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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도전을 응원한다 아들아.

2025년 10월 27일 월요일

by 지우진

서울에서 태어났고 3살 때 인천으로 이사를 갔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인천에서 살았다. 지금은 부산에서 27년째 살고 있지만 인천은 고향 같은 곳이다. 인천에 살면서 처음 했던 게 여럿 있다. 유아세례는 서울에서 받았지만 성당을 다녔던 기억이 처음 나는 곳도 인천이고, 태권도장도 인천에서 처음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동생이랑 같이 배웠다. 내 인생 첫 운동이었다. 평일 오후 5시부를 갔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대략 25명 정도 되었다. 흰띠부터 검은띠까지 섞여서 함께 배웠다. 나와 동생을 포함해서 띠가 낮은 친구들은 고학년들의 시범을 보고 따라했다. 뒤돌려차기가 그렇게 멋있었다. 딱 한 번 성공했던 걸로 기억한다. 날라차기를 배우다가 허벅지 근육이 놀랐는지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까지 걸어갔던 기억도 떠오른다. 1시간 가량 열심히 태권도를 하면 겨울에도 땀에 흠뻑 젖었다. 태권도를 마치고 집에 가면 딱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개운하게 씻고 먹는 저녁은 꿀맛이었다.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태권도는 1년만 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왔다. 한창 클 때라 부모님은 다시 운동을 시키고 싶으셨다. 태권도는 해봤으니 검도를 배워보자고 제안하셨다. 검도를 하면 집중력이 강화되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도 좋다고 하셨다. 집중력이 좋아지는지는 차치하고 호구를 입고 죽도로 대련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열심히 검도를 했다. 평상시엔 유머러스하고 인자하면서도 죽도를 잡으면 엄격하게 가르쳐주신 관장님 덕분에 많이 배웠다. 꼭 초단을 따고 싶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겨울, 초단 심사를 앞두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아쉽게도 검도는 여기서 끝이 났다. 2015년 헬스를 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배운 운동이었다.




결혼 후 아들이 태어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운동을 배우게 하자고 아내와 의견을 나눴었다. 유치원 때도 또래보다 키가 좀 큰 편이었지만 마른 체형이기에 더욱 운동을 시키고 싶었다. 마침 아들이 입학한 초등학교 후문 근처에 태권도장이 있었다. 우리집과 초등학교까지 2분 거리인데 그 사이에 위치했다. 거리는 적당했다. 도장에 가서 관장님과 상담을 했다. 내가 태권도를 다닐 때 계셨던 사범님은 거의 웃지 않고 엄격하게 가르치셨다. 그래서 검도 관장님이 더 좋았다. 우리 아들이 어린 시절의 나와 성격이 비슷해서 검도 관장님 같은 분에게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태권도 관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검도 관장님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본인도 지금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데 도장에 오는 아이들을 보면 내 아이들처럼 느껴져서 더 챙겨주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주변 학부모들의 평도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나와 아내는 이곳으로 결정했다. 아들과 같은 반 친구도 다니기로 해서 안심이었다.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태권도를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고, 본인도 관심을 가져서 처음부터 재미있게 다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 생활도 적응하느라 그랬는지 처음엔 매일 다니는 걸 버거워했다. 그래도 꾸준히 보냈다. 곧 재미를 붙였는지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배울 때는 심사가 두 달에 한 번 정도 있었다. 띠가 바뀌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심사에 떨어지면 다음 심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내가 다녔던 도장은 흰띠부터 노란띠, 주황띠, 초록띠, 파란띠, 갈색띠(우리 때는 밤띠라고 했다), 빨간띠, 품띠(빨간색 반, 검은색 반으로 이루어진 띠였다) 그리고 검은띠 순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다니는 도장은 달랐다. 띠를 세분화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주를 이루었고, 띠가 바뀌기까기 시간이 걸리면 지루해할까봐 그런 것 같다. 2가지 색이 있는 반반띠가 있다. 흰띠 다음은 노란띠가 아니라 흰노띠였다. 흰띠, 흰노띠, 노란띠, 노주띠, 주황띠, 주초띠, 초록띠, 초파띠, 파란띠, 파보띠, 보라띠 이런 식이었다. 매달 심사가 이루어지고, 보라띠까지는 큰 실수가 아니면 심사에 떨어져도 다음날 바로 재심사를 해서 띠를 올려줬다. 게임 레벨업을 하듯이 진행되니 아들도 지루해하지 않고 갈수록 의욕적으로 임했다. 친구들과 선의의 경쟁도 하며 서로 모르는 부분은 알려주기도 했다. 2학년이 되어서도 꾸준히 태권도를 하고 있고, 지금은 빨간띠다.




보라띠가 되었을 즘, 도장에서 11월에 대회가 있을 거라고 알려줬다. 품새와 더불어 대련도 한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아들의 의견을 먼저 듣기로 했다. 나는 내심 쑥스러워서 대회에는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허나 아들은 대회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나가고 싶다고 했다. 자신있다고 했다. 마치 대회를 기다렸던 것처럼 매우 의욕이 넘쳤다. 나와 아내는 살짝 당황했지만 티내지 않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뒤로 아들은 더 열심히했다. 예전에는 피곤하면 태권도 가기 싫다고 했는데, 요즘은 거의 하지 않고 열심히 가고 있다. 나는 신청만 하면 대회에 다 나갈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범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신청한 아이들 중 선별해서 결정한 것이었다고 한다. 아들이 그동안 정말 열심히 했구나 하는 생각에 대견스럽고 기특했다.


지난주에는 연습을 위해 토요일에도 태권도장에 나갔다. 주말이라 집에서 더 놀고 싶어하면서도 참고 갔다. 연습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도장 앞에서 기다렸다. 2시간 가까이 연습을 해서 지쳐있을 줄 알았다. 내 예상은 또다시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도장에서 나온 아들은 정말 뿌듯하고 으쓱하는 표정을 지었다. 연습이 재미있었다며 대회가 기대된다고 했다. 아들이 나보다 낫구나 싶었다. 내가 지금 아들의 나이였을 때 대회는 꿈도 못꿨다. 도장에서 관장님과 사범님과 부모님들 앞에서 품새 심사를 보는 것도 다리가 후들거리며 떨렸다. 그런데 다른 도장들도 여럿 참가하고 대학교 체육관에서 진행하는 대회를 신이 나서 기대하다니. 어린 시절의 나와 성격이 비슷하고 아직 애기같은 면도 있는데 도전 정신은 나보다 더 낫다. 이는 아내 덕분이다. 나만 닮았다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오늘도 아들은 하교 하자마자 곧바로 태권도장에 갔다 왔다. 기초체력 심사를 해서 다리가 좀 뻐근하단다. 잠자리에 들기 전 다리 마사지를 열심히 해줘야겠다.


20251026_180911.jpg 아들의 태권도복. 멋지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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