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콩국수를 사랑하다

by 황규석

홍해남이가 집에 들어오는 날은 사실 한 달에 며칠이 안 된다. 고3수험생도 아니고 외무고시생도 아니고 자신의 처지가 집에 다녀오겠습니다가 되었다는 현실이다. 그리고 딱 들어맞는 말이다. 이런 고비용에 대하여 반성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한 달 방 값이 전기요금 모두 쳐서 24만 원이니 하루 평균 팔천 원 꼴인데 거의 반은 밖에서 자신의 일터인 봉제공장 대산 실업에서 야근이다 회식(술)이다 뭐다 해서 자기 때문에 방 값이 아깝다는 생각을 좀 했었었다. 3년째 혼자 반은 밖에서 살다 잠깐식 사는 방 사정을 알 텐데 주인장인 혜민국 한약방 김 씨 아저씨는 남의 속도 모르고 "뭐 불편한 거 없나? 편히 오래 살라고" 하고 남의 속도 모르고 웃는다. 방을 반을 나누어서 새끼를 쳐서 두 명이 반씩 내고 교대로 사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는 실없는 하지만 재밌는 생각을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 상대가 여자일 때만 말이다. 그 이야길 농담 삼아 꺼내니까 대 대산실업의 창업주의 둘째 딸이자 경리 겸 영업부장이자 술상무인 미싱 두목 올드미스 공자미씨도 괜찮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인 것이 엊그제였다. 해남이 명치를 한데 갈기면서 말이다.



그녀는 정 방세가 아쉽다면 자기 집에 와서 살라는 코멘트도 빠트리지 않았다. 물론 세탁이니 설거지 청소등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말이다. "아 잠잘 때는 2 등분한 방에 중간에 커튼 칸막이를 치고서..." 가군은 원래 마른 여자를 싫어하는 타입이었는데 너무 말라 뼈만 보이는 그녀의 제안 혹은 위치에 따라서는 유혹으로 판단되는 그녀의 멘트에 잠시 지난주의 악몽을 떠올렸다. 만두와 라면, 감자탕에 소주를 많이 먹고 난 뒤 공장에서 자신이 제단 한 가죽 카바 위에 자다가 오바이트를 하고 일어나서는 퉁퉁 부은 얼굴로 한때는 어떤 잘난 놈이 자길 어떻게 하려고 무지 애썼다고 회고하면서 일도 안 하고 해장술을 먹으며 징징 짜는.... 그녀를 말이다. 그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감당한다면야 같이 살겠지만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어 그 대산실업의 C.E.O의 꿈은 고이 그러나 단칼에 접어두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가위질 다림질 명수 대한민국 공돌이 햇수로 10년 차 해남이라고 왜 꿈이 없겠나. 재단에 다림질 그리고 원단 배송까지 책임지는 신당동 봉재공 생활에 이골이 날대로 났던 터에 그는 어느 날 문득 골프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홀인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공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야 학교 때부터 이야기를 들어온 터였다. 그놈의 다리만 부러지지 않았어도 그것도 주전자에 물 뜨러 가다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골프는 뛰지도 않고 땀도 많이 안 나면서 편하게 자기처럼 좀 배 나온 사람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가벼운 공을 가지고 하는 놀이, 신선놀음처럼 여겨졌다. 구멍에 쏙 넣기만 하면 억이 쏟아지니 이제 막 최고의 인기상품으로 수십 억의 당첨금이 나오는 "역전인생" 복권보다도 오히려 확률이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기실 그 복원의 추첨도 기발한 것이 포켓볼처럼 45가지 구멍에 유명 골퍼가 한 명씩 나와 퍼팅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6개의 숫자가 나오면 그 번호를 입력한 사람이 당첨금을 순서대로 챙겨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해남은 골프를 배우려고 지난주에는 골프 관련 책도 가까운 동대문 헌책방에 가서 사 왔다. 틈틈이 책을 보는 것을 보고 미싱아줌마들이 "고시공부 하냐"라는 수군거림도 즐겁게 받아들였고 미싱 시다로 들어온 저기 밀양서 흘러 올라온 김공주 양의 눈에도 제법 학구적으로 보여 존경의 눈빛을 날리는 것이었다. 그는 그래서 그림으로 된 책은 되도록 피하고 이론 서적을 독파하는 중이었고 법전을 하나 사서 함께 책표지도 무슨 책으로 바꿔 입혔으며 가끔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앞에서 재단하는 자나 원단말이 봉을 가지고 휘두르는 골프의 스윙연습은 실기연습은 물론 머리를 식히는 노력하는 대기만성형 수재의 우아한 몸풀기로 다들 이해를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순진하게 속아 넘어가주고 못 본 체해주고 또 이해해 주는 것이 먼지 많은 그곳에서 실밥 먹으며 부대끼고 엉겨 사람들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날은 마침 몽고에 선적하는 모피 옷과 구두의 재단으로 일이 밀려서 바쁜 하루였었다. 어제 마저 끝내지 못한 오리털침낭이 구석에 쌓여있었지만 납품기일에 맞추기 위해 할 수 없이 공장 구석의 조그만 사무실서 새우잠을 잔 그는 라디오에서 미국 엘피지에이의 김세리선수가 유에스 오픈 먼가 하는 골프대회에서 연장전을 내일 밤에 펼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가서 천천히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맥주와 음식을 사들고 들어온 그는 방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켰다. 왠지 낯설어 보이는 방안 역시 공장과 마찬가지로 지하방이었다. 그러나 공장보다 더 어둠침침한 것이 그날따라 더 어둡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 텔레비전을 잘 안 봐서 아줌마들이 점심때 하는 수다 중의 대부분인 연속극 드라마 이야기는 별로 관심이 없던 그였다. 텔레비전을 얼마 만에 켜는 것인가? 그나마 유선선은 전에 살던 꽤 많은 아가씨가 수의학과 다니는 주인아저씨 아들을 꼬셔 주인집 유선선에서 따놓은 선이 었었고 그런대로 텔레비전은 돈 안 내고 잘 볼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은 터였다. "츠팟!" 로터리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켜자 텔레비전 자신이 놀라는 듯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왜 이리 어둡지? 텔레비전이 너무 어둡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모처럼 실전 감각을 익히려고 집에 와서 골프 여왕이라는 김세리 선수의 연장혈투를 볼려던 마음만 싱글인 이론 골퍼 해남은 심히 마음이 상하는 것이었다. 툭툭 쳐보기도 하고 화질 조절레버를 돌리기도 했지만 텔레비전은 나오지 않았다.



이럴 수가.... 분하다. 생각했지만 그는 거의 침침한 호롱불 같은 화면으로 반 라디오 같은 골프중계를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다행히 연장혈투는 상대인 스웨덴의 멘소래담 선수가 실수로 자신의 엄지발가락을 골프채로 쳐서 부상으로 기권하여 싱겁게 혹은 운 좋게 김세리 선수의 우승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해남은 텔레비전도 못 봤지만 승부보다 더 재밌는 장면을 생중계로 볼 기회를 놓쳤다며 텔레비전을 어떻게든 정상으로 돌려야겠다는 강한 욕망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날 그는 출근길에 평소에 안 쓰던 자전거를 꺼내 텔레비전을 묶어서 출근하기에 이른다. 어서 빨리 텔레비전을 고쳐 골프를 보아야..... 아 아니다. 실은 그는 중간중간 코스를 변경할 때 나왔던 국수 광고의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것이었다. 라면 광고는 많이 보았어도 국수 광고는 첨이라는 신선함 호기심 내지는 소비자들의 불안과 걱정을 한방에 날려버리기라도 하듯 그 국수광고는 해남이의 가슴을 흥분시켰다. 그 국수 광고는 정확히는 냉. 콩. 국수 광고인데 특이한 게 찬물에도 잘 녹게 국산콩을 간 가루가 진공포장이 되어 있고 오리들이 샤워한 물을 줘서 키운 우리밀로 만든 국수면발이 역시 진공포장이 된 제품의 광고였다. 아무리 함흥냉면, 칡냉면이 맛있다고 하지만 엄마하고 마루에서 할머니가 방앗간에서 갈아온 콩가루를 풀어 바늘로 자른 얼음조각을 넣어 먹는 콩국수의 맛 하고는 비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단 "초르르 초촉" 하며 가는 국수가 입술에 매달려 목청을 타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매끈히 넘어가는 소리 하며 담백한 하얀 소금을 뿌려 먹는 맛은 정말이지 날이 더해지면서 더 생각나는 음식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다음 달 어머니 기일에는 할머니 산소도 들러서 콩국수를 포장해서 시립묘지와 납골당에 뿌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국수, 그것도 콩국수광고라서 호기심을 더했지만 그것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사기그릇에 탐스럽게 담긴 콩국수를 가는 대나무 젓가락에 걸쳐 맛나게 먹는 광고 모델의 모델의 얼굴을 보고 나서부터이다. 그는 더욱 관심이 가서 자꾸 주체할 수 없는 욕정 비슷한 것이 꿈틀대어서 팬티브래지어 공장서 일하는 아브라함이라는 그리스놈이 돈 만원 받고 가짜로 내준 비아그라 3알을 먹고 잠시 "웁" 하던 때보다도 더 힘 좋게 아랫도리가 요동을 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광고의 여배우는 말하자면 누구나 또 그녀 자신이 한물갔다고 생각하던 배우였다. 물론 어린 나이에 '대지'라는 펄벅의 대하소설을 우리나라식으로 해석한 대하드라마에 나왔다가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떨치다가 별똥별처럼 한순간에 사라진 떨어진 배우였던 것이다. 일찍 만개한 꽃이 더 시든다고 했던가, 일찍 달궈진 구들장이 쉽게 식는다고 했던가 30대 중반인 그녀가 20년여의 공백을 딛고 브라운관에 나왔을 때는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런데 그게 천우신조여서 나이보다 어린 젊은 엄마로 나와 인기를 모은 것이었다. 그녀가 폐기 처분되었다가 살아난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충무로에서 20여 년을 빌어먹던 한 고집불통 저예산 독립영화감독 황대장의 영화에 , 사실 삐급 애로영화 "겨울동화"의 조연으로 그러니까 여주인공의 보모로 나섰다가 덜컥 그게 칸느 영화제에 초청이 돼서는 다시 돌아온 혜성이라는 찬사를 듣고는 막 첫 광고를 시작한 게 바로 그 냉콩국수 광고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도 사실 매일 밤 술 먹고 남편 팬다는 소문이 자자한 일명 연예가 마당발 성씨 아주머니가 침이 튀도록 읊은 내용이었던 것이다. 역시 성씨 아주머니가 해남을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회식자리에서 일등을 한 아주머니를 엎고 공장 근처에서 고도가 제일 높은 집을 행하여 그녀를 업고 가던 중 그만 가군의 등짝에 안긴 채 실례를 했던 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흰 티가 노란 티로 염색이 되었다. 그리고 공장화장실 옆의 똥개가 애를 날 때 걸레로 쓰던 그 헝겊이 요긴하게 쓰였던 것은 필름 끊긴 성씨아줌마만 빼고는 다 아는 사실이었다.



우좌지 간 각설하고 그 고향 콩국수의 콩이 함경도에서 제배한 순 우리 콩이라고 강원도 문화관광재단 이사장이 개기름 칠칠 흐르며 광고에 잠깐 나온 것이 아닌가. 인사말에 이어 그녀는 예의 '겨울동화'의 의상인 몸빼차림으로 나와 동구밖 정자에 앉아 국수를 말아서 동네 머슴들에게 먹이는 이러저러한 광고는 정말 멋지고도 촌스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이상하게 가군의 뇌리에 오래 남게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자기하고 굴곡을 같이한 배우가 아니었나. 꿈꾸면, 노력하면 다시 뜰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해남은 그녀 정확히 가명 송다은, 본명 김송은으로부터 만끽하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텔레비전이 안 보이다니 고장이라니 그래서 그녀를 골프를 못 보다니 안될 일이지... 그래서 그는 분연코 일어나 텔레비전을 싣고 출근을 하고 생전 처음으로 동네 전파사에 당도한 것이다.



"아저씨 이거 텔레비전이 어두워지는 게 이상해요 브라운관이 나갈라나 봐요. 이거 좀 제대로 고쳐주세요." 아침부터 온 손님이 반갑지도 않은 듯 휘어진 빛바랜 은태안경을 걸치고 심드렁하게 작은 해남의 작은 로터리 텔레비전을 보던 전주전파사 아저씨는 텔레비전을 켜본다. 그리고 상태를 둘러본다. 역시 화면은 어두워졌다. "이상하죠. 어제보다 오늘은 더 시커멓네요. 고칠 수 있을까요?" 다시 그 다은이를 그리고 홀인원의 꿈을 잃지 않는 것 인가하는 조급함에 그는 입술이 조금 타들어갔다. 한 5만 원이면 중고 텔레비전을 하나 산다고는 하지만 이사 와서 여태 열 번도 보지 않은 텔레비전이고 지난번 술 먹다가 삐끼들에 꼬여 한강다리 넘어가 마신 아가씨술값으로 150만 원이라는 거금이 날아간 뒤라 요즘 영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았던 터였다. 잠시 유심히 살펴보던 아저씨는 저 안쪽에서 뭘 가져오시는 것이었다. 아마 대수술을 하려는가 긴장을 했다. 드라이버 납땜기 등등... 그러나 아저씨가 가져오는 것은 방바닥을 닦다 닦다 헤어진 거무튀튀한 걸레가 아닌가? 저걸로 어찌하려고 그러는지.... 곧 아저씨는 걸레로 텔레비전 면상에 대고 박박 문지르는 것이 아닌가? 마치 일 년 만에 목욕탕 가는 사람들이 물에 불려 때를 미는 것처럼 말이다. 이어서 칼국수 밀리듯 시커먼 먼지 때가 국수처럼 나오는 것이었다. 해남도 말을 잃었다. "어이, 이것 좀 봐 청소 좀 하구 살아야지 이게 다 먼지야..." 화면 뒤에는 마침 이제 막 다시 다은이의 예술 같은 국수 마는 장면과 함께 대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첫맛 지을 수 없는 끝맛 함경도 고향 냉 콩국수우우우" 그랬다.



화면을 걸레로 닦자마자 나오는 그림에 안도한 그는 창피함도 잠시 마을버스 타는 얼마 전 개업한 마트에 가서 그 국수를 한 박스 사리라 마음을 먹었다. 카드라도, 아차 카드 정 지지... 외상으로라도. 누구든 냉콩국수 한 박스 사줄 돈을 꾸어준다면 그냥 먼지 나더라도 데리고 살 욕심도 생기고 마는 것이었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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