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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May 29. 2024

새로운 창 하나를 마련할 때

꿈의 마지노선

나는 줄곧 내게 주어진 길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쉽게 지쳐서도, 감히 포기를 생각해서도, 좌절해서도, 다른 돌파구를 마련해서도 안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와 삶이 달라져서 그런지 예전엔 쉬이 혼란스럽지 않았다면 지금은 내게 주어진 길이 이뿐이 맞는 걸까, 내가 너무 사방이 막힌 곳 중심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고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 드라마 공모전을 위한 모임으로  첫 만남에선 희망과 설렘, 기대에 찬 감정을 주로 느꼈다면 두 번째 만남에선 혼란스러움이 주된 감정이었다. 돌아오는 길, 가는 방향이 같은 모임원에게 글 쓰는 건 어렵고, 배우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할 때마다 느낌표보단 물음표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모임원도 일면 공감하는 부분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다. 배우면 배울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가, 진즉 된 것도 같았다가 다시 깊은 좌절에 빠지는 듯했다.

마치 송골송골 물이 솟아나는 곳을 발견하고 여러 장비를 마련하여 파고파고 또 팠지만 우물은커녕 목을 축일만큼의 물도 만나지 못한 것처럼. 주변의 손바닥만큼의 흙만 적실뿐 그 물로는 쌀을 씻지도 밥을 지을 수도 없는 수준인 것이다. 그간 우물이 될 곳을 찾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열정,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딴짓 한 번 하지 않고 몰두한 정성들이 무용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곳을 둘러볼 수도 없고 내가 깊숙이 판 수렁에 매몰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진 일이 정확히 어떤 동기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부터 관련학과를 갈 생각이었다. 부모님은 나의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해 내가 말썽을 부려도 “작가는 그럴 수 있어.”, “작가는 한 번쯤 그래도 돼” 등등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나를 포용했다. 그런 끝도 없는 믿음 아래 나 또한 다른 길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도전할 용기도 가져보지 못한 채로 언젠가 폭포수 같은 물이 터져 그간의 서러움과 땀방울, 피로를 싹 씻겨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깊은 수렁도 안락해지고 적응이 되어 적게나마 흐르는 물로 세수도 하고 목도 축이지만, 이곳에 작은 창문 하나를 내보기로 했다.



문득 다른 일을 시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은 글 하나만을 붙잡고 달려온 내게 쉼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더 다양한 세상에서 해본 적 없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과연 그 일이란 것이 내게 결코 쉼이 되지 못할 수도, 나를 더 큰 시련에 가둘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 공모전에 몰입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정했다. 언제까지 해 보고 결과가 좋지 않다면 다른 일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다른 일은 아마 아이들이 제법 클 때까지 할 수 있어야 하며, 가계에 도움이 되면서도 내가 꼭 글이 아니더라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증명할 수 있을 테다. 글과는

깊은 연관이 없고, 내가 지금까지 접해본 적 없는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일이 도리어 내가 왜, 어째서 글을 사랑하는지 알아가는 여행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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