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되는 슬픔)
아내와 나는 자녀가 없었기에 아내가 떠나버리고 난 후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사별 초기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나의 마음에는 공허함이 가득하다. 이제 이 세상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진다. 나의 아내는 나의 가장 친구였고 언제나 함께하는 동반자였다. 하지만 서로 이해하며 아껴주면서 행복의 웃음을 짓던 날들은 이제 모두 그리운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침실엔 적막함만이 흐른다. 나는 그 적막함이 싫어 일어나면 보지도 않을 TV부터 먼저 틀어 놓는다. 홀로 아침을 먹고 좀 씩씩해지자 마음속으로 외쳐보지만, 힘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직장에 있을 때가 마음이 편하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고요한 쓸쓸함만이 나를 맞이하고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주말이나 공휴일은 마음이 더 허전하다. 평일에는 일을 하니 혼자 있는 시간이 길지 않지만, 시간이 많은 주말에는 선약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하기까지 하다.
아내와 나는 연애 기간을 포함해서 18년 동안 말다툼 한번 안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렸으니 나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거기다가 나는 조용한 성격에 사람을 사귀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사별 후 겪게 된 고립감은 끔찍한 것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이니 혼자서도 잘 지내는 성향이면 좋았겠지만, 나는 혼자 있는 것도, 잘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에게도 친구들이 있고 형제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먼저 연락하고 찾아와주는 사람들의 도움은 고맙게 받았지만, 내가 먼저 그들을 찾지는 않았다. 사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연락조차 없었고 나는 내가 먼저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자존심 상할 일이 전혀 아니지만 내 마음은 그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혼자서 지내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는 내 나름대로 혼자 보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평일에는 각종 문화센터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주말에는 이런저런 동호회 모임에 나가는 것이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모임에 참여한다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쓸쓸하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운동모임, 등산 모임, 독서 모임 등 5~6개의 동호회 모임에 가입했고 덕분에 공포에 가까운 주말의 고독은 피할 수 있었다. 항상 나를 바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사별자임을 밝히지 않고 아내가 있는 척 거짓말을 했다. 다른 사람의 동정을 사는 것도 싫었고, 또 혼자 산다고 하면 누구를 소개해 주겠다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평생 거짓말을 별로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사별 후에는 새롭게 만나는 사람마다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도 되나 싶지만, 그냥 내 마음이 편한 대로 하기로 했다. 유부남이 총각 행세를 하는 것도 아니니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욕먹을 일은 아니다 싶었다. 사별자는 그 정도 이해와 배려는 받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내가 사별자임을 밝힐 날이 올 것이다.
요즘은 혼밥, 혼영, 혼여 등 뭐든 혼자서 하는 것이 유행인 듯하다. 나의 상황에서는 이런 시대에 사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아쉽게도 나와는 맞지 않는 유행이다. 나도 물론 혼자서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할 수는 있지만 나는 그것이 전혀 즐겁지가 않다. 지금 혼자서 여행을 한다면 나의 기분은 더 우울해질 것 같다. 혹시나 해서 혼자서 등산을 해 본 적도 있지만, 나는 역시 혼자서 어딜 돌아다니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혼자서 산길을 걸으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조언도 들었지만 나는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고 아내 생각이 많이 나서 괴로웠다. 그나마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은 불편해하지 않으니 천만다행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것도 한 주에 20끼 정도를 혼자서 먹으니 이건 좀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혼자 사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시간이 흘러 이제 두 번의 겨울이 가고 포근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이 다시 왔다. 회색빛 거리가 초록으로 바뀌고 노란색, 빨간색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며 자신을 뽐내고 있다. 아내는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는 것을 참 좋아했었는데... 이제 혼자서 초록의 아름다움이 짙어지는 풍경을 보면 괜히 서글퍼진다. 이런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아내도 정말 좋아했을 텐데, 혼자서 감탄하는 것은 김이 빠지고 흥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봄이 오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다시 온다는 자연의 섭리를 확인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다 변하게 된다는 사실을 봄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즐거움과 기쁨 뿐만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도 한없이 계속 지속되는 경우는 없다.
사별 2주기가 지나갔지만 아직도 어떻게 해야 혼자서 잘 지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행동은 너무 모순적이다. 혼자 지내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고 사람들을 사귀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래도 어찌되었건 시간은 계속 잘 지나간다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사별의 슬픔도 줄어들 것이고 나도 어떤 식으로든 바뀌게 될 것이다. 오늘 슬프다고 내일도 슬프리라는 법이 없고, 오늘 불행하다고 내일도 꼭 불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점차 더 좋아지리라 믿고 기다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불행할 게 뭐 있어?
오늘, 이곳에서, 가능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네."
-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필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