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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14. 2022

3월 14일 최명현의 하루

친구의 죽음

명현은 잠을 설쳤다. 어쩐지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이런저런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고 잡념을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 몸을 움직이며 어떻게든 잠에 들려고 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갑자기 명현의 머릿속에서 대학 동창인 장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명현이 장준의 소식을 들은 것은 얼마 전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다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우연히 장준의 이야기가 나왔다. 명현과 장준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친구 무리들끼리 가끔 만나 이야기를 하고 가끔 따로 대화도 나누는 딱 그 정도의 친구였다. 갑자기 장준이 생각난 명현은 친구들에게 장준의 소식을 물었다. 그러자 친구들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본 명현은 장준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친구들의 이야기에 명현은 충격을 받았다. 장준은 작년부터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준과 친한 것은 아니었지만 명현은 장준과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성격도 좋고 활발해서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했던 장준이라는 친구는 명현이 더욱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워낙 친구가 많은 장준이었기에 소심하고 사람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는 명현은 그저 무리 중 한 명으로 장준과 어울릴 수 있었다. 그만큼 장준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사람이었다.


명현은 잠을 설치면서 장준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어린 나이에 큰 병을 얻게 되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상하게 장준의 건강이 걱정되는 명현이었다. 아니면 무언가를 직감했던 것일까? 그때 명현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명현은 ‘누가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는 거야?’라고 짜증을 내며 발신인을 확인했다. 친구의 전화였다. 


“어….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매너 없게….”


“어… 미안, 자는데 깨운 거야? 미안하다. 그… 그냥 어….”


“에휴, 됐고 무슨 일인데?”


“…. 장준이가 죽었어.”


순간 명현은 말을 충격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빈소는 내가 따로 보낼게. 이따 밤에 퇴근하고 장준이 만나러 갈려고. 너도 갈 거지?”


“……. 어.. 어 그래, 알았어 보내줘. 아침에 다시 연락할게”


전화를 끊은 명현은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에게는 처음 겪는 죽음이라는 경험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난 명현에게 죽음은 낯선 것이었다. 가족들 중에도 아직 돌아가신 분이 없었고 돌아가신 분이 있더라도 명현이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분들만 있었다. 회사에서 부고 소식이 올라올 때도 있긴 하지만 명현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명현과 연관 있는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 자체를 듣는 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명현은 더욱더 큰 충격에 빠졌다.

명현은 한동안 같은 자세로 계속 서있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명현은 무서워졌다. 어딘가에서 장준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장준이가 왜 생각이 났을까?’ ‘장준이가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던 것은 아닐까? ‘ 아론 생각이 명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면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공포마저 들었다. 갑자기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명현에게 죽음이 이렇게 가까웠던 적은 없었다.


잠들 수 없는 새벽이었지만 겨우 잠든 명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가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출근을 할 준비를 하며 명현은 검은색 정장을 꺼냈다. 퇴근 후 바로 장준의 장례식장으로 갈 계획이었다. 출근을 마치고 평소처럼 커피를 내리는 명현의 모습을 본 직장 상사는 “누가 상 당하셨나 봐?”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명현은 대학교 친구가 죽어서 퇴근 후 바로 가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상사는 “쯧쯧. 젊은 나이에. 부모님이 상심이 크시겠네. 부모님 잘 위로해 드리고, 친구 잘 보내주고 와”라며 명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일을 해야 했지만 명현은 일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친구의 죽음이라는 게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퇴근을 하는 길에 명현은 은행 ATM기에 돈을 뽑으려고 했다. 얼마를 내야 하는 것인지 순간 망설이던 명현은 인터넷에서 ‘조의금 액수’를 검색했다. 내용을 보니 어느 정도가 괜찮을지 명현은 고민이 되었다. 


‘5만 원? 아니 그래도 친구 같은 거였는데 10만 원 해야 하나?’


한참을 ATM기 앞에서 핸드폰을 보며 망설이던 명현은 순간 남의 죽음 앞에서 이런 것에 고민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액수를 정한 명현은 돈을 뽑아 장례식장으로 갔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명현은 이번엔 핸드폰으로 ‘장례식장 예의’를 검색했다. 장례식장이 익숙지 않은 명현은 혹시나 실수할 수 있는 것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익힌 명현은 지하철에서 내려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 도착했어. 너는 언제 와?”


“명현아! 나 야근이라서 좀 늦게 갈 거 같아. 거기 성혁이랑 진수도 간다고 하니깐 걔네한테 전화를 해봐.”


혼자 가는 게 좀 익숙하지 않았던 명현은 가장 친한 친구인 명진이와 같이 가고 싶었지만 그가 못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았고 명진이처럼 늦게 온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명현은 그냥 혼자라도 갈까 하는데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보고 숙연하고 슬픈 감정이 들었다. 혼자 들어가기가 싫었다. 



“명현이? 야 오랜만이다.”


그때, 누군가가 명현을 불렀다. 명현이 놀라 고개를 돌아보니 대학교 선배인 창민이었다. 


“어? 창민이 형. 진짜 오랜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그래. 다른 애들은 아직인가? 너 혼자 온 거야?”


“네. 다들 야근이라 늦는다고 하네요.”


“그래, 아직 장준이한테 인사는 안 했지? 애들 기다리는 거야?”


“아뇨. 너무 늦을 거 같아서 혼자 들어가려고 했어요.”


“잘됐네. 자, 나랑 들어가자.”


창민은 조의금 봉투에 돈을 넣으며 명현에게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그제야 명현은 자신도 돈을 안 넣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창민을 따라 봉투에 이름을 쓰고 준비한 돈을 넣었다. 그리고 이제 둘은 장준에게 조문을 하러 갔다. 

분위기는 엄숙했다. 장준의 부모님은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 보였지만 아들을 먼저 잃은 슬픔과 허망함에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다. 명현은 그런 장준의 부모님 모습을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가장 슬픈 것은 장준의 어린 딸이었다. ‘저렇게 어린 딸을 두고 장준은 무엇이 급해서 먼저 세상을 떠났는지….’  명현은 지금 장준의 가족에게 닥친 현실이 너무나 슬펐다. 


명현과 창민은 분향을 마치고 상주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명현은 장준의 사진을 슬쩍 다시 봤다. 웃고 있는 장준의 모습. 명현은 지금 당장이라도 장준이 웃으면서 자신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할 것만 같았다.

창민은 식사를 하자고 하며 명현과 밥을 먹었다. 식사의 자리는 무척 무거웠다. 둘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창민이 명현에게 요새 어떤 일을 하냐고 하며 근황을 물었다. 이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조금씩 다른 친구들이 도착했고 그렇게 모인 대학교 동문들은 장준을 기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들이 기억하는 장준의 삶은 분명 가치가 있는 삶이었다. 명현은 장준이 무척 그리웠다. 


집으로 가는 길, 명현은 과거 장준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핸드폰에서 찾아봤다. 모두 젊었고 모두 패기 있었고 모두 즐거운 일만 가득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명현은 그 시절, 장준과 더 친하게 지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더 이상 장준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명현에게 죽음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명현은 죽음에 더 이상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자신들은 너무 젊다고 생각했다. 명현은 누가 죽는다는 것이 매우 싫었다. 


‘죽음이 싫다. 죽는 것이 매우 싫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언젠가 익숙해지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명현은 알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명현은 하늘에 뜬 달을 보며 장준을 떠올렸다. 그리고 장준을 향해 마지막으로 명복을 빌어주며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언제, 또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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