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여전히 모르지만

by 향작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생 때이고, 진지해진 건 고등학교를 진학할 무렵이다. 그럼에도 책을 좋아했느냐, 하면 아니었다. 무얼 보고 감명을 받아 나도 이런 작가가 되어야지 했던 것도 아니다. 글쎄, 나도 모르겠다. 왜 작가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을까.




공부도 못했고, 책도 잘 읽지 않았으며, 노는 것만 좋아하던 게으른 내가, 관련학과에 글을 써서 붙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예창작과 혹은 극작과를 위해 전략을 세우며 꾸준히 글 연습을 하던 건 아니어서 신기하면서도, 내가 뭐라도 될 모양이라고 우쭐했더랬다. 하지만 대체로 잘한다고 모아놓은 집단에 들어가 보면 내가 얼마나 별 볼 일 없는지 깨닫곤 하지 않나. 나도 비슷했다. 입학을 하고 나니,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지부터 시작해, 영화감독에 대한 이야기, 무엇이 어떻게 좋으며 왜 그 작가처럼 되고 싶은지 등등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듯한 내용들이 학과 선배들의 주요 질문이자 대화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주눅이 들었는데 아는 작가나 영화감독이 없었을 뿐 아니라, 당당하게 난 그런 거 모른다고 그냥 글이 좋아 들어왔다고 뱉어낼 자신조차 없었다. 당시엔 그런 대화 내용에 당연하게 승차하여 거슬리지 않고 스며드는 것만이 작가지망생의 자격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따지고 본다면 나는 지망생의 자격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이고.


그래서인지 작가로 먹고살고 싶단 꿈을 키우며 시작했음에도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반감만 들었다. 어떻게 시작이 반 씩이나? 나는 그 반을 갖기에도 아직 한참 먼, 글자 애송이 같은데. 많은 사람들은 나더러 좋아하는 일을 일찌감치 찾아 좋겠다고도 했고, 더욱이 그 재주로 대학까지 합격해 부러워 하는 한 편, 한 때 친구라고 곁을 내줬던 아이는 공부는 못하는데 그래도 좋은 대학을 간 거 보니 글 쓴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란 뉘앙스의 말을 내 면전에 대고 잘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성적에 맞춰 대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던 현상을 본다면, 내게 타인이 느끼는 여러 생각이나 감정들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은 들었지만 한편으론 아직 뭘 이룬 것도 없는데 그들이 하는 말들이 도리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어쩌면 단 한 번도 (공부로)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고, 글은 학창 시절 내내 쓸 기회가 많지 않아 혼자서만 끄적이던 수준이어서 자기 효능감이나 성취감을 느낀 경험이 극히 적어 그랬던 것 같다. 시작을 했음에도 반은 아직 한참 멀었다 느끼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대학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로 나의 글을 평가하는 교과목보다 이론 위주로 배우고 외워 시험을 봤기 때문에 뭐랄까, 여전히 나는 글로 인정받는 듯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몇몇 작법 수업에서 좀 튀는 발상으로 신선하단 평을 받은 적은 종종 있지만, 내가 스스로 잘 쓴다고 자평하기엔 꽤나 먼 거리의 수준이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드라마 작법 관련 교육원에서 단계별 수료를 하고, 라디오드라마로 데뷔를 해 누군가에게 드디어 "작가님" 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좋아하는 일을 이쯤이면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그 시작의 반까지는 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너무 부족했다. 뛰어난 작가들 앞에선 당연한 미생이요, 스스로를 두고 보더라도 제자리걸음만 걸을 뿐이었다.


아무리 칭찬을 들어도, 좋은 평을 들어도 매번 미끄러지는 공모전 앞에서는 역시 안 되는구나. 안 되는 게 당연한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만 쌓여갔다.

20대 내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부모님 곁에서 꿈만 좇는 삶을 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이젠 두 아이를 키우며 여전히 글을 쓰고 있지만, 스스로 욕심만 많고, 이루는 것은 없이 누군가에게 기생해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불현듯 들 때가 있다. 지금 아무도 내게 질타를 하지 않는데도 나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세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끝내 놓지 않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이게 이젠 정말 내 재능인지, 배운 게 도둑질이라 어쩔 수 없이 붙잡고 있는 동아줄인지, 이거라도 붙잡고 있어야 스스로 조금 떳떳할 수 있어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좀처럼 알 수 없긴 하다.


음.

지난주 화요일. 좋은 소식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관련해 일기도 썼지만, 작년 공모전에 냈던 작품에 대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공중파 드라마 피디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난생처음 겪는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가, 보이스 피싱인가 싶었다가, 검색도 해보았다가.., 요란을 떨었다. 그러다 문득, 이제 시작이려나? 반은 온 걸까? 자만도 해봤다.


이를 두고 '자만'이라고 하는 것은, 이게 정말 반이라도 될 지,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던 게 실은 글재주가 아니라 단순히 로또 5등 수준의 운 뿐이었던 것인지, 당장의 판단이 섣부르기 때문이다. 그냥 주사위가 던져졌을 뿐.




나를 응원하는 가족과 주변인들은 내게 참으로 관대하다. 될 성싶은 떡잎이라 생각하고 무한히 자랄 수 있게 신뢰와 칭찬을 자양분으로 준다. 반면 내가 글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오는 내내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작가가 되려면 직장 생활을 좀 해봐야지. 사회생활 한 번 해보지도 않고 무슨 작가냐. 작가는 또라이가 많다던데, 그런 면에선 넌 작가가 어울린다. 너가 무슨 예술이라도 하는 줄 아느냐 등등 나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수준의 말들을 쉽게 던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이 말들에 일면 상처를 받았던 건, 나 또한 한 번쯤 해 본 생각에 뼈를 맞은 듯했기 때문일까.


내가 꼭 남다른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수한 지망생들 중에 이번엔 내 차례라는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왜 줄곧 드라마 작가를 하겠다고 손에 땀을 쥐고 살아가는지, 왜 글 쓰는 일에 이토록 열광하는지, 놓을 수 없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모두가 잘 모르는 글만을 썼단 사실에 조금 하찮게 여기거나, 지난 시절 내게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했던 사람들에게 적어도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뭘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게 뭔지 아는 삶을 살고 있다고.

무얼 좋아하고, 어디에서 희열을 느끼며 내가 가는 방향을 나는 명확히 알고 있다고.

결과에 비참해지는 순간도 있지만, 끝내 나는 내 글이 재밌더라고.

그래서 여전히 이러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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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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