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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쌉싸래한 커피보다 쌉싸름한 커피가 더 좋다.

2025년 10월 20일 월요일

by 지우진

커피를 처음 마신 건 2007년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믹스커피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한번 맛 본 적이 있고, 아메리카노는 2007년 스무 살 때 처음 마셨다. 믹스커피는 공부할 때 마시면 잠이 안온다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집에서 한 번 마셔봤다. 향기는 달콤했지만 그와 달리 첫 입부터 써서 더 이상 마시지 않았다. 아메리카노는 스타벅스에서 처음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시커먼 색에 약간 탄내가 났다. 한모금 마시니 쓴맛과 누룽지의 탄맛이 확 들어왔다. 이걸 어찌 먹나 싶었다. 평소 한약도 잘 먹었는데 아메리카노의 쓴맛은 완전히 달랐다. 그래도 믹스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한 입 먹고 남길 수는 없었다. 돈도 아까웠고 다른 친구들은 잘 마시고 있었기에 나도 계속 마셨다. 마실수록 쓴맛은 여전했지만, 먹다보니 처음만큼은 아니었다. 얼추 절반 이상은 마시고 나왔다.


그뒤로 커피를 마실 일은 많았다. 특히 편입을 준비할 때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는 하루에 기본 3잔은 마셨다. 공부하면서 마시고 잠깐 쉴 때도 마시고 밥먹고 나서 입가심으로 마셨다. 공무원 준비할 때는 학원에서 2분 거리에 작은 카페가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프렌차이즈 매장도 아니었다. 테이크아웃 잔의 컵홀더가 민트색이었던 게 또렷이 기억난다. 볼이 얼 것처럼 찬바람이 부는 겨울, 학원 자습실로 가는 길에 그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들고 가는 건 답답한 수험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가 좋아졌고 좋아지다보니 관심이 생겼다. 관심이 생기면 자세히 알고 싶어진다. 나는 관심사가 생기면 꼭 관련 책을 사서 읽는다. 2021년 여름 《커피인문학》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제목에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인문학이 있어서 주저없이 바로 구매했다. 커피의 역사부터 각 원산지에서 생산되는 원두에 얽힌 이야기들, 커피에 관한 속설들 등 내가 그동안 궁금했던 내용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인문학》을 카페에서 읽을 때의 기분이란. 커피로 가득한 세상이 있다면 바로 여기였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커피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직접 해보고 싶었다. 카페에서 알바를 해볼까 싶어서 알아봤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퇴근하고 가려니 저녁부터 매장 마감까지 해야 하는 시간대밖에 없었다. 다음날 출근에 지장을 줄 수 있어서 카페 알바는 어려웠다.

그래서 커피를 배울 수 있는 아카데미를 검색했다. 우리집을 기준으로 반경 2km 안에 최소 다섯 군데가 넘었다. 교육과정과 금액과 수업 시간대를 비교해서 한군데를 결정했다. 마침 새롭게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시기여서 상담을 받고 이틀 뒤부터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바리스타 2급 과정으로 기초를 다진 다음 바리스타 1급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커피의 다양한 향미를 배우는 수업인 "센서리" 과정과 핸드드립커피를 내리는 수업을 들었다. 우유 스티밍으로 라떼 위에 모양을 만드는 라떼아트 수업도 마쳤다. 가장 배우고 싶었던 로스팅 수업은 마지막에 들었다. 모든 수업들이 재미있었지만 단연 1등은 로스팅이었다. 어떤 원산지의 생두를 쓸 지 고르고 500g으로 계량한 다음, 예열된 로스터기에 생두를 넣는다. 기록지에 시간별로 온도를 체크하며 샘플봉을 뽑아 색을 비교한다. 배출 타이밍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타이밍이 되었으면 원두를 쿨링 통으로 배출한다. 원두는 잔열만으로도 익기 때문에 배출하자마자 쿨링 통에서 식혀야 한다. 갓 나온 원두를 쿨링 통에서 직접 저어가며 식힐 때 퍼지는 커피 향은 정말 그대로 병에 담아 향수로 쓰고 싶을 정도다. 로스팅한 원두는 집에 가져가서 핸드드립으로 내려서 마셨다. 남은 원두의 일부는 아내가 집 곳곳에 방향제로 활용했다. 나머지는 아이들이 소꿉놀이하며 가지고 놀았다. 집 안이 커피로 가득했다. 《커피인문학》을 읽을 때 상상했던 커피 세상이 바로 이곳이었다.




커피를 맛보고 배우면서 커피의 맛을 어떻게 표현할 지 고민했다. 스무 살 때는 그저 쓴맛뿐이었지만 이후 15년 넘게 마신 커피는 쓰면서 고소하다. 내가 찾은 표현은 두 가지다. "쌉싸래하다" 와 "쌉싸름하다" 이다.

"쌉싸래"한 커피는 쓴맛이지만 고소함이 담긴 커피다. 섬세하며 진하지 않은 맛이다. "쌉싸름"한 커피는 쓴맛이 조금 더 강하지만 커피를 마실 때의 날씨, 나의 기분, 공간의 느낌도 함께 담겨있다. "쌉싸래하다"와 "쌉싸름하다"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커피야말로 그 미묘함이 차이를 만든다. 같은 원두여도 가늘게 분쇄되었는지 굵게 되었는지에 따라 다르고, 핸드드립커피는 모든 조건이 같아도 누가 내렸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모든 조건을 똑같이 해서 커피를 내려도 마시는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맛이 다르다. 그래서 커피에 정답은 없다. 취향만 있을 뿐이다. 지금 나는 "쌉싸름"한 커피가 조금 더 좋다. 오랜만에 집에서 핸드드립커피를 마셔야겠다.

20220303_아트총집합.jpg 수업시간에 내가 직접한 라떼아트. 할 때마다 떨린다.
20220316_내가로스팅한원두.jpg 직접 로스팅한 두번째 원두. 또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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