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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01. 2022

4월 1일 김도현의 하루

만우절

4 1


실없는 장난들이 계속되는 하루다. 부지런한 친구는 아침부터 단톡방에 각각의 회사들이 진행한 기발한 아이디어의 만우절 장난들을 공유했다. 신박한 것들이 많았다. 영화 사이트에서는 지금 상영 중인 영화를 옛날 영화 포스터 스타일로 만들기도 했고 소주 회사는 자신들의 브랜드를 이용한 손소독제를 팔겠다는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어떤 회사는 ‘충격 발표’라며 사명을 바꾼다면서 위트 있는 이름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 어떤 곳은 만우절에 진심인 것인지 평소라면 팔지도 않았을 특별한 상품을 만들어 만우절 특집으로 잠시 판매한다고 하기도 했다. 회사만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친밀한 곳끼리 미리 협의해서 서로의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접속했을 때, 갑자기 다른 이름으로 보여서 당황해했다는 사연도 보였다. 참 만우절에 진심인 나라 같았다.

나는 올해로 10년 차 마케터다. 이런 재미있는 이벤트를 보면 그들의 신기한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도 그들의 추진력이 부러워질 때도 있다. 지금 있는 회사 역시 만우절 이벤트를 하면 고객들이 재미있어할 것 같은데 회사에서는 그런 장난을 굉장히 싫어했다. 오히려 너무 진지했다. 그래서 만우절 이벤트뿐만 아니라 다른 이벤트를 할 때도 처음의 재기 넘치던 아이디어는 온데간데없고 그냥 평범한 이벤트 기획안이 될 때가 많았다. 디자인을 할 때도 그랬고 사업 아이디어 자체도 그랬다. 항상 안정적인 것만 추구했고 기존에 성공했던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려고 했다. 회사의 대표는 새로운 용어가 나오면 그것을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이런 게 왜?’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말 내 경력만 갉아먹는 것만 같을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입사한 지 반년이 안 된 상황이라 그래도 최대한 버텨보려고 하고 있다.

내가 처음 만우절 이벤트를 기획했을 때, 팀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팀원들은 나를 말렸다. 내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도 그들은 대표가 절대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호기롭게 보고를 올렸지만 바로 까였고 대표는 팀장에게 다이렉트로 ‘이런 것을 왜 안 챙기고 나한테 보고가 올라오게 하냐?’라고 꾸짖었다. 나는 팀장에게 ‘왜 까일걸 알면서 내가 직접 보고를 올리게 뒀나요?’라고 물었고 팀장은 ‘한 번쯤은 그렇게 부딪혀 봐야지. 여기 그러다가 꺾인 사람이 태반이지만.’이라고 대답했다. 그냥 내가 까일 줄 알면서 깨달음을 주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었다. 그때서부터 이 회사에 잘못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 1일이었지만 회사는 여전히 똑같이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어서 오히려 불안했다. 내용만 바뀐 의미 없는 기획안이 올라갔고 아주 쉽게 별 갈등 없이 통과되었다. 남들은 만우절이다 뭐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평범한 이벤트나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서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매출도 꾸준히 잘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에서 굳이 모험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회사는 고인물이 되어 항상 하던 데로 항상 하던 결과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심히 좋았고.

회사의 간판만 보고 들어갔는데 내 경력에 있어서는 그리 좋지 않은 것 같다. 고민이 되었다. 짧은 경력으로 옮기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최소 2~3년은 회사에 있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경력을 쌓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회사의 간판이 워낙 유명해서 아마 나랑 같은 업종인 사람들은 이곳이 마케터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직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휴.. 오늘은 거짓말처럼 회사가 바뀌어서 내 경력을 이어갈만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거짓말처럼 큰돈이 나에게 생겨서 이따위 회사 바로 그만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 들어온 게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아까부터 단톡방의 친구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다른 회사의 만우절 이벤트를 계속 보냈다. 그리고 그중에는 내 예전 회사의 사례도 있었다. 가만 보니 이 아이디어는 내가 작년에 냈던 그 아이디어네. 그때는 별로라며... 하.. 망할… 짜증 나게 반응도 좋았다. 정말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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