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내 인생은, 고마운 일 투성이

by 향작

무기력한 날들의 연속이다.

찬 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려고 하는 중이다.




어제는 큰 아이를 크게 다그치고 혼을 냈다.

여섯 살을 앞둔 아이의 반항심인 건지, 말을 이렇게나 안 들을 수가 없는데 말을 안 듣는 것과는 별개로 정말 퇴행과도 같은 생트집과 생떼, 울고불고 천고집만고집이 하원을 할 때마다 이어졌다.


참고 참고, 또 참기를 몇 날 며칠. 나 또한 스스로를 다독였다기보다 마음 한 구석에 꽁하게 쌓아놨던 모양인지 어제는 욱! 터트리고 말았다. 그만 좀 해라, 적당히 해라, 꼭 이래야만 하느냐,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 하냐, 등등 주워 담지 못할 말들로 꼭 아이에게 그간의 앙갚음이라도 하겠다는 듯 물고 늘어졌다.

끝내 아이와 좋게 마무리가 되긴 했지만 어쩐지 마음에 찌꺼기가 남은 건, 그동안 노력했는데, 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일은 종종 내가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어른이기를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같다. 참아도 보고 애써 웃어도 보고 눈을 질끈 감으며 외면도 해보지만 그렇게 인고한 시간이 한 번의 고함으로 종잇장처럼 찢기고 만다.


그렇게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고 혼을 낸 일로 하루가 저물어가는 듯했다. 엉망진창 속에서 돌연 한 통의 전화가 나를 깨우지 않았다면 나 또한 울어버렸을 것만 같은 저녁이었다.


애써 기분을 풀고 아이들과 마주 앉은 저녁. 노래 듣길 원하는 큰 아이를 위해 음악까지 재생했다. 사실 시끄러워 듣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 단 한 번의 포옹으로 다시 엄마에 대한 사랑이 샘솟은 아이는 재잘재잘 참새처럼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보통 아이들은 내가 통화하는 틈에도 계속 말을 걸고, 누구냐를 시작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을 늘어놓는다. 더불어 나는 모르는 번호는 대체로 받지 않는다. 한데 어제는 웬일인지 받아야 할 것만 같아 받았고 아이들은 내가 통화를 하는 내내 밥을 스스로 먹으며 둘이 놀기까지 했다.


통화는 나에게 전에 없던 희소식이었다.

작년에 공모했던, 내가 제법 마음에 든다고 자평했던 대본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그 전화 한 통은 내 기분을 달구기에 충분했다. 누가 기분파 아니랄까 봐, 통화를 방해하지 않아 주어 고맙다고 칭찬까지 퍼부었다.

나란 사람이란...




기분 좋은 전화를 받아서 일기를 쓰는 건 아니다. 사실 이 일기는 마음을 재차 다지기 위해서 기록하기 위함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지, 매번 추락하면서도 다시 굳센 심지를 찾아 붙잡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아로새기기 위함이다.


오늘은 하원한 큰 아이와 다투지 않으려고 아침에 약속한 밤식빵을 사두려 일찍 집을 나섰다. 얼마간 포근했던 날들이 이어지다 마주한 찬바람에 기가 눌려 옷깃을 여몄다. 식빵을 사고 아이가 하원버스에서 하차하는 장소로 종종걸음을 걸었다. 불현듯 요 며칠 크게 아프지 않은 두 아이들 생각이 났다.

새삼 내가 아이들을 원에 보낸 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꿈을 이루고자 고군분투하는 시간들이 두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는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깨달음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생각이, 찬바람처럼 옷 틈새로 파고들었다.


여느 부모처럼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기도가 한낱 기분에 눌려 묻히지 않기를 마음에 새기고 다시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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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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