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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May 20. 2024

바람이 내게 하는 말

찰싹찰싹

주말이 금방 지나갔다.

날씨도 미세먼지도 좋은, 실로 오랜만인 날들이었다. 이런 날에 집에만 있는 건 아이들한테 못할 짓이라 하루 종일 바깥을 돌아다녔다. 아침 한 끼를 제외하곤 모두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와 집에선 씻고 잠을 자기만 하면 되는 일과로 말 그대로 열심히 놀아주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조카네와 함께할 수 있어 어떤 든든함을 느낀다. 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지근거리에서 서로의 육아에 의지를 할 수 있는데, 이번 주말에도 내내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나의 두 아이와 조카 또한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주고 있는 듯하다. 물론 얼마쯤 투닥거려 돌아가며 울기도 하지만 말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큰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키즈카페를 시작으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생태공원에도 갔다. 캠핑 의자와 돗자리를 펼치고 벌레들을 쫓아가며 아이들과 아이스크림도 나누어 먹었다. 개미 한 마리로도 아이들의 호기심과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고 공 하나로도 하하 호호 웃고 떠들기 딱 좋은 시간. 아이들에게 수많은 걸 해주지 않고도, 자연이 주는 것들 중 몇 가지를 빌려 놀아도 최고를 맛보는 듯한 시간.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자처한 듯, 아이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자연물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돗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공원에 나와 돗자리에 눕는 일이 얼마만인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커다란 나무와, 그 잎들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그리고 얼굴 위로 듬성듬성 내리쬐는 태양과 차르르 바람에 떨리는 나뭇잎들이 이 세상에 전부인 듯했다. 그 어떤 시름도, 고민도 걱정도 없이 자연이 나를 감싸 안은 그 시간이 행복했다. 고작 10분 됐으려나 싶은 그 시간 동안 아주 오랜만에 평온함을 느꼈다. 아이들을 위해 찾은 자연에서 내가 위안을 받는 듯했다.


차르르 떨리는 바람이 지나고 나면 여기저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다가 나의 아이가 저 쪽에서 하하 호호 웃는 소리도 들렸다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풍경을 채운다.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라치면 어느덧 다시 몰아 든 바람에 나무가 온몸을 흔든다. 눈을 뜨고 나무가 흔들리는 모양새를 본다. 문득 영화 달콤한 인생의 한 토막이 떠오른다.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


“움직이는 건 나뭇가지도
바람도 아닌, 네 마음뿐이다.”


살다 보면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순간이 많은 것을 느낀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욱 그렇다. 나를 흔드는 건, 아이들의 말썽도 벅찬 하루 일과도 부족한 시간도 아니다. 그저 내가 스스로를 다잡지 못하는 탓이다. 지금까지 대체로 그래왔던 듯싶다. 주어진 상황을 못마땅해하거나 해야 할 일과를 마냥 귀찮아하고 그렇게 버린 시간을 후회하며 스스로 쫓기는 인생을 살았던 듯싶다.

이리 쓰다 보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소리가, 차르르가 아닌 찰싹찰싹 이어도 좋을 만큼 내게 주는 채찍질 같단 생각이 든다.




매일 아이들과 투닥거리며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을 궁리한다. 휴일이 다가오면 무엇을 해주면 좋을지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 된다. 그러다 오늘 같은 날이 되면 새삼 깨닫는다. 내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있다기보다 아이들이 내게 무언가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아이들로 인해 수없이 많은 것들을 깨닫고 알게 된다는 것을.


내가 나를 흔드는 동안에도 나를 다잡는 건 아이들이다. 삐걱거리는 순간에도 아이들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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