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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May 22. 2024

기분 좋은 긴장감

어제 오후 4시쯤 집을 나선 나는 자정을 훌쩍 넘겨서야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은 친정 엄마와 남편의 손에 맡겼다.

그 덕분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밤공기를 맞았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공모전에 떨어진 사실이 불현듯 가슴을 울렸는데 어제는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재차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공모전을 전후로, 잘 들어가지 않던 작가지망생 커뮤니티를 다시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몇몇 정보들을 얻게 되고 또 어떤 모임 하나를 알게 된 것이다. 그 모임은 내게 낯선 것이 가져다주는 두려움과 함께 제대로 된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설렘, 간절한 마음으로부터 파생된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 내게 글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은 생각지 않은 채로 아르바이트 생활을 지속하며 글만 쓰자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딱히 취업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글에 대단한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막연하게 취준생의 길로 뛰어들고 싶지 않은, 하기 싫은 건 안 할 거라는 무책임한 성질에서 비롯됐다. 그땐 직장을 다니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핑계가 마치 나의 명확한 입장이자 신념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후회하는 것들을 되새겨 보자면 내가 스스로를 속인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지만 다른 전공을 공부해 볼 걸 그랬다는 후회, 그래서 다양한 직업들을 경험해 보았다면 글을 쓰는 일에도 결국은 더 이롭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취업을 준비한다고 해서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까 싶은 자기불확신과 취준생 대비 작가지망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자기만족 혹은 허세, 할 줄 아는 거라곤 글뿐이라는 기만이 깊은 고민은 덮어둔 채로 스스로를 속이고 후회를 낳게 했다.


글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대해서 아주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질문을 받고 울컥했다. 마냥 좋았던 일이 삶이 되고, 나라는 사람의 지표가 되고, 현실적으로는 생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서글펐던 걸까. 좋아만 할 수 없고 잘해야 한다 생각하니 실은 자신이 없었던 걸까. 그 외의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몰라 두려웠던 걸까.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대답을 돌려주었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글에 대한 막연한 감정만이 떠오른다. 과연 내가 글이 좋아서 쓰는 것인지, 이제 와 다른 무엇을 선택할 용기가 없어 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막연함이.



어제 나는 약속 시간보다 제법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가 집에서 먼 거리에 위치해 있기도 했지만 길눈이 어두워 길을 잘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될까 걱정도 됐고 괜히 여유를 부리다가 지각을 해서 안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 것도 싫었다. 2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는 동안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이 지우개를 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마저도 긴장이 돼서 토할 것 같았다. 억지로 햄버거를 욱여넣고 시간만 계속 확인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듣고자 모임에 나온 일이 낯설어 두렵기도 했지만, 그게 내 감정의 전부를 설명할 순 없었다. 이게 무어라고, 왜 떨리고 긴장되는 것인지 줄곧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그만큼 간절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예창작과 입학과 졸업 후 라디오 드라마를 쓰게 되어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려본 일들, 몇몇 사람들에게 재능이 있단 말을 들어본 경험을 빌미 삼아 내 꿈의 수명을 연장하기에는 부족했다. 보다 확실하게 내가 될 성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이를 더 이상 오래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즈음해서 그 모임이 내게 일말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전환점이 되어줄 거라는 기대로 왔는데, 그 기대마저 처참히 무너질까 봐 긴장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만약 기대가 무너졌다면 공모전에 떨어진 걸 알게 된 순간보다 더 허망했을 것 같다.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도 했는데 다시 또 다른 터널, 아니 그보다 더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는 않았겠지만 한동안은 방향을 잃고 제자리걸음을 걷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의미로 어제 모임에 대한 내 느낌이 긍정적이라는 점은 지금 내가 갖는 마음가짐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스로 느끼는 내 안의 변화의 바람과 작은 파도가 풍랑을 만난 것 같다는 생각, 그 풍랑이 이끌어줄 곳까지 제대로 노를 저어야 한다는 일종의 다짐 같은 것들이 샘솟는 것이다.




내게 글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내가 글로 무얼 해야 하는지 아는 것보단 그렇다.


나는 좋은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게 나의 사명이자 내가 글로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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