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유독 버거운 날. 몸은 일으켰지만 잠에서 깨고 싶지 않은 날.
치근거리는 두 아이가 귀찮고, 얼른 시작해야 하는 일과들은 더 귀찮은 날.
아직 등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의 내 일정에 대해 망설이게 되는 날.
그냥 등원을 시키고 집으로 와버릴까. 사무실엔 가지 말고, 그냥 침대에나 드러누워버릴까.
창밖은 비가 오는 듯한데 희한하게 흙빛이었다. 미세먼지를 씻어내고 있기라도 하는지 하늘이 황토색을 머금고 있었다. 거실로 나와서도 한참을 소파에 누워있었다. 두 아이가 자그마한 상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클레이로 케이크를 만들어 썰고, 그릇에 담고, 숟가락으로 휘젓는 동안에도 여전히 나는 누운 채로 시간을 종종 확인하는 짓을 반복했다. 머릿속으로나 냄비에 달걀을 삶고, 이미 쪄둔 고구마 껍질을 까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고도 한참을 누워있다 몸을 일으켰다. 아이들 모두 등원을 시킨 뒤에 집으로 돌아와 자자는 생각과 함께.
공유오피스로 출근을 하고, 오전에 해야 하는 일들을 절대 미루지 말자는 다짐.
그리고 습관처럼 반복되는 일을 미루고 잠을 택하는 못된 버릇들.
이 두 가지가 주와 객이라면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항상 주객이 전도된 사람일 텐데, 안 그러려고 무던히 애쓰는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오히려 습관처럼 당연하게 공유오피스로 발길을 옮기고, 미뤄도 되는 일들을 차곡차곡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휴식을 취해도 되는데도 버릇처럼 노트북을 켜고, 무슨 글이든 쓰는 사람 말이다.
3월 한 달 동안 이슬아 작가의 "일간 이슬아"를 구독 중이다.
나의 이메일 함으로 보내주는 이작가의 글을 읽으며, 질투가 나리만치 부럽고, 대단하다는 감탄이 나온다. 어떻게 이런 우직함과 뚝심, 대견한 철학들을 깊이 간직할 수 있는지 그를 시샘하면서 글을 읽는다. 내가 시기 질투를 하면서도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은 비단 이슬아 작가뿐만이 아닌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이나 사랑이 부족한 사람인가 싶어진다. 타인에게 그런 감정을 너무 쉽게 느끼는 걸 보면, 나를 한없이 부족하게만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어쨌거나 나는 오늘 침대 위가 아닌 사무실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습관처럼은 아니고 오늘도 여전히 못된 습관을 버리기 위해 애써가며 꾸역꾸역 자리 한 것이다.
습관이란 게 뭐 쉬운가. 버리기도 만들어내기도 그만한 시간과 노고가 걸리겠지. 우직하게 걸어가다 보면 나도 내가 부러워하고 시기질투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감탄할 지점을 가진 사람이 되고 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