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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May 07. 2024

30분 동안 할 수 있는 것들

일상의 소중함

30분이라고 한다면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짧다고 느낄 수도, 길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나는 대체로 짧다고 느끼면서도 그 정도 시간이라면 많은 걸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성격 또한 급하다.


30분이라는 시간은 주로 평소에 아이들의 하원 전 저녁으로 국 하나 정도는 끓여놓을 수 있는 시간이고, 그보다 앞서 저녁을 해 두었다면 책을 몇 페이지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하원 전 잠깐의 시간 동안 책을 읽게 될 때에는 집중을 하기 위해 소리를 내서 책을 읽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30분이라는 시간이 제법 책을 읽기에 그리 짧지 않은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성격이 급하여 주어진 시간 내에 할 일이 있다면 ”빨리빨리 “의 정석이 되는 나는, 30분 동안 두 아이를 모두 씻기고 머리를 말려 새 잠옷으로 말끔히 갈아입힐 수 있고, 거기에 더해 잠자리에 들기 전 돌돌이로 침대 위 각종 먼지를 없앨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의 입원 가방도 쌀 수 있다.




오늘로 작은 아이가 폐렴으로 입원한 지 꼬박 5일이 되었다. 일요일은 어린이날이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토요일은 아이의 두 번째 생일이었다. 아이의 두 돌을 위해 나는 수수팥떡을 직접 만들어 주려 며칠 전부터 레시피를 달달 외다시피 하며 재료를 사다 놓았고, 생일상 메뉴를 고민하며 5월의 첫날에는 장을 봐두기도 했다. 결과적으론 작은 아이는 생일 당일에도 병실이었고 수수팥떡은커녕 미역국도 아닌 병원에서 나오는 콩나물국을 먹었다. 아이는 병실에서 복도 산책을 나가는 것만으로도 방방 뛰며 좋아하고, 다시 들어가야 할 때에는 예민해지며, 남편과 내가 교대를 할 때에는 집에 가는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울었다. 울음이 길진 않았지만 이 작은 아이가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답답할지 짐작이 되었다.


병원에서 보내는 하루는 길고도 지난하다. 아이랑 한껏 놀아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돌아보면 30분이 아닌 15분도 채 안 되었을 때가 많다. 내가 답답해하면 아이도 답답한 지 쉽게 짜증을 내고, 종종 땀을 흠뻑 흘릴 정도로 운다. 마치 한 번 그리 울고 나면 답답함은 좀 가시는 듯, 한동안은 병원 생활이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일상을 지낼 땐 30분도, 1시간도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일과가 지긋지긋할 때도 있다. 아이들이 없는 점심만이라도 앉아서 여유롭고 맛있게 먹고 싶지만 밥 먹는 시간으로 30분을 소요하는 게 사치일 만큼 몇 번이고 시간을 확인하며 입에 밥을 넣는 날도 많다. 아이들을 하원하러 나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집에 데려와 얼마간 놀아주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마치 오르막길 꼭대기로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시포스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굉장히 틀에 박힌 이야기이고, 지나치게 보편적인 내용이 되겠지만 병원 생활을 하게 되면 단 하루만에 일상이 그리워지고 차라리 시간에 쫓기듯 바삐 움직여야 하는 일과를 살아내고 싶어 진다.

내가 할 일이라곤 아이의 드러나는 병세를 면밀히 살피는 것 말곤, 청소를 하거나 쓰레기를 비우거나, 밥을 하는 일도 없는 이 병원에선 정신없는 일상이 꿈이 된다. 소망이 된다.




지난밤, 아이와 나란히 누워서 손을 잡고 집에서 자기 전에 하던 것을 했다.

“잘 자. 사랑해. 3초간 웃음 발사! 하하하하하하”

아이가 먼저 했는데, 귀여워 웃음이 났다. 웃다 보니 힘이 났다. 나는 아이에게, 내일은 집에 가게 해 달라고, 누구한테 빌어야 하는지 모를 기도를 하자고 말했고 아이는 아마 집에 가자는 말만 알아들었겠지만, 네에~ 대답하곤 잠이 들었다.


병실에 창문이 없다. 비가 온다 했는데 지금도 오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와 집에 가게 된다면 비가 와서 이것저것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차라리 빗 속을 달리는 것이 낫다.

맑은 날, 긴 병원 복도를 지나 휴게소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는 것보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우산도 없이 아이를 들쳐 안고 뛰어야 하는 일상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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