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석이 오빠! 우리 같이 살자” “나 복학해야 되는데” “내가 챙겨줄게 빨리 나 여기서 나가고 싶어..” “다시 시작하고 싶어” “....” “오빠...” 연희가 석이의 허리춤에 매달렸다. “연희야 난 해야 할 일이 있어...” 석이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연희의 부드러운 몸을 꺾어버릴 듯 끌어안았다.
그런데 갑자기 저기 구석에서 번득이는 두 개의 눈빛이 보였다. 그리고 이 쪽으로 달려왔다. 커다란 화가 난 황소였다. 순식간에 달려온 황소에 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안돼. 연희야... 아아....
그 황소는 황 과장의 얼굴이 겹쳐있었다.
“쾅!” 하고 쇠몽둥이의 끝에 용접되어 붙은 뾰쪽한 철근이 황소의 이마 정중앙에 박혔다. 기석은 그제야 꿈에서 깬 듯 화들짝 놀랐다. “쿵!” 하고 커다란 소가 한 방에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커다란 엉덩이가 들썩 거리면서 아직 소화가 덜 된 여물이 똥이 돼서 흘러나왔다. 이렇게 한 생명이 끝장이 났다. 수의사님도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었다. 갑자기 머리 중앙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진 소가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섰다. 깜짝 놀라서 나도 뒷걸음질 쳤다. “우웨에~~ 따그닥” 마지막 발버둥 치는 소리가 높은 천장에 부딪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도축장을 일순 정막에 빠트렸다. 야스리로 긴 칼을 갈던 황 과장의 허리춤의 칼집에 칼을 다시 꽂아 넣었다. 과장님이 쓰러진 황소로 다가갔다.
황 과장이 다시 “퇫!”하고 침을 뱉으며 쇠망치를 치켜들었다. 기석은 다시 쫓아가 어렵게 코뚜레의 줄을 잡았다. 소의 뒷발질에 걸려 아가리가 날아가고 발모가지가 똑 부러졌다는 이야기도 들은 터였다.
“휘이~잉!” 다시 허공을 가르는 묵직한 쇠 파이프 망치 소리. “떠억!” 다시 그 자리에 정확히 망치 머리에 용접해 단 코쟁이 같은 파이프가 꽉 찍혔다. 머리의 뼛조각이 튀었고 따뜻한 하얀 골이 튀어 기석의 이마에 착 달라붙었다. 이제 소는 그냥 물에 젖은 화선지처럼 형태 없이 무너졌다.
기석은 잠시 얼어붙었다. 그 황망한 죽음의 광경에 잠시 할 일을 잊었다. "야 인마! 김 군이 뭐 하냐 시방 잉 뒤지고 싶어 새꺄!" 큰 덩치와 정반대인 얇고 가는 목소리가 그를 채근했다. "아.. 네.., " 기석은 내 팔보다 좀 기다란 두께 2cm 정도의 쇠줄을 잡고 쓰러진 소에게 무심히 다가갔다. 그리곤 늘어진 소의 목을 붙잡고 꿇어앉았다.
커다란 충혈된 두 눈알이 빠질 듯 튀어나왔다. 기석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혓바닥이 길에 축 늘어져서 나왔다. 머리 가운데 동그란 구멍이 휑하니 뚫려 있었다. 그는 그 쇠줄을 구멍에 꽂아 넣었다. 황소가 몸을 크게 들썩거렸다. 기석은 쇠줄을 구멍에서 빠르게 넣었다 뺐다 쑤셔댔다.
갑자기 시뻘건 피가 퍽하고 뿜어져 나와 그의 얼굴과 입에 튀었다. "풋" 하고 입에 들어간 단맛이 나는 피를 뺏어버렸다. 따끈따끈한 생명체의 피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기석이 일어났다. 푹 떨어지는 머리는 배수구 홈에 걸쳤다.
한 생명의 숨통이 끊어졌다.
기석은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왔다.
“우웨엑!”
며칠 전이었다. 일이 늦게 끝나고 황 과장과 늦게까지 술을 먹었다. 도축장 지하의 구내식당에서. 식당 사장 홍 여사와 그의 딸 연희가 같이 자리를 했다. 황 과장은 도축장의 실세 중의 실세였다.
모두가 그에게 잘 보여야 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 여사도 식당 재계약을 앞두고 그에게 술대접을 자주 한다고 했다. 황 과장은 공수부대 출신이었다. 그날 광주에서도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 무공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지하에서 전기에 기절한 채 발목에 쇠사슬이 채워져 거꾸로 올라오는 돼지의 목을 따는 일을 한다. “꽤 애액” 그의 날카로운 칼이 돼지의 목을 찌르면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소리가 천장 높은 도축장이 스피커처럼 울린다.
불이 꺼진 작은 방에 들어가서 불을 켰다. 구석에 앉은 기석의 아버지가
무릎을 꿇은 채 손사래를 쳤다. “안돼, 안돼, 오지 마세요... 제가 안 그랬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기석이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런 아버지를 끌어안는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저예요. 내일이 어머니 기일이잖아요.”
그때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석의 여동생 기연이 봉제공장에서 돌아왔다. “오빠 일찍 왔네.. 응 내가 저녁 얼른 준비할게” “기연아, 아버지 약이 어디 있 니 가져올래” “응 알았어.” 기연이 약과 물컵을 가져온다. 기석은 약을 먹고 잠을 자는 아버지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기석은 그날 광주의 낡은 신문을 보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황 과장이 옆에서 야스리로 칼을 갈다가 다시 목으로 다가갔다. 축 늘어진 목 가죽을 칼로 슥슥 무 자르듯 베니까 자루 모양이 만들어졌다. 손잡이 구멍도 만들고 마지막으로 목줄을 팍 끊었다.
그리고 기석에게 눈짓했다. 콸콸콸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왔다. 기석이 잽싸게 빈 식용유 깡통을 들이댔다. 목가죽에 뚫린 손잡이에 손을 넣고 빨간 바가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벌건 피를 퍼냈다. 소금이 두 주먹씩 들어간 깡통은
어머니가 먼저 가르쳐 준 기술이었다.
구석에 가득 쌓여있는데 안동 고등어 간잽이처럼 아무나 선지를 솔개 만드는 소금 간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캉통에 가득 채우지 않고 1/3 정도만 피를 채워 넣었다. 그다음에 찬물을 넣고 잘 저어 줘야 적당히 단단하고 맛있는 소선지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처음 잡은 황소에게서 5통의 선지 깡통이 만들어졌다. 과장은 이제 잠깐의 온기만 남은 소의 주검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먼저 목을 단번에 잘랐다. 퉁퉁한 젖가슴도 숭덩숭덩 잘랐다. 가격을 잘 받아 팔릴 것이다.
먼저 가죽을 바르고 내장을 꺼낸다. 위를 가르자 마지막 생에 먹은 여물이 아직
소화도 되지 않은 채 쏟아져 나왔다.
테이블로 연희가 소주를 가져왔다.
식당에 않은 기석과 황 과장. 연희가 나가며 기석의 손을 스치듯 잠깐 잡았다.
“그래 김 군아, 네 아버지가 장애인이라” “네...” “어디가 안 좋냐” “네 그냥 정신병이....” “아 그래 그렇구나 네가 효자구나 그래 재대하고 학비를 벌려고 이런 험한 일을” “아닙니다. 그냥 돈 벌고..."
기석은 한참 후에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과장님 옛날 광주사태 거기에... ” “그래 , 니도 들었겠지만 그날 나는 나라를 위해 총을 칼을 들었다”
황 과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단숨에 맥주 그라스에 가득 소주를 따라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덤벼, 나쁜 놈들, 국가가 있고 국민이 있는 거야. 어디 감히 폭도들이....”
밤이 깊었다. 기석은 연희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연희는 마냥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잊고 온 가방을 가지러 다시 도축장에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가는데 우는 소리가 났다. 기석은 벽에 붙어 조심스럽게 내실로 다가갔다. 열린 방문 틈으로 보니 하얀 등이 들썩였다. 연희가 옷이 벗겨진 채로 울고 있었다.
기석은 머리가 쭈볐섰다. 그는 주방에서 커다란 식칼을 품에 들고 나왔다. 어두운 밤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그는 도축장 안의 커다란 녹슨 철문을 열었다. 저기 2층에 불이 켜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황 과장이 소파에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기석이 살며시 다가가 그 옆에 섰다. 그리고 칼을 들었다. 그때 뒤에서 연희가 그를 잡았다. “안돼 오빠” 그러자 황 과장이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깨어 소파에서 일어나려다 떨어졌다.
“뭐야, 이 새끼! 너 무슨 짓이야!” 기석은 연희를 뿌리쳤다. 그리고 두 손으로 식칼을 들고 황 과장의 목덜미로 달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두 사람의 몸이 겹쳐졌다.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두둥 콰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