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eed Enabler
Jun 21. 2022
"아니요!" 대답은 늘 같다.
한동안은 운다고 전화가 오더니, 아이는 본인 스스로 조금씩 울음을 조절하면서 감정 담은 화를 방출해댔다.
울음의 조절 방법으로 화를 가르쳐준 것은 아닌데...
"아이가 오늘 숙제를 해오지 않았는데, 학원 와 보니 본인만 안 해온 걸 알고 울었어요."
수업 정상화가 되고 놀던 시간들이 1시간씩 빠지니, 아이에게는 숙제를 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난제가 되었다.
1, 2 학년에는 본인 의견으로 정한 계획표에 따라, 스스로 숙제도 하고 여유도 있어 보여 별도로 들여다볼 것도 없었다. 난 내심 아이가 자기 주도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그야말로 '뿜 뿜'했다.
그런데 웬걸 아이는 3학년이 되고 본격적으로 친구들을 만나면서 '놀기'로 자기 주도를 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숙제란 자신의 놀이를 방해하는 아주 부담스럽고, 귀찮은, 근데 안 하면 찝찝한 존재가 되었다.
"학원에서 전화 왔던데 숙제 안 했어?"
"하기 싫었어"
"하기 싫어서 안 해갔는데 왜 울었어?"
"그냥..."
이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막상 하려니 하기 부담스럽고 하기 싫어 안 했는데 본인 혼자 안 한 사람이 된 기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숙제를 안 하기로 한 건 네 선택인데, 당당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지 않겠어?,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좀 하기 힘들었어요."
그렇게 말씀드리고 선생님의 다음 단계의 조치를 받으라 했다. 지금 그 당당함의 말로가 결국 '화'다.
눈을 있는 대로 동그랗게 뜨고 '아니요!'를 외치는 모습이란 몸을 가득 부풀리고, 자신만의 위용이 있음을 드러내는 고양이 같기도 하다.
'나도 내 생각이 있다고!'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날아오는 말들과 시선에 방어태세를 갖추는 아이는 당당함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우당탕당 아이쿠
아이의 변화를 겪고 있노라면 아이가 즐겨보던 '천방지축 아이쿠 왕자님'이 생각난다. 외계에서 떨어진 아이는 지구에, 사람들에 그렇게 저 나름으로 적응하고 있다.
기껏 9년 살아본 녀석이 어찌나 다양 무쌍한지 그 속을 가늠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마치 1단계를 깨면, 다음 단계에 깨야하는 왕이 있는 게임인 듯 숙제 하나를 끝내면 또 다른 숙제가 오는 듯했다.
문제는 화내거나 울다 금방 잊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신나게 놀고 있는 녀석보다는 내가 훨씬 조급하다는 것이다. 내 인생 챙기기도 바쁘것만 그의 인생을 챙기고 있노라면, 끓어오르는 마음을 다독이며 나와 그 사이에는 35년의 시간과 경험이 존재함을 되뇌어 보곤 한다.
타인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오직 행동으로, 말로만 우리는 타인을 볼뿐이다. 점점 나와 그의 대화 안에 기능적 질문이 오고 가는 시간이 늘고 있다.
대게는 너 그거 했니, 안 했니의 문제로...
그의 태도와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엄마 가족이란 희한해요. 사랑했다가도 밉고, 싫고 그러다가 다시 사랑하고..."
"응? 언제 엄마가 밉고, 싫은데?"
"잔소리할 때 "
어느덧 내 입밖에 나오는 소리는 잔소리로 바뀌어있었다. 그렇다고 아무 말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유로운 행동에 대한 가르침을 놓을 수 없는데 말이다.
빠르고 단호한 말투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부드러운 음성은 언제 될지 모른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언제 될지 모르는 후자를 늘 선택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부드러운 음성과 기다림의 말, 설득과 권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온전히 상대의 자발성에 몸을 기대는 것이고, '나'의 움직임이 아니기에 언제 행동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특히 인내의 필요성은 당장의 달콤함이 주는 후회의 파도를 겪어보지 않은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얼마의 시간을 기다리면 먹을 수 있는 마시멜로우 실험이 아니다.
나는 teaching과 coaching사이에서 늘 고민을 한다.
매번 coaching을 할 수는 없다. 아이도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teaching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가 teaching 받을 마음이 있냐는 것이다.
"엄마, 일기 숙제는 형네 집에 가서 할게요."
사촌 형 집에서 하루를 자기로 한 아이가 일기 숙제를 가져간다고 했다.
"시간 있으니 집에서 쓰고 가는 건 어때? 놀다가 쓰기는 쉽지 않을 거 같아."
"형이랑 논 주제로 일기 쓰려했는데?"
"아 그래? 이번 주에 천문대 갔었잖아."
"결국은 그걸 쓰라는 거지요?"
"..."
부쩍 아이는 나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고 있다.
마음속에서 거대한 '나' 님이 미친 듯이 자라는 것인가...
지구는 자신의 별에서 마음 가는 대로 천방지축 살아온 아이쿠에게 많은 제한을 요구한다.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기를 시작으로, 세수하기, 양치하기, 밥 먹기, 옷 입기에서 잠이 들 때까지 지켜야 할 규칙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 답답함을 느끼는 아이쿠가 들이미는 '왜 해야 해요?'라는 질문은 나를 난감하게 한다.
저 녀석 분명히 알면서 질문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오늘도 나를 연구하게 만드는 만만찮은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