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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May 31. 2024

살고자 하는 욕망

오래 살고 싶은 마음도 욕망이라 할 수 있을까.

건강하지 못하다거나, 예상보다 오래 살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하면서 굵고 길게 살게 해달라고 소망하는 일이 욕망이라면, 난 전생에 삶에 대한 미련이 많은 욕망덩어리인 듯하다.




직장인의 삶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오늘 처음으로 남편의 회사 복지를 통해 건강검진을 받았다. 각종 기본 검사를 비롯하여 혈액, 소변, 부인과 검사, 갑상선 및 유방, 복부 초음파 검사, 위내시경 등 나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검진했다. 나는 어째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거나 특별히 다양한 영양제를 달고 산다거나, 운동과 식습관을 철저하게 지킨다거나 하는 등의 건강을 챙기는 일들을 소홀히 한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난 오래 살고 싶고 종종 불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주변인들은 이런 나를 신기해 하지만, 도리어 나는 삶에 대한 미련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내가 오래 사는 걸 꿈꾸는 사람이라 그런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에 대해 항상 관심이 많다. 그들도 어쩌면 한때는 오래 살기를 바란 적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어째서 죽기로 결심한 것일까.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크면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안타까움은 물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진다.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 실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죽음에 대해 갖는 두려움에 대한 근원적 이유를 굳이 전생까지 가서 찾을 필요도 없이, 그들로부터 깨닫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나도 그들과 똑같이 한낱 나약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내가 그들처럼 죽음을 바라보는 하루를 살게 될 수도 있고 그들 또한 나만큼이나 살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으로 스스로를 태워버린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 나 스스로를 이해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괜스레 너무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내가 가진 이야기만큼, 딱 그만큼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 나 자신을 탐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란 생각도 한다. 더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을 부풀려가는 일, 그렇게 커진 마음으로 다시 더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일이 문득 내가 글을 통해 하려는 일이라고 깨닫는다.




멀리 돌아온 듯하다.

건강검진을 하며 소변 검사용 소변을 쏟아 난감해진 이야기나, 체지방 수치에 자못 놀란 이야기, 산부인과 진료는 아이 둘을 출산하고서도 역시나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 혹은 처음으로 하는 수면 내시경이 신기했다는 등의 소소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건강검진을 받은 평범한 하루로부터 죽음과 자살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나라는 사람은 고리타분하거나 투박한 사람인 걸까.


사실 이렇게 장황하고 거창할 것도 없다. 그저 오늘 나의 하루를 통해 죽음을 택한 사람들의 살고자 하는 열망까지 들여다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의 하루 속에서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희망을 품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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