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속에서 없는 시간도 만들어 짜내야 하는 열정
저녁 마지막 시간에 6시 반에 겨우 들어갔습니다. 헌혈 가능일보다 사흘 뒤에 말입니다. 보통 일반 헌혈의 집은 평일 10시에 문을 열어서 오후 8시에 문을 닫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헌혈을 하려면 전혈의 경우 30분 전에는 입장을 해야 합니다. 성문헌혈(혈장, 혈소판, 혈장 혈소판)의 경우 최소 한 시간 전에는 헌혈의 집에 도착을 해야 합니다. 정기적인 다회 헌혈자에게는 헌혈이 숙제라, 그러니까 평생의 과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헌혈 횟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은 성분 헌혈을 할 수 있고 나서부터입니다. 사람의 혈액 전체를 빼는 전혈의 경우 첫 헌혈 후 2달 후에나 헌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같이 다회 헌혈자의 경우에는 두 달을 기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정표에도 적어놓고 다음 헌혈을 기다리고 마음으로 준비를 합니다.
664회 헌혈 3월 17일(월) 판교에서 했으니 665회 헌혈은 원래대로면 3월 31일(월) 말일부터 가능했고 계획대로라면 그날 월요일에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퇴근도 늦었습니다. 해야 하는 날 헌혈을 하지 못하면 저처럼 헌혈을 숙제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뭔가 찜찜한 하루가 됩니다. 그런데 다시 화요일 하루가 지나고 수요일 이틀이 지나도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서는 헌혈할 시간을 잡아야 하는데 속이 타들어갑니다. 정말 마음이 급해집니다. 이번만 그런 게 아닙니다. 최근에 아니죠 헌혈을 평생 끝까지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고나서부터는 그렇게 됩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시간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헌혈. 정말 괴롭습니다. 헌혈자는 자고로 시간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게 40년을 해왔으니 헌혈왕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거겠죠.
오늘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정말 드물게도 이렇게 여유가 있는 날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앞서 헌혈을 하고 나서 딱 헌혈이 가능한 날에 시간을 낼 수 있어서 여유 있게 헌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차도 편하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쾌적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헌혈의 집을 곳곳을 다녀보니 각 공간이 주는 특징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동탄 2 헌혈의 집은 두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커다란 전면 유리창으로 넓게 보이는 공간은 경부고속도로 지하하 구간인 동탄터널의 윗부분입니다. 아직 빈터가 많고 기초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이런 날은 감사한 날입니다. 헌혈을 많이 하다 보니까 헌혈의 집 간호사 선생님들이 헌혈을 저를 보고 놀랍니다. 오늘도 헌혈 전에 하는 상담실에서 선생님이 자기가 근무하면서 이렇게 많이 하신 분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와! 6백 번을 훌쩍 넘게 헌혈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냥 그렇지요. 뭐.... 후후" 이제 담담하게 넘어갑니다. 예전에는 좀 뭐랄까 목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었습니다. 난 이렇게 많이 했으니 알아서 좀 더 특별하게 대우해 줬으면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수십 년 전일이지요.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 당장 헌혈하는 사람이 귀하고 고마운 사람입니다.
헌혈왕! 이런 소리를 많이 듣는데 몇 백회 이상 헌혈을 하신 헌혈자 분들을 소개하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늘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참 쑥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왕이라니요... 너무 쑥스럽습니다. 저도 지방 신문에 헌혈왕이라고 불리고 소개된 적이 두 번 있었는데요. 정말 그렇게 소개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데 딱히 표현하는 적당한 말이 없습니다. '헌혈광' 이런 표현도 좀 그렇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맞는 거 같기도 합니다. 보도기사에서는 임팩트가 있는 표현을 원하니까요. 그 표현이 좀 그래서 안 쓰는데 왜 이 브런치 북의 쓰기 시작했냐고요? 그냥 <헌혈왕>이라는 가제면 다른 수식이 필요 없는 익숙한 표현 같아서 그렇게 해보았습니다.
<헌혈이 취미입니다>, <헌혈은 평생 숙제다> 등등의 제목 생각하기도 하는데 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여하튼 오늘 666회 헌혈(혈장 성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아서 다행이고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혈장 헌혈은 빨간 피가 몸에서 빠지고 그중에서 혈장 성분만 분리하고 나머지는 다시 몸으로 넣는 헌혈을 말합니다. 최소 4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전부가 아닙니다. 일단 헌혈을 하기 위해선 헌혈을 하는 상태가 되는지 확인하는 문진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헌혈의 집에 들어가서 접수표를 뽑습니다. 문진은 헌혈 앱을 통해서 하기도 하고 헌혈의 집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상담실에 들어가서 혈액을 바늘로 조금 뺍니다. 황사구리 수용액에 떨어트려 혈액의 비중을 테스트합니다. 철분(헤모글로빈)이 부족하면 빈혈상태라 헌혈이 불가합니다. 헌혈을 하려는 여성분들이 이 관문에서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리곤 합니다. 물론 혈압도 체크합니다. 이후에 다시 또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하튼 무사히 그것도 낮 시간이 하락되었네요. 헌혈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선물로는 온누리 상품권 5,000원권을 받았습니다. 집사람 장 볼 때 쓰라고 전달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