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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30. 2022

3월 30일 지용재의 하루

연봉 협상 

오늘은 내가 지금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1년 전,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회사에 지원했는데 덜컥 붙어버려서 당황했었다. 다행히 1년 간 회사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고 지금 하는 일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연봉이었다. 오히려 지난 직장보다 연봉을 깎고 들어갔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다. 연봉을 포기하면서까지 지난번 회사를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감안한 것이었지만 무척 후회되는 결정이었다. 바보 같은 결정이기도 했고. 

오늘은 입사 1주년임과 동시에 연봉 협상을 하는 날이었다. 지금 회사는 입사 1년마다 연봉 협상을 하게 되는데 통보 방식은 아니고 정말 임원진과 직접 대화를 통해 협상하는 자리였다. 그리 길지 않은 직장 생활 경력이지만 내게 연봉은 항상 통보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래도 대화를 한다고 하니 신기했다. 지난주부터 미리 연봉 협상을 했던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보면서 어떻게 해야 더 유리하게 연봉을 올릴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들은 말만 협상이지 실제론 통보나 다름없다며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직원은 회사에서 제시한 연봉보다 더 많은 연봉을 요구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결국 내가 하기 나름이기는 한 것 같은데 내가 과연 연봉 협상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그래서 어제는 밤에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최근에 태어난 아이가 너무 울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용재 씨, 작은 회의실에서 이야기하시죠.”


회사의 임원인 곽이사가 나를 불렀다. 내 연봉 협상의 대상자는 곽이사였다. 그는 회사의 실질적인 일인자였다. 물론 대표가 있었지만 대표는 항상 미팅을 다니느라 얼굴을 보기 힘들었고 회사의 실무는 곽이사와 곽이사의 아내인 정실장이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아…그리고 곽이사는 대표의 친동생이었다. 여기는 가족 회사였다. 하하…

곽이사와는 직접적으로 일을 같이 할 때가 많았다. 내가 속한 부서는 임원진과 직접 소통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곽이사와는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같이 술을 마신적도 많고. 내 나름대로 친하다고 생각하기에 곽이사와 연봉 협상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만약 정실장과 연봉협상을 해야 했다면 그녀는 굉장히 차가운 사람이라 아마 내가 제대로 내 주장을 말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용재 씨가 여기 온 지 벌써 1년이 되었어요?”


작은 회의실로 가서 앉자마자 곽이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네. 시간이 참 빠르네요. 곽이사님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회사 잘 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곽이사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에이, 내가 뭘 했다고. 다 용재 씨가 일을 잘해서 그런 거지. 용재 씨가 온 덕분에 회사도 성장하고, 대표님도 만족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대표님과 곽이사님, 그리고 다른 분들이 있어서 이룬 성과입니다.”


나는 조금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대표와 곽이사를 치켜세우며 대답했다.


“연봉 협상하는 자리에서 너무 겸손한 것도 안 좋아요. 자기 자랑 좀 하고 그래요. 용재 씨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요.”


“아.. 아닙니다. 덕분에 제가 제 능력을 잘 키우고 회사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나는 여전히 겸손을 떨며 곽이사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용재 씨, 지금 아기가 몇 개월이지?”


곽이사가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돌리며 나에게 물었다.


“이제 5개월 되었습니다.”


“5개월이라… 한참 피곤할 때네. 우리 아이는 벌써 중학생이 되었어요. 나도 우리 딸이 아기 때가 어제 같은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놀랄 때가 더 많아요. 아기 사진은 많이 찍어주고 있죠.”


“네. 물론이죠. 생각날 때마다 찍어주고 있습니다. 아! 아기 사진 좀 보실래요?”


나는 핸드폰에 담긴 아이의 사진을 곽이사에게 보여줬다. 


“하하 너무 귀엽네. 아들인 거죠? 그놈 봐라. 장군감이네. 애가 나중에 힘이 엄청 세겠어요. 어우 , 지금도 힘들겠네”


“그래도 이 아이 보는 것으로 요새 버티고 있습니다. 애 때문에 잠도 잘 못 자고, 아이 엄마한테 미안한 것도 있지만 애가 웃는 모습만 봐도 모든 고민이 풀리는 것 같아요.”


“그때만 그럴 거 같죠? 난 지금도 그래요. 애가 사춘기가 와서 나랑 말 안 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난 우리 딸이 예뻐요.”


그렇게 팔불출인 아빠 둘이서 한참을 자기 자식들을 자랑했다.


“그래, 지금 아내 분은 휴직 중이신 거죠?”


어느 정도 이야기를 마치자 곽이사가 나에게 아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네. 지금 육아 휴직 중이에요.”


“용재 씨, 연봉이 얼마였지? 잠깐 어디 보자….”


이제 드디어 연봉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았다. 곽이사는 미리 뽑아온 서류를 보면서 말했다. 아마 내 연봉 정보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흠…. 용재 씨가 올해로 서른다섯인 거죠?”


한참 서류를 보던 곽이사가 나에게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 나이도 그렇고, 이제 아이가 생겨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할 시기인데…. 연봉이 그리 높지는 않네요?”


“아…. 네. 제가 늦게 취직을 하기도 했어서요. 그리고 지난 회사보다 연봉을 좀 줄이고 입사했습니다.”


“어? 왜 그랬다고 했죠? 연봉을 줄이고 입사하는 경우도 있나?”


“아.. 그게 사정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게….”


“아냐, 아냐, 이야기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갑작스러운 지난 직장 연봉 이야기가 조금 당황하고 있을 때 , 곽이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뭐 아시겠지만 지난 회사 연봉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연봉이 중요하죠.”


곽이사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용재 씨는 내가 봤을 때, 일 정말 잘하고 믿을만한 사람이에요. 유선배, 아니 유팀장도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유팀장…. 그는 내가 속한 팀의 팀장이었다. 그러면서 곽이사의 학교 선배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사석에서 유팀장은 곽이사에게 반말을 하고 곽이사는 유팀장을 선배라 부르곤 했다. 내가 곽이사와 친해진 것도 유팀장 덕분이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우리 자주 가는 그 술집 있잖아요? 거기 없어진 거 알아요?”


연봉 이야기를 할 것만 같더니 곽이사는 다시 대화 주제를 전혀 엉뚱한 데로 돌렸다. 나는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곽이사의 말에 호응을 해주면 다시 물었다.


“아? 그 이자카야요? 어 거기 진짜 괜찮았는데… 왜요?”


“글쎄, 요새 뭐 뻔하죠. 코로나 때문에 망하는 거. 그래도 거긴 오래 버텨서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쉽네.”


“그러게요. 입사하고 첫 술을 이사님이랑 거기서 마셨었죠.”


“그래, 그거 기억하는구나. 유선배가 진짜 똑똑한 놈…아 미안해요. 똑똑한 사람 왔다고 하도 자랑하길래 내가 술이나 마시면서 용재 씨랑 친해지려고 자리 만들었었어요.”


“저를 잘 봐주신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유선배, 아니 유팀장이랑 다른 데 가서 술이나 합시다. 내가 괜찮은데 몇 군데 더 알고 있어요.”


“물론입니다.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나 진짜 용재 씨가 마음에 든다니까 하하하”


곽이사가 소리 내어 웃자 나도 덩달아 웃으면서 그에게 호응했다. 근데 이제 이런 이야기 그만하고 빨리 연봉 이야기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에휴…. 내가 용재 씨를 정말 아끼는데 말이야….”


갑자기 곽이사가 분위기를 바꾸면서 말했다. 뭔가 불안했다.


“연봉…. 요새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아아.. 이건 부담가지라고 괜히 하는 말은 아니고…. 흠흠… 여하튼 혹시 생각한 연봉이 있어요?  여기에 한 번 적어줄 수 있어요?”


그는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면서 말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항상 회사에서 연봉 올려주기 싫어서 사용한다는 멘트가 나왔다. 내가 생각한 연봉을 말하라고 하지만 내가 크게 부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눈에 보이는 말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면서 내가 주눅 들게 하는 그의 심리전 같기도 했다. 나는 곽이사가 준 종이를 보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받고 싶은 연봉을 소신껏 적어서 보여줬다.


“저는 이만큼이었으면 합니다. 지난 회사 연봉이 중요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 이상은 물론이고 제가 지난 한 해동안 한 성과가 적지는 않으니 이만큼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지만 심장은 크게 떨렸다. 곽이사는 내가 내민 연봉 액수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 고민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그는 입을 꽉 다문체 한참 동안 종이만 바라봤다. 어색한 침묵만 이어졌다.


“…. 잠깐만요.”


곽이사는 내가 건넨 종이 뒷장에 뭔가를 슥슥 적더니 나에게 다시 내밀었다.


“이만큼. 이만큼만 올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미안해요. 나도 내가 올릴 수 있는 최대한의 액수고. 용재 씨의 성과를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회사는 용재 씨 혼자의 힘으로 돌아가는 곳도 아니고, 그래서 제가 올려줄 수 있는 연봉은 이 정도예요.”


나는 곽이사가 내민 종이를 보고 약간 치욕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고작 100만 원이 오른 연봉이었기 때문이었다. 세금까지 떼면 티도 안 나는 돈이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곽이사에게 말했다.


“어… 조금 당황스러운데요. 이게 인상인가 싶을 정도네요. 솔직히… 너무 적습니다. 저희 따로 인상 테이블이 있는 것 알고, 성과 중심으로 올려주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올려주실 금액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제 성과도 어느 정도 인정해주셨고요.”


“일단,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 연봉 이야기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동결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도 있어요. 나도 동결이고. 용재 씨 연봉은 그리 올라가지만. 올해 1월을 생각하시면 저희가 인센티브를 꽤 넉넉하게 줬다는 거 기억하시죠? 저희 정도 되는 회사 규모에 꽤 큰돈이었고 성과를 낸 유부장 팀에 가장 많은 인센을 드렸어요. 그 인센과 지금 오른 연봉 합치면 용재 씨가 제시한 연봉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근접한 돈이 나와요. 내년에도 인센 나올 거고요. 그런 점을 고려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인센? 곽이사한테 이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저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그리고 올해 말에 회사가 투자를 받을 예정이에요. 규모도 꽤 될 거고. 이건 용재 씨도 우리랑 같이 일하는 게 있으니 아실 거예요. 그러면 내년 1월에 일괄적으로 연봉 협상에 들어갈 거예요. 그때 더 유리한 조건으로 연봉을 받으실 거요. 인센티브도 동시에 받으실 거예요. 그리고 내가 어떻게든 대표님 설득해서 유팀장이나 용재 씨 섭섭하지 않게 하려고 할 거예요. 나 믿고 이번 한 번만 이해해줘요. 네?”


모든 것들은 허황된 약속에 불과했다. 올해 말과 내년이라는 전혀 와닿지도 않는 시간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월급쟁이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냥 이 연봉을 따르던가, 아니면 회사를 옮기던가. 


“아까도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만큼도 못 챙겨줬어요. 올해만 이해 부탁드려요.”


어딜 가나 똑같은 것 같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 다른 사람도 버텼는데 너는 왜 그러냐. 그냥 연봉 통보나 다름없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내 선택권 따위는 있지 않았다. 내가 더 강하게 말하고, 내가 한 업무를 더 납득시켜서 연봉을 올려야 하는 것이 맞지만 내 성격 상 그럴 자신도 없었다.


“…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 더 잘 챙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이제 아이도 있어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결국 숙이고 들어갔다. 모든 건 곽이사의 말에 넘어간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그래, 고마워요. 계약서 이번 주안에 쓰게 될 거고. 다음 달 월급부터 반영됩니다. 아 그리고 이거!”


곽이사는 갑자기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면서 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이사님?”


“이거 내가 그냥 주는 거예요. 애기 기저귀 값은 내야지. 얼마 안 되지만 그냥 내가 동생 같아서 주는 거예요. 누가 보기 전에 그냥 받아요.”


그는 주위를 살피며 나에게 5만 원짜리 2장을 손에 쥐어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말고, 내 나중에 아까 말한 진짜 괜찮은 술집에서 밥도 살게요.”


이 말을 하고 곽이사는 무엇이 바쁜지 빠르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손에 쥐어진 돈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너무 짜증 나서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핸드폰 은행 앱에서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돈을 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오를 연봉을 생각해서 어떻게 저축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크게 의미는 없어졌다. 물론 내가 원하는 만큼 연봉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허무하게 끝나니 마음이 헛헛했다. 아내와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봉만 올릴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직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포기하고 온 연봉에 도달하지 못했다. 1년 전 모든 것이 후회되었고 다시 1년을 버틸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왔다. 그리고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내가 너무 한심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작은 회의실에서 잠시 넋이 나간 체 한참을 있었다.  그래도 버텨야지. 곽이사가 한 말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나만의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망할 회사. 언젠가 그만두고 만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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