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쓴 것을 되돌아보면 큰 아이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간혹 작은 아이에겐 조금 미안한 감정도 생긴다.
큰 아이를 임신했을 적엔 태교로 매일 저녁 손글씨로 일기를 쓰고 이를 남편이 내 부른 배에 대고 읽어주기도 했는데, 작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에는 태교랄 것도 딱히 없고 태명도 제대로 불러줘 본 적이 없었다. 20개월 즈음에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던 큰 아이를 당시엔 내가 가정에서 보육하고 있던지라 매일이 바빴다. 이 모든 것들이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작은 아이는 배에서부터 이미 제 살 길을 알아서 마련해야 하는 수준으로 꽤 무신경했던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나니 다시 미안해지지만..., 떼가 많고 예민한 첫 아이에게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의 일기도 그런 큰 아이와 텔레비전에 대한 이야기다.
육아를 하는 모든 집들이 그러하겠지만, 우리 집에도 텔레비전과 관련한 규칙이란 게 있다. 밥을 먹을 땐 꺼야 하고, 아침 등원 준비를 하는 동안만 잠깐 보는 것 외에는 웬만하면 켜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규칙이란 것이 안 지켰을 때에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니라 나와 남편이 강단 있게 지키지 못하면 쉽게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다. 최근 텔레비전 시청 규칙을 큰 아이가 잘 지키지 않고, 끄려고 하면 떼를 쓰고 울고불고 자지러져서 정말 마음 같아선 확 뜯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지난주 목요일 텔레비전을 보다 자러 들어가야 할 때가 되어 그만 보고 자자고 한 마디 했다가 한바탕 난리가 났고, 제법 오랜 시간 떼를 부리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느라 기진맥진했다. 몸이 지친 것보다 이럴 때마다 아이를 내가 잘못 키운 건가 싶은 생각에 자괴감이 몰려오며 깊은 수렁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렇게 그날, 아이에게 휴일 내내 적어도 집 안에서는 텔레비전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3월 3일 임시공휴일까지 스케줄이 빼곡하게 차있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노는 동안에 텔레비전을 보게 될 일이 생긴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집에서 두 아이만을 보육하면서는 절대 텔레비전을 켜지 않으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다.
물론, 조카가 집에 놀러 왔을 때, 할머니댁에 방문했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놀면서, 잠깐의 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켜 준 일이 있었지만 아이도 끄자고 할 때 잘 끄고, 제법 약속을 지키려고 애썼다. 오늘 아침엔 아이와 함께 영상 시청 규칙을 새로 정해두기도 했다.
아이는 제 스스로 텔레비전을 보지 말아야 하는 때를 몇 가지 손에 꼽았다.
1. 밥을 먹을 때
2. 씻을 때
3. 머리 말릴 때
4. 자기 전
이렇게 정한 뒤, 그 외의 시간들엔 보고 싶다고 하면 켜 주어야 하는데 대신 30-40분 내로 보고 싶은 것 두어 편만 보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나는 아이가 직접 정한 규칙에 OK 했고,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꺼야 하는 시간인데 규칙을 지키지 않고 '한 번만', '이것만', '조금만 더' 등으로 떼를 쓰기 시작하면 그다음 날까지 영상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두 아이가 하원을 한 뒤의 저녁 시간. 텔레비전을 5분만 보겠다는 아이에게 나는 밥을 다 차릴 때까지만 보자고 하고 규칙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 뒤 켜 주었다. 그렇게 미리 준비해 둔 국을 데우고, 치즈달걀말이를 하는 15분 정도의 시간 동안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침에 함께 정한 규칙이니 지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어김없이 꺼야 하는 시간이 되자 이것만 보겠다고 물고 늘어지며 악을 쓰고 울기 시작했다. 한숨이 절로 나오고 역시 텔레비전은 웬수가 틀림없단 생각에 규칙이고 뭐고 앞으론 못 본다고 엄포를 놓았다.
지난주 목요일 자러 들어가기 전 텔레비전을 두고 실랑이를 했을 때, 실랑이라고 했지만 큰 아이가 일방적으로 내게 혼이 나는 상황이었다. 큰 아이는 내게 약속을 지키겠다고 앞으로는 잘하겠다고 이런 말 저런 말, 온갖 다짐과 말들을 쏟아냈는데, 그런 아이의 말을 듣고 있자니 텔레비전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도 나인데, 아이의 입에서 저런 말들이 나오는 게 맞는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신경이 예민해진 엄마와 울고불고 난리가 난 언니를 보며 예쁜 짓만 골라하려는 작은 아이 또한 이런 상황에 자주 노출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렇다고 마냥 큰 아이를 어르고 달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 단호하게 야단을 치고, 진정시킨 뒤 약속과 규칙에 대해 왜 지켜야 하는지 설명을 거듭하지만 여전히 내가 하는 방식들이 맞는지, 모든 날들이 고민의 연속인 듯하다.
그렇게 아이를 재운 밤, 내가 무얼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요즘 들어 떼가 늘어난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내가 단호하지 못하고 순두부처럼 말랑해 아이를 잘 다루지 못하고 있는 건지 걱정을 거듭하면서도 일기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일기를 쓰다 보면 답은 아니지만 아이를 이해하고 싶어지는 구석이 생기고, 그렇게 마련된 구석이 깊고 넓어져 내일 다시 잘해보고 싶어지는 마음이란 게 생긴다. 그러다 대체로 나의 육아 기록들이 고단함과 어려움의 경험들 뿐이라 저출산인 이 시대에 과연 나의 일기를 누군가가 읽는다면 마땅히 자녀 출산을 원하고 육아하는 삶을 살아내고 싶어 질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 끝에 내려지는 결론이란 것은
이토록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두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오히려 출산과 양육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도리어 내가 조금 더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지기를 바랄 뿐, 두 아이가 없는 나의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텔레비전은 웬수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