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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Jun 07. 2024

졸음을 무릅쓰고

핑계 대지 않는 사람

맥주를 마시면 졸음이 쏟아지는 걸 알면서도,

육퇴 이후의 일들이 쌓여있는 걸 알면서도,

오늘 나는 육퇴를 하기도 전에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럼에도 졸음을 무릅쓰고 책상에 앉아 브런치 에세이 연재를 비롯하여 치열하게 글을 써보려 한다.




일주일에 적어도 3일은 매일 브런치 글을 발행하고자 연재 브런치북을 기획한 것은 좋은 습관 들이기의 일환인 만큼 장기적인 이점에 대한 기대가 컸다. 처음, 두 시간씩이나 걸리던 에세이 한 편 발행하기가 매일 한 편의 짧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한 시간도 채 안 걸릴 때가 많다. 이는 확실히 좋은 점인 듯하다.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글만 쓰는 작가에서 벗어나 기계적으로, 의무적으로 글을 써보자는 다짐도 얼마간은 스스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종종 거침없이 브런치 연재 글을 써내는 걸 보면 과연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육퇴를 하고 노트북 앞에만 앉으면 눈이 뻑뻑해서 조금 걱정인데, 이젠 뻑뻑함도 잊을 만큼 글쓰기에 집중하는 경지를 기대한다. 이 또한 욕심이라면, 사람은 참 욕심이 끝도 없다.


게다가 오늘은 졸리기까지 하지만 아이들의 하원 후 맥주를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원 후 일정이 너무 정신없고 더워서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 안에 있는 맥주만 생각이 났다.

어린이집 근처 놀이터 두 곳과 족구장 한 곳을 왔다 갔다 하며 놀아준 것도 그렇지만 작은 아이의 커다란 눈에 벌레가 들어가서 화들짝 놀라 호들갑을 떠느라 진땀을 뺐다.

아이가 눈이 불편한 지 자꾸 비비려고 하길래 왜 그러냐고 눈을 후후 불어주려다가 까만 점처럼 죽어있는 벌레를 보았다. 나는 워낙 벌레를 싫어하기도, 무서워하기도 해서, 놀란 수준이 조금 지나친 감이 있었지만 정말 어쩔 줄을 몰랐다.

119에 전화해 응급처치 상담을 요청했고 수돗물로 씻어내고 안과를 방문하라는 답변을 얻었다. 놀이터 주변에 수돗가가 없어, 다시 아이의 어린이집으로 뛰었다. 눈을 벌리려 하자 아이가 놀라 울고 고개를 돌리고 뻗대느라 나를 비롯해 선생님 세 분이 매달렸다. 다행히 몇 번의 시도 끝에 벌레가 나왔고, 아이는 괜찮아졌는지 “이제 업떠” 말했다.


조그마한 아이 하나에, 그보다 더 작아 평소라면 소홀히 지나쳤을 벌레 하나에 성인 넷이 매달리다니. 허탈하고 민망한 웃음이 나왔다. 감사하다, 죄송하다 별의별 인사가 다 튀어나왔다.

수돗물을 맞은 건 아이가 아니라 나인 것처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이었다. 왜 그렇게 더운지, 새삼 내 주변으로  몰려든 선생님들한테 찝찝한 땀냄새가 전달될 것 같아 다급히 일어났다.

큰 아이가 더 놀고 싶어 해서 놀이터를 옮긴 참이었는데, 예기치 못한 벌레소동으로 그만 집으로 돌아왔고, 더운 열기를 식히려  맥주를 마신 것이다.

맥주를 마시기 위해 내가 소동을 일으킨 것처럼, 마치 벌레가 우리 집 냉장고에 맥주를 넣어두기라도 한 것처럼 맥주 하나 마시는 일에 별 핑계가 다 있다 싶다. 그래도 그럼에도, 글 쓰는 일엔 핑계를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졸음을 무릅쓰고 노트북을 켰다.


몇 자 쓰지 않았는데 작은 아이가 깨서 울며 방을 나왔다. 어르고 달래 같이 들어와 옆에 누웠다. 이 순간 취미로 게임을 하는 남편이 조금은 얄미운데, 핑계는 없다 했으니 어둠 속에서 누워 핸드폰으로 일기를 마무리 짓기로 한다. 그나마 두 아이의 사이에 누인 몸이 안락해서 좋다.




오늘 이 글을 연재하면 13화이다.

254 프로젝트는 254화까지 진행해 볼 생각인데, 고작 13화 만에 기계처럼 글을 쓰고, 시간을 줄이고, 거침없이 써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자못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나는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중에서 글에 핑계는 대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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