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향 May 17. 2024

고비

그럼에도 글이 좋아서

[254 프로젝트: 아침사색] 연재 브런치북의 제목을 [254 프로젝트: 1일1사색] 으로 바꾸었다.


스스로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브런치북은, 30분 일찍 일어나 하루의 시작을 글쓰기로 시작해 보자는 취지였지만 대부분의 하루를 새벽에 잠들게 되면서 피로가 쌓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육아라는 것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 일찍 일어난다 해도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연유로 브런치북 연재에 고비가 생겼다. 나의 체력적 한계와 수면부족으로 인해 일주일 동안 그간 없던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육퇴를 하고 밤중이 되어서야 그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다. 커피로 체력을 가까스로 연장하며 책상에 앉는다. 254 프로젝트 번외 편으로 또 다른 연재 브런치북인 독서노트도 연재를 하고 있기에, 관련 책을 읽으려고 부러 책상에 앉기도 한다. 그렇게 잠자는 시간이 늦춰지면서 동시에 새벽 다섯 시 삼십 분에 일어나는 일이 굉장히 힘들어진 것이다.


며칠은 이 또한 적응이 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미루기 습관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한 번 세운 계획이 바뀌거나 어그러지는 걸 경계하는 탓도 있었다.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에서 벗어나 의무적으로, 기계적으로 글을 써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브런치북은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한 도구 같았다. 그래서 연재를 계획한 이후로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하루 휴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마저도 또 이러는구나 싶어 괴로웠다. 자책과 스스로를 옥죄는 마음이 커져갔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많이 자야 네 시간 정도의 시간을 자면서 버거운 하루 일정을 소화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내가 한 달 뒤에도 이 연재를 흔쾌히 하고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 계획을 세운 듯했다.

오래 글을 쓰기 위해, 아이들과 행복한 매일을 보내기 위해 스스로를 놓아줄 필요도 있어 보였다. 워낙 무계획성이 투철한 삶을 살아오다 보니, 계획을 세우는 일도 지키는 일도 어려웠던 모양이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나 자신을 너무 모른 탓이다.  



낮동안엔 조금이나마 가계에 도움이 될까 싶어 소소하게 (글이라면 글인) 글쓰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업무를 마치고 아이들 저녁을 하고 나면 내게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엉망인 집을 쓸고 닦기라도 할라치면, 밥 먹는 시간까지 아까워지고 만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움으로 인해 이리도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즉 이렇게 지냈어야 할 삶을 너무 평온하게 연명만 해왔던 것인지 혼란스러운 지경인데, 생각 끝에 내려지는 결론은 단 하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어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는 것. 오히려 진즉 이렇게 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것. 매번 귀찮은 일들을 뒤로 미루고 나의 시간을 펑펑 쓴 것에 대한 대가로 지금 이렇게 힘들구나, 싶다는 것. 하지만 이 힘듦이 결코 버거워 못 견디겠다거나 도망치고 싶다기보다 도리어 감사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가정을 꾸리는 일은 힘들고 버겁고, 책임감이 막중해 어쩔 땐 공포심이 들 정도인데, 그럼에도 이 삶이 내겐 굉장히 가치 있는 일로 느껴진다. 두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글 또한 얼마나 열심히 잘 쓸 수 있을까 싶어 진다. 물론, 결혼과 육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가치라거나 어떤 갈림길에 놓였을 때 방향성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나라는 사람에게는 그렇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하는 일도 피곤하다고 미루고 충동적으로 잡은 친구와의 약속으로 미루고 이러저러한 여러 이유들로 미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자면 내가 오늘날에 이토록 적응을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것도 예상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으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하지만 내겐 결혼과 육아라는 상황이 그 힘든 일도 해낼 수 있도록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시절보다 정신 없는 지금에 와서 더 많은 글을 써내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 글들이 비단 내게 어떤 금전적 이익을 가져다주거나 위상을 높여주는 등의 실질적인 도움으로 와닿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것만으로도 어쩐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엔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생각의 꼬리를 붙잡고 글을 쓰려고 할 때 주춤거리던 지점을 이겨내지 못하고 덮어버렸다면, 지금의 나는 그 지점을 밟고 올라 기어코 글을 써낼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생각의 실체를 조금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이 모든 것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며 벅찬 사랑을 느낄 때마다 브런치에 써낸 글 덕분인 듯싶다. 브런치북을 연재하는데 고비를 겪는다 해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글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시간이 더디 걸릴지라도, 나라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완성될 것 같다. 아니, 완성이란 건 없겠지. 그저 성장만이 있겠다.




최근, 누군가가 내게 어떤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물은 적이 있다. 철학이라. 종종 듣지만 매번 생경한 단어란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다 툭 뱉었다.

누구나 태어나,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란 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내겐 그 사명이 글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인 듯하다고. 종국엔 '이기적이타심'을 이루고 싶다고.


나는 이런 나의 변화가(스스로 변화라고 생각할 만큼, 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드디어 나의 사명을 위한 초석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조금 늦었을지 모른다. 그러니 건강해야 한다. 오래 글을 쓰고, 내 사명을 다하기 위해선 매일 두통으로 타이레놀을 입 안에 털어 넣으면서는 힘든 여정일 것이 분명하기에.





이전 05화 나는 고요 속 울림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