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마음엔 줄이 하나 있어요.

by 향작


요즘 큰 아이가 겁이 많아졌다.

어느 한 날, 꿈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다가 떨어지는 꿈을 꿔서 무서웠다고 했다. 그거 키 크는 꿈이라고 실상은 무서운 게 아니라 좋은 꿈이라고 드디어 00이가 그런 꿈도 꾸는구나, 웃으며 이야기해 줬는데 아이는 이후로 떨어지는 꿈뿐 아니라 악몽을 종종 꾸는지 자기 전에 꿈의 요정에게 기도를 하고 잔다. 그 기도를 내가 해주어야 해서 자기 전 할 일이 +1 되었다.(기도가 꽤 길다...)




아이가 느끼는 무서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섯 살을 앞두고 생긴 이런 변화가 간혹 컸다는 느낌보다 도로 더 어려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무서운 꿈에 대한 두려움 외에도 캄캄한 방이나 화장실 문을 닫아두어야 하는 데다 엄마 혹은 아빠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덩달아 생겼다.

그렇다고 유치원 등원거부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유치원은 평소처럼 잘 다녀온다. 한데 아이가 자는 동안 남편이 출근을 해버리거나 퇴근 후 운동을 다녀와야 해서 얼굴 보기가 힘들어질 때면 악을 쓰고 울며 하루 종일 내게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빠 보고 싶어”


남편이 운동을 하지 않고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나는, 육아 바통을 넘겨주고 밤출근을 한다. 아이는 전에 없이 눈시울을 붉히며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원래 이러지 않았다. 친정 엄마가 00이는 너무 쿨하다고 할 정도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뒤통수도 안 봤다. 그게 엄마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아일 맡기기가 어렵지 않았다. 다행인 건 아빠를 정말 워낙 넘치게 사랑하는 아이라 나를 보내기 싫어하면서도 막상 가고 나면 아빠와 잘 지내곤 한다. 그럼에도 점점 잘 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에 왜 이 아이는 여전히 엄마아빠 곁을 맴돌고 꼬리잡기 하듯 따라다니고 떨어지기 싫어 울어버리는 건지,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오늘은 남편이 운동을 하는 날이라 하원하고 나서 들들 볶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울먹이며 지치지도 않고 내뱉는 "아빠 보고 싶어"는 정도가 지나치고 답도 없는 내용이라 계속 듣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는 것이다. 그래도 아빠가 보고 싶다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건 영 이상한 모양새다. 잘 어르고 달래고 안아주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런데 하원을 하고 돌아온 아이가 유독 힘이 없다. 아빠가 보고 싶어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쉽게 울컥하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 아이 눈치를 살피는 저녁 시간이 이어지다 저 마음을 이해해볼까 싶은 말이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저녁을 먹다가 젓가락을 써도 되는 상황에 숟가락과 손을 쓰는 아이에게 나는 조금 엄하게 손으로 하지 말라고 이른다. 아이는 내가 화를 낸다고 생각했는지 금세 눈 주위가 발갛게 달아오른다. 도무지 이 소심함이 너무 당혹스럽고 감당하기 어려워 멀뚱히 보고 있는데 아이가 붉어진 얼굴 그대로 이런 말을 툭 뱉는다.

“지금 엄마의 사랑이 3만큼 날아가버렸어”

그리고 덧붙인다.

“내 마음엔 줄이 하나 있거든? 여기 이렇게 지퍼도 있어, 줄에는 엄마가 주는 사랑이 매달려 있고. 엄마가 화를 내면 지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와서 사랑이 날아가버려. “


이게 무슨 말이람.

큰 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어느 것 하나 양보하지 않고 되레 빼앗고 약 올리거나 때릴 적마다 나는 이런 말을 해 왔다.

“엄마는 (큰 아이)를 무척 사랑해. 네가 동생이 없는 동안 엄마랑 아빠한테 받은 사랑을 동생한테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어."

아이가 충분히 이해하진 못했겠지만 나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종종 이 말을 써먹듯이 동생한테 나눠 줄 사랑이 부족하다며, 엄마가 나를 조금만 사랑해서 이제 사랑이 없다는 식으로 혼 날 상황을 면하기도 했는데, 오늘은 더 구체적으로 표현을 한 것이다.


짐짓 놀랐다. 사랑이 매달려 있다거나 마음에 창문 같은 지퍼가 항상 열려있어 내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을 때마다 사랑이 날아가버린다니.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지, 아이 마음이 이렇구나 헤아리기 전에 사실 조금 감탄도 했다. 우선 아이를 안아주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며 다독인 뒤, 엄마가 많은 사랑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들이 잠든 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근래 들어 큰 아이가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이는 듯했다. 동생에게 딱히 질투를 하지 않았었는데, 엄마 아빠는 동생만 좋아한다거나, 동생이 우주로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둥의 질투를 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우리가 아이에게 부족한 사랑을 주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이가 자존감을 키우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큰 신뢰와 사랑, 존중으로 자신을 채워야 하는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지금까지 아이를 너무 아이로만 치부해서 발생한 오류인 듯했다. 부모의 사랑을 아무리 받아도 부족하게 느끼는 게 아이들이라지만, 실은 마음과 달리 차고 넘치게 사랑을 표현하고 줘 본 적도 없는 것 같아서 새삼 민망해진다.


이제 어디 한 번 지독하리만치 넘치게 사랑을 안겨줘 봐야겠다. 아이 마음의 줄에 사랑을 빼곡하게 달아주고 지퍼엔 자물쇠를 달아 날아가지 못하도록 믿음을 심어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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