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마지막 주엔 내 글을 평가받는 자리가 있다.
지금까지 두 번의 평가를 받았다.
평가라는 것이, 그것도 내가 쓴 글에 대한 평가여서, 마치 나라는 사람을 들추는 것과 비슷한 착각을 하게 해 여간 떨리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매번 좋은 말만 들은 것도 아니라 다녀온 뒤 하루 이틀은 혼자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평소 내가 난 자리로 인한 육아 공백을 친정엄마께 부탁하지만, 오늘은 남편이 월차를 내고 등원부터 하원 이후 저녁시간을 도맡기로 했다.
아이들 등원을 무탈하게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나갈 준비를 했다. 남편도 관리사무소에 볼일이 있어 함께 집을 나섰다. 그리 무겁지 않은 내 가방을, 아파트 입구까지 남편이 굳이 들어주었다. 어울리지 않는 가방을 멘 남편이 내게 잘하고 오라고 말했다. 알겠다는 대답 외엔 딱히 들려줄 것도 없었는데, 남편이 허심탄회하게 덧붙였다.
“오늘은 또 어떤 실망을 하고 올지!”
오늘 내가 듣게 될 평가들이 무엇일지, 굳이 가늠하지 않고, 애써 예측해보지도 않았는데 남편의 그 말 한마디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울음 아니다. 웃음이다. 거의 박장대소 격으로 크게 웃었다.
티를 내지 않는다고, 꾸역꾸역 내 안에 담아 소화하고 견뎌낸 뒤에 더 좋은 글과 결과로 보답하겠다는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남편은 내 눈빛과 목소리만으로도 알았나 보다. 지난 평가들로 인한 나의 낙담과 고민, 실망들을.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미팅 장소로 향하는 동안 나의 글과 평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다만 남편이 내게 남긴 인사말만 곱씹었다.
어떤 실망을 하고 올지, 라니 하하
미루어 짐작컨대 실망할 테니까 그냥 마음 편히 놓고 다녀와, 란 말인가.
도리어 이 말이 긴장을 풀어주고 위안이 된다고 하면 내가 좀 이상한 걸까. 어쩔 수 없는 콩깍지가 여즉 내 눈에? 어쨌든, 나를 나인 채로, 내가 밖에서 실망을 가득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사람이더라도, 그럼에도 내 곁에 당신이 굳건히 버티고 있어 준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새긴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시간과 체력을 쓰고, 그러는 동안 쉬이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져도 마음의 동요가 크지 않은 사람. 그에 따른 결과가 실망스럽다고 해도 잘 다녀오라고 툭툭 다독일 줄 아는 사람.
남편은 별스럽지 않게 다정을 내뱉고, 나는 그 다정을 곱절로 받아들여 꼭꼭 씹어 삼킨다. 그렇게 따뜻하게 불어난 마음을 결국엔 당신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베풀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