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김미경 강사, 그리고 나의 엄마
나의 평소 기상 시간은 아이들이 깨는 시간으로, 대체로 6시 그 언저리다.
물론 5시가 넘어가면서 둘째가 슬슬 잠에서 깰 준비를 하는 듯 자주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도 눈이 떠지긴 한다. 하지만 제발 더 자 주기만을 기도하며 둘째로부터 등을 돌린 채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완전히 일으키는 것을 5분, 10분 미룬다. 어느새 자리에 일어나 앉은 아이가 엄마를 부르짖고 아빠를 빽빽 불러대는 소리가 들리면 망설임 없이 일어나 아이를 안아 들고 작은 방으로 향한다. 작은 아이의 침대 위 횡포(?)에 30분에서 1시간은 더 잘 수 있는 남편.., 아니 큰 아이마저 잠에서 깰까 봐. 작은 방으로 향한 나는 못다 한 잠을 더 자고 싶은 마음을 이부자리에 눕힌다.
결혼 이전과 이후, 출산 이전과 이후의 삶은 눈에 띄게 달라졌는데 지난 삶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나라는 사람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듯하다.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부대껴 살다 스스로 지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은 대체로 변하지 않는 나라는 사람 때문인 것 같았다. 해야 할 일은 늘어나고 책임은 더욱 막중해졌는데 나는 전혀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탓으로 종종 육아가 버거워져 우울해졌고, 남편에겐 험한 말이 나갔으며 글 쓰는 일을 덮어두었다. 내가 선택한 사랑과 삶이었는데 어느샌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억울하게 만드는 것들이 되어 있었다. 동시에 그런 생각들로 인한 죄책감 혹은 실망감 또한 내 몫이었다.
돌연 한 순간에 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언제나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바쁘게 헤엄쳤다. 하지만 원래 무계획성, 충동적 인간이었던 내가 계획성 인간으로 변화하는 일은 시작부터 방향을 잘 알 수 없었고 어려웠다. 그러다 어디선가 김미경 강사가 한 말이 떠오른 것이다.
김미경 강사는 20대 후반, 대출을 껴서 피아노 학원을 차렸다. 하지만 스무 명 남짓의 수강생들로는 언제 대출을 다 갚을 수 있을지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때 친정 엄마가 종종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났다고.
"살다가 겁나거나 무서우면 일찍 일어나라"
김미경 강사는 이후 새벽 4시 반에 일어났고 캄캄한 새벽, 피아노 학원에 하릴없이 앉아 있다 보니 수강생 학부모들께 편지를 쓰게 됐다고 한다. 당신의 아이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 가르치고 있는지 등을 쓴 편지는 수강비 봉투에 담겨 집에 배달 됐고 그 때문인지 피아노 학원은 점점 입소문을 타 엄청 성공했단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할 일을 하는 것은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의 엄마를 보면 본받을 수 있다.
나의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지금은 더 앞당겨졌는데... 나이가 들어 습관에 더해 새벽잠까지 사라져 그런 듯하다) 가족들의 아침 상을 떡 벌어지게 차려두고 남편의 점심 도시락을 정성스레 싼다. 이는 엄마가 지난날 직장에서 과음을 하고 숙취로 힘든 날에도 어김없이 해내는 아침 일과였다. 나는 엄마의 그런 이른 시간의 일과들을 보며 당연한 일처럼 여겼지만 살다 보니 그 일이 얼마나 사랑과 정성, 열정,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나는 못할 것 같다 단정 지었다. 그러다 어제 엄마가 일찍 일어나 30분 동안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모두 계획한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다. 단순히 밥을 짓고 남편 출근을 시키고 쌓인 주방일로 아침 시간을 보낸다 생각했는데, 30분 동안은 가계부도 쓰고, 그날 은행 갈 일들을 체크하고 장 볼 목록을 작성하는 등으로 계획을 세운다고.
나의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겉과 속이 똑같고, 솔직하고 스스로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다. 철저하고 깔끔하며 엄청난 극 J 성향의 계획성 인간. 그런 엄마의 새벽 시간 30분 계획 일과를 듣고 나도 엄마처럼 하루를 철저하게 살아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계획 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구나.
한 편으론 나의 엄마는 왜 내게 그런 습관을 가르치지 않았나 했고, 또 다른 한 편으론 사람은 스스로 깨달아야 바뀔 수 있으니 미리 알았다고 해도 나는 안 바뀌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정말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커 가는 아이들이 나를 바라 봤으면 하는 모습으로, 멋진 엄마로 변화하고 싶다고 말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시작은 시작일 뿐이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큰 아이의 나이를 엄마로 살아가는 나의 나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변화하려고 하는 것은 도리어 이른 것 아닐까. 제 때에 잘 변화하려고 하는 것 아닐까. 인생 1장의 무계획적인 삶을 지나 2장이 펼쳐진 거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나의 변화,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30분 일찍 일어나 브런치북 연재글 작성을 계획한 것은 이렇게 탄생했다. 내가 브런치 글 하나를 쓰고 발행하는 속도로 보자면 30분, 아니 아이들이 깨기 전에 에세이 하나를 발행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해보려고 한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사설이 굉장히 길었다. 어제오늘 친정이고, 아이는 이미 깼으며, 엄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첫날부터 연재글 발행이 어그러질 뻔했다. 앞으론 글이 더 짧을 수도 있고, 엉망일 수도 있다. 마음에 안 들어 울고 싶은 심정으로 억지로 발행을 누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과 한 편의 짧은 글을 써내는 일이 습관이 된다면 나라는 사람의 밑바닥이 조금 다듬어지지 않을까? 지반이 다져지지 않을까.
(*본문 중 김미경 강사의 일화는 제 기억과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