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록스녀 잠들다

아재의 어깨에 기대 잠든 크록스녀

by 황규석

아침 출근길

버스에 오르면 먼저 어느 자리에

앉을까 눈치를 본다.

쭉 스캔을 하고 정하여 앉는다.


냉방이 잘 된 새 버스라면

문제가 없는데 오래된 소음이

심한 버스라면 앉는 자리와

위치에 운이 많이 작용한다.

그날 편안히 출근을 하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새 버스라서 기분이 좋아 앉아

구석구석 만져보다가

설마 하고 안쪽에 손을 댔는데

말랑말랑 껌을 붙여

'여기는 내 자리였소'

라고 표시하는 현대의

언포게러블 위인을 만나면

정말 짜증에 더해서

헛웃음이 새 나온다.


어느 자리는 토사물이 있어

멀쩡한 파란 좌석으로 피했더니

그 자리는 황당하게도

겉은 멀쩡한데 습기가 배어있어

바지가 초벌세탁이 된 적도 있었다.

그나마 출근길엔 서울 외곽위성 도시에 사는

나는 늦지 않는 이상

좌석 선택에 여유가 있다.


저 종점 부근에서 온 승객들은

여유 있게 자신의 자리에서

보통은 핸드폰 삼매경이다.

나도 괜찮은 자리가 남아

있어서 안쪽 자리에 앉았다.

물론 맨 뒷자리 앞의 독방

자리는 먼저 올라탄

그러니까 퇴근 때 제일 늦게

집에 도착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다.


참 신기하고 공평하다.

멀리 가는 사람들이 자리를 못 잡아도

출근길에는 좌석

우선권이 주어지니 말이다.



자리를 잡아 앉으면 이제부터는

누가 내 자리 옆에

앉느냐가 또 행복한

출근길의 필수요소이다.



사실 신경이 많이 쓰인다.

제일 부담스러운 것은

역시 덩치가 크신 분들이다.

미안하지만 덩치가 크신 분들은

몸에 열이 많이 나서 땀을

아침부터 흘리면서 타는 경우가 많다.

작은 선풍기

를 들고 있어도 말이다.


일단 이분들이 버스에 올라타면

먼저 안쪽에 앉은 승객들은

제발 내 자리에는 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물론 타는 사람도 피해가

덜 가게 고심해서 파트너(?)

를 고르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일단 내 옆에 크신 분들이

앉으면 어깨가 움츠려든다.

다리 또한 좁히게 되어

금방 불편해진다.


엊그제 퇴근길에는

쩍벌남 할아버지가

계셔서 애를 먹었다.

그땐 차라리 서서 가는 게

좋은데 설 자리도 꽉 찼었다.


아, 저기 올라오는 분들이다.

이 분들도 나름

신경을 쓰는 게 보인다.

스캔을 하고 여성분은 주로 여성분

옆으로 남자 승객은 남자옆으로

가기 마련이다.

아직까지 우리의 생각은

이렇게 조금은 보수적이다.


먼저 성큼 올라탄 키가 큰 여자는

저쪽으로 여자분에게 앉았고

키가 작고 여리 여리한 분이

내 옆에 마지못해 않았다.

좁게 가지 않아서

나는 쾌재를 불렀다.

금요일 출발이 좋았다.

역시나 보통체격의 내가

다리를 펴도 장롱하나가

들어올 만큼 여유로움을 느꼈다.

동행이 정해지면

안 보는 척 슬쩍 또 스캔을 한다.

나만 그럴까?

아닐 것이다.


정말 작은 체구다.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

그리고 아, 내가 파란색

크록스 샌들인데 그녀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미색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거기다가 흰색 덧양말을 신고 있다.


나도 파란색 크록스를 신고

출근하고 있어서 묘하게

반갑고 동질감을 느꼈다.

난 양말은 신지 않고

나중에 신으려고 바지에 넣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어깨가방에 넣고 다닐걸..

괜히 잃어버리지 않고

챙긴다고 손 까까운 곳에 두다니.

가방에 넣으면 될 것을

바지 주머니만 볼록하게..

아무튼 여리고 여린 가벼운 여자

직장인이 내 옆에 앉았다.

학생은 아니었다.


그녀가 얼마나 가볍냐 하면

보통 사람이 내 옆에

앉으면 의자가 물컹하고 움직이는데

너무 왜소하고 가녀린 몸이라

그런지 모기 한 마리가 앉은 것처럼

시트에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출근길 좌석 파트너로는 따따봉이다.

내 오른발을 바닥 벽면에 붙어 튀어나온

버스의 에어컨 라인, 전기 라인 케이블

박스에 올려 불안전한 자세를 만들지

않아도 좋았다.


기분이 좋아져서 헤헤하고

가는데 그녀의 고개가

바로 푹 숙여졌다.

피곤한 지 바로 잠이 들었다.

마치 누에가 누에꼬치에 들어가듯이

아이가 자궁에 들어선 것처럼

작은 몸을 말아서

웅크린 채 깊은 잠에 빠졌다.

죽은 듯이 잠에 빠진

그녀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핏기가 없었다.

아직 어려서 옅은 화장도 안 한 얼굴이었다.


여린 목 등의 솜털이 에어컨 바람에

미세하게 하늘하늘거렸다.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면 타자 마자 쓰러져 잠들었을까.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참 안쓰러웠다.


어느덧 내가 내릴 곳이다.

다다음 정거장이 내가 환승하는 역이다.

내가 내릴 준비를 했다.

몸을 일으키면서 조용히 말했다.


"저 다음에 내려요..."

반응이 없다.

"저기요... 여보 세요...."

또 반응이 없다.


나는 그녀를 깨우기가 미안했다.

요즘 좀 몸무게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나는 통로 쪽 그녀의 누에가 된 몸을

다리를 들어서 허들 선수처럼

그냥 훌쩍 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맨 뒤에서

곰 아니 커다란 늑대 같은 덩치에

팔에 "착하게 살까 U?" 작은

파란색 문신을 하신 젊은 분이

통로로 나오면서


그 여자분을 "탁!"치는 게 아닌가.

난 이미 오른발을 들고 있었는데

그녀가 잠에서 깨어 그 남자를 피해

내 쪽으로 몸을 틀었고

나의 러닝이 들떠 나온

펑퍼짐하고 튀어나온 아랫뱃살에

아가씨의 예쁜 얼굴이 살짝!

옴마야... 찌릿!


"죄송합니다"

나는 서둘러 그녀를 통과했다.

"......"

여자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이 볼품없는 아저씨를 싸악 스캔하고

다시 몸을 접었다.

엉거주춤하는 날

덩치 큰 젊은 분이 날 째려보길래

눈을 바로 깔고 헛기침을 했다.


그녀는 상황이 정리되자

그 작은 분홍 테두리가 쳐진

크록스 흰색 샌들이 두 발을 모아

경계태세를 한 뒤 잠에 빠져들었다.

샌들 안의 작은 발도 정말 작았다.

딱 봐도 진짜 230 이하인 듯싶었다.


아마 흰 양말을 신은 이유는 추측건대

작은 크록스 샌들이 없어서

작은 발이 헛돌까 봐 그런 것일 게다.


나는 지하철역으로 내려가기 전에

떠나는 버스 창가의 그녀가 탄 좌석을 올려다보았다.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긴

딱 봐도 230 이하의 미색

크록스 샌들을 신은

그녀의 검은 머리가

다시 잠수함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미안해요... 곤히 자는데...

깨워서 제 잘못이 아니에요..

오늘 하루 힘내세요'

난 버스 뒷 꽁무니를 보고 환승 지하철로 바로 내려가지 않고

혼잣말을 허공에 날려 보냈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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