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곳은 내게 익숙지 않은 곳이다.
무려 일곱 살부터 서른한 살까지 살던 곳을
결혼을 하면서 떠나왔다.
이전엔 딱히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저 경험이 적어 몰랐던 거였다.
살던 곳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어떤 건지.
여전히 나는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낳고
뿌리를 내린 이곳이 때때로 낯설다. 정이 들 때도 되지 않았나 싶지만 정이란 그리 쉽게 드는 건 아닌 모양이다.
결혼 전 살던 곳은 밤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도, 괜히 아는 사람 같았고 그래서 안전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반면 지금 이곳은 밤이 되면 더욱 낯선 길목에 떨어진 것 같을 때가 많다. 잰걸음으로 생경한 공기와 풍경을 지나친다.
남편과 결혼한 지 6년 차에 접어들면서 이 동네에 산 지도 같은 햇수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딸아이를 둘 낳았고 몇몇 아는 지인도 생겼다. 낮밤으로 출근을 할 때마다 매번 지나치는 길도 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면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지만 낮동안엔 제법 활기를 띄는 거리다. 그곳에 그 카페가 있다.
카페는 복지관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내가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 처음 방문했다가 이후 출산을 하고도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간 적도 여러 번인 곳이다.
원래 살던 곳이었다면 굳이 선택하지 않았을 복지관 카페로 처음 들어선 것은 임신한 몸으로 노트북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심한 길치라 그나마 익숙한 곳을 서성였기 때문이다.
흰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두 분이 모자와 바리스타 복장을 갖추고 앞치마를 두른 채 주문을 받았다. 그때 그 할머니가 내게 제법 관심을 보이셨는데, 임신한 걸 알아채고 넌지시 고생한단 말을 건네기도 하셨다.
아마 이후 아이를 출산하고도 복지관 카페를 자주 찾은 건, 할머니가 건넨 고생 한단 말 덕분이었던 것 같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평소 익숙하던 것도 낯설게, 낯선 건 더 낯설게 만들었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과정과 감정은 당연스레 “엄마” 혹은 “친정”과도 비슷한 안정감이나 익숙함, 편안함을 찾아 헤매게 했다. 여전히 익숙지 않은 이 동네에서.
그래서 뻔질나게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복지관 카페에 갔다. 봄비에 우산을 쓰고도, 한여름 장마엔 아기띠를 하고서, 땀까지 주룩주룩 흘려가며, 이가 다 떨리는 겨울 추위에도 어김없이. 그렇게 1년 사계절을 카페에서 할머니를 만나며 겪어냈다.
내겐 추억할 만한 따뜻하고 다정한 할머니가 없어서였을까. 매번 갈 때마다 알은체를 해주고 내 아이를 당신 손녀처럼 예뻐해 주고, 앉은자리로 와 말동무까지 해 준 그 할머니가 다름 아닌 나의 할머니인 것 같았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면서 발길이 조금 끊겼지만, 그 거리를 지나칠 때면 한 번쯤 들여다보고, 커피가 용건이 아닌 오로지 할머니를 볼 요량으로 문을 열어보곤 했다.
둘째 임신과 더불어 출산 이후 신생아 시절에 들렀던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어느 날 그 길을 지나가며 카페 안을 넘겨다 보는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휴일인가 싶었다. 그 뒤에도, 카페 앞을 지나칠 때마다 엿보았지만 매번 볼 수가 없었다. 한 날은 문을 열고 들어가 소식을 여쭤보았다. 자주 오던 나를 알아보고, 내가 궁금해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린 어르신은 할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서 잠시 일을 쉰다고 했다.
집에 올 때면 밤낮으로 지나치는 거리가 있다.
그곳에 위치한 카페를 매일 넘겨다보며 할머니를 찾는다. 혹시나 오늘은, 이제는 건강해져서 다시 출근을 하시지 않았을까 싶어 빼먹지 않고 엿본다.
만약 다시 뵐 수 있게 된다면 나의 두 아이가 이렇게나 자랐다고 자랑도 하고 싶다. 내가 낯설어 한 이곳에서 가족 같은 익숙함을 선물한 사람이 당신이라고 알려드리고도 싶다. 엄마 노릇이 세상 제일 힘들던 사람이 이젠 제법 엄마 티를 내고 있다고, 지난 시간 중 당신의 말 몇 마디가 위안이 된 적도 적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 말도 하고 싶은데..,
그래도, 뵙지 못하더라도
어디에서건 건강만 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