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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May 26. 2024

하루 하나씩, 따뜻함 한 스푼

온기에 대하여

토요일 아침. 남편이 집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카네가 놀러 왔다.

남편은 회사에 1박 2일 야유회 일정이 있어 이른 아침부터 밥도 먹지 않고 집을 나선 참이었다. 진즉 내게 허락을 구했고, 보내주고 싶은 마음에 부러 언니와 공동 육아를 할 참으로 집에 초대한 것이다.

만 3세, 2세, 1세의 아이들이 모인 집은 누구 하나 입을 쉴 수가 없다. 시끌벅적 도떼기시장 저리 가라다. 틈만 나면 장난감 하나를 두고 셋이 다투고,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일을 가지고 투닥거리고 밀치고 때린다. 주로 말이 서툰 막내의 손이 먼저 언니 오빠를 향해 나간다. 그걸 말리느라 나도, 친언니도 형부도 '어어어! 안돼!' 난리다.


토요일 저녁으로 아이들을 위해 누룽지 백숙을, 어른들을 위해선 김치닭볶음탕을 만들었다. 누룽지 백숙이 압력솥 안에서 탈까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는데, 불 조절도, 물 조절도, 닭의 크기도 찹쌀의 양도 모두 적절히 알맞았던 모양인지, 처음 한 요리치고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전골냄비에 한 닭볶음탕에 비해 가슴살마저 야들야들 맛이 좋았다. 나는 '애들 세끼 배불리 먹이기 미션'을 모두 끝마쳤다는 성취감에 젖어 굳이 양껏 먹지 않아도 풍요로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부터 모두 집에 모였을 때 우스갯소리로, 오늘 하루는 밖에 나가 있는 남편보다 신나고 즐겁게 노는 게 목표라고 명령 아닌 명령을 했었는데 모두가 제법 신나게 논 듯했다. 적어도 친언니가 조카를 재우다 곯아떨어진 걸 보면..., 나름 목표를 달성한 듯하다.


    



주말 동안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특별히 더 정신없고 지치는 이유가 있다.

하루 세 끼니를 챙겨야 하는 일로 거의 부엌에서 살다시피 해야 해서 버겁지만, 아이들이 심심함에 서로 투닥거리는 일이 잦은 것 또한 힘들다. 주방에서 야채를 하나 썰더라도 시선은 매번 아이들을 쫓고, 입은 쉴 새 없이 '하지 마라', '그만해라', '싸우면 혼난다', '안 돼!'를 부르짖는다. 단 삼십 분이라도 침묵을 유지해보고 싶지만 불가능에 가깝다. 침묵은, 아이들이 낮잠에 들면 찾아온다.


아이들의 낮잠으로 이룬 침묵은 곧 평화다. 1시간짜리 평화.

그땐 잠든 아이들의 얼굴에서 안온함을 느낀다. 오전 시간 동안 평정심을 유지하고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은 채로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안아주기 바빴다면, 나의 인내로 일군 엄마로서의 건재함, 위엄 같은 것들을 스스로 추켜세우기도 한다.

만족은 대체로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을 베풀었는지에서 찾아온다. 베풀 수 있는 건 한도 끝도 없지만 그중에 제일은 따뜻한 마음이란 생각을 한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따뜻함 한 스푼은 서로의 마음을 온기로 물들이기에 충분하다. 오늘과 같이 비가 내려 흐린 날씨 속에서도 아이들과 내가 나눈 따뜻함처럼.

 

하룻밤을 함께 잔 친언니가 오전 10시 즈음 야유회에서 돌아온 남편과 바통 터치라도 하듯 점심을 먹고 돌아갔다. 나는 곧 아이들과 함께 낮잠에 들었지만, 작은 아이의 울부짖음과 발차기가 평화를 깨웠다.

아래 양쪽 어금니가 나면서 이앓이가 있는 모양인지, 요 며칠 잠에 들기 힘들어하고 곧잘 울면서 깨는데, 오늘 낮잠을 자는 중에도 그랬다. 너무 심하게 발차기를 해 가슴과 얼굴을 몇 대 맞았다. 13킬로가 넘는 퉁퉁한 아이의 발은, 아무리 아이라지만 맞으면 아프다. 요란하게 발버둥을 치는 아이를 붙잡고 하지 말라고 어른다. 이를 악물고 무섭게도 말해 본다. 그러다 큰 아이까지 짜증을 내면서 깬다. 둘 다 잠 깨면 나오라고 이른 뒤 먼저 방을 나선다. 나보다 조금 더 인내심을 발휘한 남편이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차례로 안아 달래고 거실로 데리고 나온다. 나도 마음을 재차 가다듬고 한 명씩 안아준다.

큰 아이가 자고 일어나면 비 구경 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날이 아직 어둑하기만 하고, 비가 내리는 것 같지 않아 그 약속을 잠시 후로 미룬 뒤, 쌀을 씻어 밥부터 안친다. 그 사이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제법 내리는 듯하다. 옷을 입히고, 장화를 신겨 밖으로 데리고 나갈까 망설이다가 바람이 너무 불어 장소를 베란다로 바꾼다.  

남편이 키우는 식물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 베란다에서 최근 꽃을 피운 호야도 구경하고 율마를 손에 그러진 뒤 향도 맡아본다. 평소 식물과 건조대의 빨래, 흙이나 물이 너저분하게 있는 베란다는 아이들에게 놀이 공간이라기보단 금지된 공간인데, 오늘 같은 날 비 구경이라는 명목으로 데리고 나오니 두 아이들이 비를 타고, 구름 타고 날아다니는 듯싶게 신나 한다. 활짝 열린 창, 방충망 사이로 빗물이 튀기도 하고 거칠기만 하던 바람이 부드럽게 아이들과 내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기도 한다. 큰 아이에게 빗소리를 잘 들어보라고 말한 뒤, 무슨 소리 같은지 묻는다. 아이가 얼마간 생각하다 바닷소리 같다 대답한다. 아이의 말대로 그 순간 파도가 치는 바닷가에 나와 있는 듯, 착각에 빠진다. 나는 큰 아이에게 나의 어린 시절의 한 토막을 들려준다.



어렸을 적 장마가 한참인 시절에, 나는 집에서 낮잠을 자다 튀김 하는 소리가 들려 불현듯 잠에서 깬 적이 있다.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달려가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튀김도, 그 무엇도 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밖에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을 뿐, 창문을 비바람이 타닥타닥, 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튀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실망을 하기보다 왜 튀김 안 하냐는 내 물음에 호탕하게 웃으며 나를 안아주던 엄마의 품이 좋았다. 내가 빗소리를 튀김 소리로 착각해 엄마를 웃게 한 사실이 기분이 좋았다.

 

그 기억과 함께 나의 열두 살 어느 새벽이 떠올랐다. 곧 아침 해가 떠오를 시간이었는데, 학교에서 제주도로 소풍을 가는 날이었고 다니던 초등학교가 아닌, 다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버스를 타야 했었다.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엄마의 손을 잡고 등하교를 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해가 채 다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서야 해서 처음으로 엄마 손을 잡고 버스를 타러 간 것이다. 일찍 나온다고 나왔지만 아마 시간이 촉박했던 모양인지, 엄마는 버스가 막내딸을 두고 떠날까 싶어 어느 순간부턴 내 손을 잡고 헐레벌떡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길에서 마주한 심술궂은 중년 남자 세 명이 혹시 00 초등학교에서 버스 타야 하는 학생이냐며, 그 버스 이미 떠났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럴 리가 없다고 진짜냐고 재차 물었고 남자들은 장난이라며 키득거렸다. 순간 엄마는 정말 중년 남자 셋을 단숨에 물리칠 수도 있을 것처럼, 겁도 없이 욕을 한바탕 날려주었다. 중년 남자 셋이 엄마와 나에게 미안하다 사과까지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용맹한(?) 엄마 덕분에, 마치 나를 기다려준 듯한 버스에 무사히 탈 수 있었고, 버스가 떠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내게 손을 흔드는 엄마를 바라봤었다.

이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기억을 하는 순간들 중 가장 따뜻하고 가슴 먹먹한 추억이다.

그 당시의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을 일일이 나열할 순 없지만,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막내딸을 위해 몇 주 전부터 점퍼를 사 주고, 보내지 못하게 될까 노심초사하며 새벽 어스름진 거리를 달리던 엄마가 내겐 그 자체로 사랑이고 애잔함으로 남아있다.

누군가 내게 버겁고 힘든 삶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이 될 수 있는 추억이 있느냐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열두 살 새벽 어스름 속을 내 손을 잡고 뛰던 엄마라고 할 것이다.



   

아이들과 빗소리를 들으며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일도, 내 아이의 어린 시절 속 한 장면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도 경이롭지 않은가, 생각했다. 그저 그런 날들일 수 있는 하루 속에서 별 것 아닌 이야기로 웃음을 나눈다는 게 행복하다 느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온기를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 일이, 그리고 그 일이 훗날 추억할 수 있는 옛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이 불쑥 가슴을 일렁이게 했다. 말이 서툰 작은 아이에게는 빗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확답을 받지 못했지만, 신이 나서 방방 뛰는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그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비 구경 이후로도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며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언제 이앓이로 아파하며 울었는지 싶게 작은 아이도 기분이 많이 나아진 듯보였다. 정말 이 아이들에게 베풀 수 있는 것들 중 제일은 나의 따뜻함인 것 같이,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고도 충분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하루.

그리고 아이들에게 매일 따뜻함 한 스푼을 줄 수 있기를,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줄 수 있기를, 그렇게 모아진 온기가 아이들을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고, 훗날 나로 인한 기억들이 힘든 삶 속에서 스스로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엄마가 내게 그러한 것과 같이, 나 또한 이 조그만 아이들에게 그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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