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정 부모님과 조카네 그리고 우리 집 네 식구가 '아이들을 위한' 여행을 다녀왔다.
당신을 집의 꽃이라고 하던 나의 엄마는 1박 2일을 젊은 자녀들과, 그리고 그보다 더 어린 세 아이들과 떠난 여행 이후 몸살을 앓았다. 나도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온 집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든 걸로 보아선, 엄마가 그리 앓았단 사실이 놀랄 것도 아니다.
큰 아이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물놀이를 좋아하는 듯했는데,
이번에 간 풀빌라에서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고 펑펑 울었다. 튜브가 영 못 미더운지, 더 놀지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물에서 나왔다. 공포심에 우는 아이를 두고 수영장이 있는 펜션인데 물에서 더 놀지 못하는 걸 아까워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둘째가 언니 몫까지 놀아주는 게 다행으로만 여겨졌다. 정말로 둘째는 이제는 커버려 좀 쪼이는 수영복을 입고 알차고 기차게 놀았다.
나의 육아일기 대부분이 좀 예민한 첫 아이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오늘은 둘째 아이의 이야기를 몇 자 적어보려 한다. 내리사랑이란 말이 참말이듯, 작은 아이는 하는 모든 행동들이 사랑 그 자체이다. 그럼에도 나는 부족함이 여실한 엄마라, 예민한 큰 아이의 감정을 한 번 더 돌아본답시고 작은 아이의 마음은 좀처럼 돌보지 못했다. 언니가 하는 행동들은 모조리 따라 하며 '나 좀 보소'를 하는 작은 아이가 종종 서러워 울 적엔 그냥 저러다 만다는 걸 알기에 눈길 한 번 주는 걸로 달래는 일을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은 첫 째보다 둘째가 더 질투가 많다.
여행을 가서 작은 아이가 유독 밝고 맑게 깔깔대는 걸 바라보는데, 친정아빠의 말이 좀 세게 가슴을 찔렀다.
"질투는 네가 만든 거다."
큰 아이가 감기가 오면서 눈이 충혈이 되고, 눈곱까지 끼었다. 아무래도 수상해 여행 가기 전 이틀을 유치원 등원도 하지 않고 집에서 돌보았다. 그러는 중에도 똑같이 감기이지만 그나마 컨디션이 좋은 작은아이는 칭얼거림 하나 없이 어린이집에 등원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제 언니는 엄마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인지, 언니와 하원을 갈 때면 그렇게 칭얼거리고 저녁 시간 내내 울어재꼈다. 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드문드문 엄마가 그리웠을까, 싶은 생각에 아이를 안고 '엄마가 늦게 데리러 가서 속상했어?'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흐느끼는 작은 아이에게 내일은 더 일찍 데리러 가겠다 약속을 했다.
작은 아이의 하원 후 칭얼거림은 일찍 데리러 간 그다음 날에도 이어지다가 제 언니도 똑같이 등원을 하기 시작하자 말끔히 사라졌다.
어느 아침엔 주로 먼저 일어나서 나를 이끌고 안방을 나서는 작은 아이가 늦잠을 잤다. 오히려 일찍 일어난 큰 아이만을 데리고 작은 아이가 깰 세라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 쉬야가 마렵다는 큰 아이를 화장실 변기에 앉히는데 안방에서 전에 없이 잠에서 깨 짜증을 내며 우는 작은 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사실 평소 같으면 방으로 가서 아이를 달래거나, 안아 들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아이는 잘 울지도 않을뿐더러, 울 바에야 화(?)를 먼저 내는 아이인지라, 그리고 저렇게 짜증을 낼 것 같으면 투박한 걸음으로 씩씩대며 방을 나설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아침에도 곧 스스로 나올 거라는 걸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도 가장 크게 든 마음은, 변기에 앉은 제 앞에 엄마가 있어주기를 바라는 큰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일어나 작은 아이에게로 가버리면, 큰 아이가 더 크게 짜증을 낼 거 같았다.
그래도 나는 일어났고, 작은 아이가 있는 안방으로 향했다. 나는 작은 아이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이제 일어났냐고, 내 새끼 잘 잤냐며 어화둥둥했다. 작은 아이는 처음 맞이하는 이런 형태의 아침에 씩- 웃으며,
'언니 같았지?'라고 했다.
작은 아이의 말대로, 아침에 큰 아이는 짜증을 내면서 깨어난다. 옆에 가족들이 있을 때에도 번번이 그러지만, 가장 늦게 일어나 방에 혼자 남아 있을 때엔 항상 그러하다. 아침부터 짜증을 내는 큰 아이를 달래는 일이 나 또한 부아가 치미면서도, 울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하고 싶지 않아 매번 '이익~' 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안아 들고 잘 잤냐며, 어르고 달래 데리고 나온다. 이를 작은 아이가 매번 보며 언젠가 저도 엄마 품에 안겨 나오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전에 없이 늦잠을 잔 어느 아침에 반가운 마음으로 언니의 짜증을 모방(?)해 본 것 같다.
종종 둘째의 질투는 언니가 하는 모든 말들에 날을 세우며 '아니야!'를 고함치게 만들기도 하고, 물건을 빼앗거나, 꼬집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 순간 아이를 혼낼 때마다 실은, 아직 만 세 돌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이런 처우가 맞는 것인지, 고민스러워진다. 더욱이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두고 태어나자마자 언니와 경쟁해야 하는 이 아이에게 내가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잘못을 알려줘야 하는 게 나의 몫이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엔 엄하게 꾸짖는 걸 피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질투가 누군가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단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좀 더 마음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엄마인 내가 작은 아이의 그 쪼그마한 마음까지도 조물조물 잘 어루만져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