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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15. 2022

3월 15일 김지용의 하루

면접관

“벌써 2시네? 지용님 이제 우리도 가죠”


점심을 먹고 와 너무나 졸려하며 하품하고 있는 나를 보며 옆자리에 앉은 선화님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2시에는 면접이 있었다. 면접이라…. 내가 면접을 보러 간 적은 많았지만 면접관으로 들어가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보통 같았으면 내가 면접관으로 참여할 일은 없었지만 팀장님이 얼마 전 확진이 되어 회사에 며칠 못 나오셨기 때문에 갑자기 나에게 차례가 돌아갔다. 면접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면접 질문지를 인터넷에서 검색했고 과거에 내가 이 회사에 올 때 들었던 질문들을 떠올리며 준비를 했다. 막상 면접 질문지를 다시 마주하니, 취업 준비를 하던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지용님을 내가 면접 봤었죠?”


선화님을 처음 만난 것은 면접 자리였었다. 그때는 너무 긴장해서 면접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선화님은 꽤나 날카로운 질문들을 많이 해서 나를 당혹시킨 사람이었다. 나중에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그 꼼꼼한 성격 때문에 애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성격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일할 때 좀 애먹어서 그렇지…. 그리고 이곳은 회사라 일할 때의 모습을 대부분 보고 있기는 하지만….


면접 시간은 2시였다. 우리는 2시에 딱 맞춰서 사무실을 나왔고 두 층 위에 있는 회의실로 이동했다. 여기까지도 3~4분 정도는 걸리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면접자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의 면접은 항상 그랬다. 제시간에 들어온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면접 볼 때도 10분이나 늦어놓고는 미안하다는 소리 하나 없었다. 나는 괜히 면접자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회의실로 들어가니 단정한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있었다. 머리는 짧게 올렸고 안경을 써서 날카로움을 보이고 싶어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리숙함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긴장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선화님이 앉자마자 면접자에게 물어봤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면접자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어디 보자…. 정민환 씨라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자기소개 한번 해주세요. 그냥 짧게 해도 괜찮아요.”


민환은 어디서 외워온 듯한 멘트로 힘차게 자기소개를 했지만 이윽고 말을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말을 하려고 하니 긴장한 것 같았다.


“자…. 민환 씨.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하세요.”


나는 민환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웃으면서 그를 안심시켰다. 선화님은 나를 잠시 슬쩍 보더니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을 응시했다.


“최근에 다닌 회사는 5개월 다녔네요? 그리고 다시 6개월째 일은 안 하고 있고. 뭐 이건 개인 사정이 있을 테니….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무엇을 배웠는지도요. 첫 회사로 가볼까요? 첫 회사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선화님은 민환의 경력을 잠시 보더니 그에게 말할 기회를 줬다. 실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이력서에 쓰여있었다. 이 질문은 민환이라는 사람이 회사를 다니며 어떤 것을 배웠는지, 무엇을 느꼈는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민환은 자신 있게 대답하는 듯했지만 계속해서 말끝이 흐리면서 답변을 끝냈다.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나는 내 앞에 놓인 노북에 쉴 새 없이 타이핑을 하며 현재 민환에 대해서 단편적인 평가를 하고 있었다.


선화님은 민환의 답변의 모순점을 찾아내서 계속해서 집요하게 꼬리의 꼬리를 물며 질문을 이어갔다. 내가 저런 선화님의 모습을 면접 때 봤었다. 정말 짜증 나면서도 사람 긴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당황하고 있을 민환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힘내라. 민환아.


하지만 민환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답변에 알맹이가 없었다. 자신감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말하려고 하다 보니 자꾸 허점이 생기는 것 같았다. 다녔던 회사나 업무를 했던 내용은 나쁘지 않았지만 실제 이 일을 했는지 조차 의심되기 시작했다. 나는 쉴 새 없이 타이핑을 했다.


선화님은 민환에게 왜 회사에 지원했는지, 이 회사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민환은 이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민환의 이력서를 다시 살펴봤다. 그러고 보니 지원동기 따위는 전혀 없는 일반적인 이력서였다. 아무래도 막무가내 지원을 한 것 같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면접 보러 오는데 한 시간이라도 공부하고 올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우리 회사 그리 듣보 회사도 아닌데? 좀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그거면 지금 우리 경쟁사… 경쟁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가 순간 흥분해서 민환에게 질문을 했다. 구체적이지 않고 감정이 담긴 질문이었다. 선화님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빠르게 노트북을 타이핑했다.


‘질문이 그게 뭐예요?’


선화님이 빠르게 나에게 메시지를 쓴 것이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노트북으로 내가 혼나는 동안, 노트북 너머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는 민환이 있었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선화님은 내 질문을 보충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답변이 나올 수 있게 다시 물어봤지만 민환은 답변을 하지 못했다. 야, 너 진짜 왜 지원한 거야….


어느 정도 질문이 끝나자 우리는 민환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이 사람은 진짜 아니다. 하지만 선화님은 밝게 웃으며 향후 절차와 입사 후 처우에 대해서 민환에게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줬다. 뽑지도 않을 거 이렇게 설명하는 것도 정말 잔인한 거다. 괜한 희망고문. 이런 것에 몇 번을 당했는지, 나는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났다. 수없이 면접에서 낙방하던 그 시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민환이 안쓰러워졌다. 그리고 민환의 이력서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6개월의 휴식기…. 지금 이 청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든 취업해서 돈을 조금이라도 벌고 싶은 한 청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아마 민환은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한 면접을 볼 것이고, 어느 구직난에 시달리는 별로 좋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경력을 쌓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정말 좋은 곳에서 민환의 능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와 그의 이야기는 아마 여기까지 일 것이다.



“어때요?”


민환을 배웅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선화님이 나에게 물었다. 


“우리 회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지원한 것 같은데요? 좀 너무하네요.”


선화님의 얼굴을 보며 내가 말했다. 


“그런데 저런 사람 요새 많아요. 취업난이고, 좋은 일자리는 찾기 어려우니. 막무가내라도 오는 거죠.”


선화님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준비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요. 나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지용님은 뭐 얼마나 나이 먹었다고 그렇게 말해요. 에휴…. 나도 마음이 안 좋아요. 어리숙해도 잘 성장할 수 있는 친구일 거예요. 우리랑 맞지 않을 뿐”


그렇게 말하는 선화님은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지융님의 선택은?”


“아… 저는….”


나의 선택을 묻는 선화님의 질문에 나는 잠시 굳어 있었다. 내 선택에 따라 한 청년의 미래가 달렸다는 생각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 자리에 앉은 선화님은 팀장님과 통화를 하며 민환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민환의 탈락이 결정되며 선화님은 인사팀에 연락해 팀의 결정을 알렸다. 민환에게는 아마 내일쯤 연락이 갈 것이다. 그 연락을 받았을 때, 민환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그래도 우리가 괜한 시비를 걸어 탈락시킨 것은 아니니 무거운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나는 비로소 나를 탈락시켰던 수많은 면접관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나처럼 생각한 사람은 많이 없겠지만….


집으로 가는 길, 나는 회사 앞에 있는 순대국밥집에 들렀다. 집에 가서 밥을 먹기엔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순댓국이 나오자 나는 뜨거운 국물에 입김을 불며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민환이었다. 면접은 한참 전에 끝났는데, 어째서인지 민환은 아직 이 근처에 있었다. 나는 민환이 혹시나 나를 알아볼까 자리를 옮겨 민환이 볼 수 없게 등지고 앉았다. 굉장히 민망한 상황이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푹 숙이고 국물을 들이켰다. 그러면서 눈치를 보며 계산대를 슬쩍 살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민환이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민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때, 민환이 고개를 돌려 나와 딱 눈이 마주쳤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빈 그릇을 쳐다봤다. 제발 가라. 제발 가라. 다시 고개를 드니 계산대에는 주인아주머니만 있었다. 가게 창문 너머로 민환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괜히 또 마음만 무거워졌다. 


수도 없이 탈락했지만, 누군가를 탈락시킨 것은 처음이었다. 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지는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수없이 나에게는 이런 선택이 주어지겠지…. 무뎌질 테고…. 나는 그저 가식적인 사람일 뿐이다.

오늘은 그래도 민환의 미래에 안녕을 빌어주고 싶다. 잘 준비해서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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