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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02. 2022

4월 2일 송지호의 하루

월드컵 조추첨

지호는 평소에는 축구를 보지는 않지만 월드컵만 보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는 평소에는 절대 축구를 보지 않는다. K리그 경기는 물론이고 EPL 경기도 거의 보지 않았다. 아주 예전,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뛸 때 잠깐 보기는 했지만 지호는 크게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그는 야구와 농구를 좋아했다. 축구가 가진 긴 호흡의 경기는 지호가 견디기 힘들었다.

다만 월드컵만 보고 있다. 물론 월드컵도 지호가 보기엔 지루했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 느낀 희열이라는 감정 때문에 월드컵 경기만, 그것도 오직 국대 경기만 보고 있다. 2002년, 스무 살이었던 지호는 그날의 광장을 잊을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고, 목놓아 외쳤던 그날의 기억이 너무나도 좋아서 지호는 그날의 기적이 언젠가 다시 반복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사실 월드컵만 보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경기도 대부분 챙겨보고 한국이 금메달을 따거나 좋은 성적을 얻으면 누구보다 기뻐했다. 오직 국대 경기만 보는 지호였기 때문에 그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지호는 오직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 그것을 응원하는 것이 애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조추첨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 같으면 조추첨 같은 것은 보지 않는 지호였지만 오늘은 주말이라 늦게 자는 날이었기 때문에 조추첨을 보기로 한 것이었다. 아내와 아이는 일찍 잠들었고 지호는 맥주를 한 캔 들고 TV를 틀었다. 마침 조추첨이 진행 중이었다. 수많은 국가들이 보였지만 지호는 어디가 잘하는지 잘 몰랐다. 그저 TV에 나온 패널들이 이야기하는 정보만 듣고 저 나라는 만만한 곳, 저 나라는 조심해야 하는 곳을 판단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지호는 월드컵을 챙겨보기 시작했는데 2014년 월드컵은 정말 16강 진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언론에서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고 지호는 국가대표팀을 욕했다. 그리고 축구는 역시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은 축구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2018년 월드컵이 다가오자 결국 경기를 챙겨봤고 기대를 안 했지만 독일전에서 한국이 승리하자 다시 2002년 때의 감동과 희열을 느꼈다. 그래서 지호는 이번 월드컵을 기대하고 있었다. 

지호는 사실 월드컵이 언제 하는지도 몰랐다. 어디서 하는지도 몰랐다. 왜 이번에 12월에 하는지 이제야 지호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선수들이 누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2018년에 봤던 선수들은 알고 있었지만 몇몇 선수들은 지호의 눈엔 낯선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지호는 국대로 뽑혔기 때문에 그들이 잘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지호는 오히려 축구를 모르기 때문에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대망의 월드컵 조추첨이 다가오자 지호는 떨리기 시작했다. 지호는 패널들이 이야기하는 정보를 따라가며 머릿속으로 가장 들어갔으면 하는 조를 상상했다. 지호가 보기에 조편성 규칙은 조금 복잡해 보였다. 포트라는 것도 이상했고 한국이 3 포트라는데 그리 좋은 것 같지도 않아 의아해하고 있었다. 

마침내 조추첨이 시작되었다. 지호에게 1 포트의 조편성은 그리 감흥이 없었다. 2 포트 편성이 시작되자 지호는 가장 만만해 보이는 조를 머릿속으로 계속 계산했다. 그리고 독일과 스페인이 한 조가 되자 축구를 잘 모르는 지호도 여기만큼은 피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간절히 저 조만은 절대 가지 않게 되기를 기도했다. 

대망의 3 포트 추첨. 지호가 생각하는 만만한 조로 한국이 편성되기를 기대했지만 한국의 이름은 계속해서 나오지 않았다. 독일과 스페인이 있는 조 차례가 되었을 때, 일본이 나오자 지호는 큰 소리로 박수를 칠뻔했다. 죽음의 조를 피한 것도 피한 것인데 일본이 그곳에 속했으니 지호는 더 기분이 좋았다. 최종적으로 한국이 포르투갈과 우루과이의 조로 편성되자 지호는 약간 걱정되었다. 패널들은 괜찮은 조라고 했고 인터넷에서도 해볼 만한 곳이라고 말했다. 지호는 자신이 보기에 저 두 나라는 강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기에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한국 국대 감독이 포르투갈 사람이고 2002년에 이겨본 팀이기도 했고 노쇼 사태의 주인공이 있는 팀이었기 때문에 지호는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 4 포트 추첨에서 가나가 나오자 지호는 그래도 해볼 만한 조가 나왔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반응도 지호의 의견과 비슷했기에 지호는 흡족해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지호는 언론들을 보며 마치 전문가처럼 현재 월드컵을 전망하기 시작했다. 사실 언론들이 보도하는 데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호는 이번에는 꼭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6강을 넘어 한국이 그 이상까지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지호의 생각을 이야기하니 친구들은 16강도 힘들 것이라며 지호의 의견을 부정했다. 지호는 자신이 월드컵만 보지만 이번에는 정말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축구 이야기를 하는 지호를 보며 친구들은 그가 또 월드컵병에 걸렸다고 놀렸지만 지호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지호는 2002년의 감동이 다시 다가올 날을 기대하고 있었고 그것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 전력이 어떻든, 실제 결과가 어떻든, 지호는 지금 당장은 희망을 가지고 싶었다. 


지호는 오늘 이후에는 다시 축구에 대한 관심을 접을 것이다. 월드컵이 언제 하는지도 모를 것이고 월드컵이 시작해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한국이 월드컵 경기를 하는 날만 기억할 것이다. 지금도 지호는 달력에 빨간 글씨로 한국의 경기일을 적어놓았다. 지호는 앞으로도 평소처럼 살겠지만 월드컵 경기날이 되면 누구보다 축구 매니아가 되어 목이 터져라 한국을 응원할 것이다. 친구들과 호프집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열렬한 서포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경기에서 이기면 누구보다 기뻐할 것이고 만약 지면 누구보다 더 심하게 국대를 욕할 것이다. 지호에게 월드컵은 항상 그런 것이고 앞으로도 그런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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