취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책을 한 권 읽거나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이전의 나와 묘하게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된 것처럼
무계획적인 과정을 수없이 거치고 맘에드는 그림을 완성한 경험은
나를 이전과 다른 나로 변모시킨다.
삶도 마찬가지다. 계획과 감각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감각적으로 선택한 경험들은 예기치 못한 변수들을 안겨주기도 하고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직관적으로 '에라 모르겠다'하고 선택한 결과는
삶을 내 생각 범위 바깥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도 지나친 계획에 의존하여 그리다 보면,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처럼 그림에도 사고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 사고들이 혼합된 그림에는 스토리가 생기고 작가의 투혼과 싸움이 담겨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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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들이 차근차근 여러겹 쌓이고 겹치다 보면 형태가 만들어진다.
색깔들의 조화가 그림의 분위기와 톤을 결정짓는다.
삶에서 나의 선택들이 모여서 삶의 조화를 이루게 된 것처럼.
그림에 차근차근 색깔들을 여러겹 쌓아나가다 보면 불현듯 '망했다' 생각하는 순간도 찾아 온다.
분명 될 것 같았는데 그리고 보니
어느 지점에서 도저히 이 그림을 살릴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색깔을 잘못 쓴건 아닐까.'
'여기는 진짜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인데, 다시 그려야 하나.'
그렇다고 그림 중간에서 그만두기엔 이 그림에 할애한 나의 시간과 노력이 아깝기도 하고
섣불리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계속 밀고 나간다.
나의 선택과 우연들이 기어이 맞도록 밀고 나가는 것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처럼 말이다.
그리고 완성한 풍경화.
이 작품은 모네의 <Coup de Vent>강풍이란 작품을 모작한 것이다.
자세히 보면 강풍에 머릿결이 휘날리고 있는 나무들을 볼 수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모네가 겪었을 캔버스 위에서의 우연적 사고들을
조금이나마 겪어 볼 수 있었다.
수 많은 사고를 겪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소화했기에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네의 풍경화를 모작하며 느낀
어쩌면 그림을 그릴때마다 늘 곱씹게 되는
삶과 그림의 방식이 참 닮아있다는 사실을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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