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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May 14. 2024

나는 고요 속 울림이다.

할 줄 아는 게 이뿐이라

오늘 아침, 30분 일찍 일어났다 하여도

계획한 글을 연재하지 못했다.


몇 번이고 생각한 문장을 머릿속으로 썼다 지웠다.

일요일엔 휴재를 하고 다음엔 용기를 내 보아야지 했다. 화요일 연재에는 지난 9일에 알게 된 소식을 적어야겠다고, 그 고백은 먼동이 틀 무렵 가장 먼저 그녀에게 가서 닿게 될 거라고, 그리 알게 된 가슴 씁쓸한 소식은 그녀의 마음에 장대비를 내리게 할 수도, 부리나케 막내딸에게 전화를 걸어 괜찮다 위로를 할 수도 있겠지, 상상했다.

그렇게 간신히 내어 본 용기를 재차 접어두었다. 하루만 기대와 설렘을 연명해 보자 마음먹었다. 지금의 이 연재 글은 그렇게 미루어진 고백이다.




작년 연말 즈음이 되어서는 몸도 마음도 힘이 들었다. 평온한 일상 뒤엔 두려움과 불안함이 움트고 있었다. 언제나 똑같은 하루였지만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똑같지 않기를 기대했다. 준비하던 글이 있었고 24년 2월이면 공모 마감이었다. 그 공모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글을 완성하면서, 또 공모를 하고 난 뒤에도 시간이 갈수록 불안함보단 어떤 기대와 설렘이, 얼마간은 확신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다시 그 글을 쓰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똑같은 결과물이 나올 것처럼, 당시의 나는 최선이었다. 그래서 후회는 되지 않지만 최고라 말하지 못하는 건 어쩐지 상처다.


결과적으론 떨어졌다.

최종 발표가 난 것은 아니지만 이미 개별 연락이 돌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난 9일, 어쩐 일인지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 결과 발표를 검색해 보고 싶었는데 관련한 카페 글을 보게 된 것이다. 작성자는 당선자 발표와 관련하여 공모 주최 측에 문의를 하니 9일 오후에 이미 개별 연락을 모두 돌렸다는 답변이 왔다고 했다.


가슴이 뛰었다.

거짓말은 아닐까, 거짓일 순 없을까, 올해 작성한 게시글이 맞는 걸까, 관계자가 착각을 한 건 아닐까, 어떤 실수나 오류가 있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가슴이 턱 막히고 눈앞이 캄캄했다. 왜 그러는지 묻는 남편에게 떨어졌단 대답을 돌려주었다. 결국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스스로 떨어졌단 말을 내뱉는 것으로 가슴 깊이 못 박은 것이다.

노트북을 덮고 방으로 돌아왔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양 귓가에 울려 퍼졌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에 몸서리가 처졌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시간을 좀먹으며 고집을 부리는 동안 이 아이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보는 것은 아닌지, 나로 인해 이 두 아이의 인생이 보잘것 없어지거나 초라해지는 것은 아닌지 무서워졌다. 그럼에도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차마 놓지 못하는 내가 과연 용기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매번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만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아 주눅이 들었다. 방 안의 공기가 나를 저 끝 심연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계속 뒷덜미를 잡아채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남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캄캄한 방 안에서도 다 보이는 듯했다. 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틀간은 떨어졌단 사실을 받아들였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에 다른 내용들을 검색해 보았다가, 다시 절망에 빠져 침울해지는 일을 반복했다. 이 공모를 끝이라 할 생각은 없었지만 끝이기를 바랐던 마음에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그러다 나만을 바라보는 두 핏덩이들과 지극한 사랑에다 존경까지 해 주는 한 남자와 태초부터 내 글을 지지해 주는 삶을 살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만 같은 부모님을 생각하니 이렇게 쓰러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제와 오늘은 똑같고, 내일도 오늘과 틀림없이 같을 테지만, 어느 날의 하루는 지금과 분명 달라야 했다. 우울에서 벗어나는 일도, 허우적대는 스스로를 건져내는 일도 모두 내 몫이었다. 누군가 나를 대신할 수 없다면 어떤 순간이든 나는 나를 살아내야 했다.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기보단 오늘을 제대로 살자고, 준비가 되면 나를, 나의 글을 알아보는 사람은 반드시 생길 거라고 다짐에 다짐을 더했다.


나는 뿌리가 깊은 나무이자 고요 속 울림이고 잔잔한 파도이다. 시간이 갈수록 웅장해질 것이고, 반드시 누군가의 귓가에 닿을 것이며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어느샌가 스며있을 것이다.




이 고백을 굳이 브런치북에 연재하고 싶었던 이유는 지금의 시련이 내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하찮은 첫 번째 시련일 것 같아서이다. 그렇다는 것은, 이 일이 곧 내 인생의 시작이자 변화의 발걸음이므로 첫 연재를 시작한 브런치북에 쓰는 게 옳겠다 싶었다.


나의 강력한 지원군이자 꾸준한 응원을 보내주는 사랑스러운 부모님께 두서없는 설명이나 되지도 않는 핑계로 사실을 전하게 되는 것도 싫었다. 떨어진 이유를 분석하는 것도, 그러다 마음에 또 다른 생채기가 생기는 것도, 재차 눈시울이 붉어질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떨어진 사실과 그에 대한 마음만을 당신이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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