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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03. 2022

4월 3일 최경수와 신은채의 하루

연애 10년 차

경수는 여자친구인 은채와 동거를 하고 있다. 둘은 평소처럼 침대에 누워 늦은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은채는 날씨가 너무 좋다며 오랜만에 나가서 데이트를 하자고 경수를 졸랐다. 경수는 내일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가기를 귀찮아했다. 그러나 은채는 경수를 보채며 계속 나가자고 했고 결국 경수는 은채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문제는 어디로 나가느냐였다. 

두 사람은 만난 지 10년이 지난 커플이었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눈이 맞아 스무 살의 봄부터 둘은 사귀게 되었다. 둘의 사랑은 대학교 내내 계속 이어졌다. 경수가 군대를 갔을 때도 은채는 그를 기다려줬다. 은채는 시간이 날 때마다 경수에게 편지를 썼고 경수를 만나러 면회를 오기도 했다. 경수가 복학했을 때, 은채는 취준생이었다. 은채가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경수는 여전히 학생이었다. 점점 둘이 사는 방식이 바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둘은 계속해서 사랑했다. 마침내 경수가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며 둘은 사회초년생인 서로의 기분을 이해하며 사랑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둘이 동거를 하기 시작했다. 둘은 언젠가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했지만 지금 당장은 어려웠기 때문에 먼저 동거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경수와 은채는 10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서로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지만 둘은 예전처럼 불꽃이 튀는 사랑을 하지는 않았다. 동거를 시작하며 신혼부부처럼 행복하게 지낼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서로는 그저 동거인이 되어갔다. 코로나를 핑계로 데이트를 하는 횟수는 줄어갔고 서로의 못볼꼴을 다 보면서 서로 간의 환상도 더 이상은 없었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변했다. 이제 둘은 예전처럼 결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너무 많았고 지금 동거를 통해서 얻게 된 문제들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둘이 헤어질 정도로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었기에 이 동거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은채가 오늘 데이트를 하자고 한 것은 점차 고착화되어가는 자신들의 관계를 조금 바꾸고 싶은 은채 나름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경수는 그런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은채의 부탁이 단지 주말을 편히 쉬고 싶은 자신의 일상을 침범하는 것으로만 들렸다. 하지만 경수는 이 일로 은채와 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군말 없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문제는 어디로 나가느냐였다. 


경수와 은채가 한참 데이트를 할 때, 그들은 안 해본 것이 없었다. 평범한 영화관, 카페, 공원 데이트는 물론이고 운동을 좋아하던 둘의 취미를 반영해 각종 운동, 익스트림 스포츠 등의 활동도 같이 했다. 보드게임, VR 게임 등도 좋아했고 특이한 데이트 코스도 둘은 싫어하지 않았다. 여행도 좋아해서 국내 여행은 물론 해외여행도 몇 번 같이 갔고 아무 생각 없이 드라이브를 간 적도 있었다. 지난 10년 간 할 수 있는 데이트는 모두 다 했다. 그러면서 동거를 하게 되면서 데이트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경수는 한참 생각하다가 동네 카페에나 가자고 은채에게 말했다. 하지만 은채는 동네가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 경수는 고민을 하는 척했지만 사실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 때문에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정작 은채도 어디를 가야 할지는 몰랐다. 한참을 고민하던 은채는 드라이브를 가서 벚꽃 구경도 하고 조금 경치 좋은 곳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권했다. 경수는 동네 카페를 가는 것이랑 뭐가 다르냐며 은채에게 싫은 소리를 했지만 결국 은채를 못 이기고 나갈 준비를 했다. 운전은 은채가 하기로 했다. 


은채는 특별한 목적지 없이 운전을 시작했다. 경수는 조수석에 앉아 핸드폰만 계속하고 있었다. 은채는 기분 전환 삼아 음악을 틀었다. 은채가 튼 플레이리스트는 경수와 은채가 대학생 시절 자주 듣던 음악들이었다. 은채는 추억이 담긴 노래가 나올 때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경수에게 했다. 하지만 경수는 잠깐만 반응하고 다시 핸드폰만 했다. 은채는 조금 기분이 상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운전만 했고 차 안에는 9~10년 전의 노래만 흘러나왔다. 


은채는 운전을 하다가 벚꽃이 잔뜩 핀 어느 한적한 곳에 도착하였다. 은채가 특별히 의도한 곳은 아니었지만 은채는 잠시 차에서 내려 경수와 함께 걷고 싶어 했다. 경수는 군말 없이 차에서 내려 은채와 걸었다. 낭만적인 풍경이 펼쳐졌지만 둘은 말없이 손을 잡고 걸었다. 그렇게 5분 정도 걸었을 때 경수는 은채를 잡고 있던 손을 빼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은채는 화가 나서 자신과 있는데 왜 집중하지 않냐고 말했다. 경수는 하루 종일 자신이 은채와 같이 있는데 지금 잠깐 핸드폰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따졌다. 은채는 밖에 나와서 경수가 계속해서 폰만 하고 있는데 자신이 화가 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렇게 10분 넘게 둘은 실랑이를 벌였다. 말이 끝날 것 같지 않자 은채는 한숨을 쉬고 경수를 버리고 벚꽃길을 혼자 걸었다. 경수는 은채를 잠시 바라보다가 뛰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경수는 미안하다고 했고 은채는 경수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은채는 기분전환 겸 자신들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어서 잡은 이런 자리에 경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났다. 은채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면 경수를 버리고 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잠시 멈칫하던 은채는 다시 길을 따라 걸었고 경수는 한 발치 뒤에서 은채를 따라갔다. 봄날의 햇살은 따스했고 아직 만개하지 못한 벚꽃은 어설펐지만 아름다웠다. 하지만 경수와 은채는 여전히 겨울에 한복판에 있는 듯했다. 


30분 정도 어색한 산책을 하던 은채는 경수에게 돌아가자고 했다. 경수는 은채의 화를 풀어주고자 더 밖에서 데이트하자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은채는 경수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기 때문에 그냥 이대로 집에 가자고 말했다. 


돌아가는 길도 은채가 운전했다.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어떠한 음악도 나오지 않았고 둘 사이의 대화도 없었다. 그저 경수가 가끔 신호나 자동차가 튀어나오는 것 정도를 은채에게 알려주는 정도의 말만 나왔다. 

집에 도착할 때쯤 되니 경수는 은채에게 말을 걸며 언제까지 화가 나있을 거냐고 물었다. 은채는 별 대꾸를 안 했다. 


은채는 사실 경수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자신들이 만나서 이제 다른 변화를 줘야 하는 때가 아닐까, 아니면 어차피 결혼할 건데 자신이 항상 경수가 같은 모습을 보이기를 바라는 욕심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그냥 경수가 싫어진 것일까… 등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채는 지금 당장 경수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럴 이유는 전혀 없었고 여전히 경수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꽁한 표정의 은채를 보며 경수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뭘 해주면 은채가 화를 풀지, 별것도 아닌데 왜 이리 화가 나있는지, 왜 괜히 나오자고 해서 이 난리인 건지, 저녁은 뭘 먹을지, 그냥 두면 화가 풀어질지… 등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경수는 은채와 헤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 생각 자체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냥 오늘 일이 어떻게든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경수와 은채의 어색한 침묵은 이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말을 안 하기엔 둘은 당장 오늘도 내일도 같이 살아야 했기에 시간이 지나자 다시 조금씩 서로 간의 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둘이 다시 장난도 치고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은채는 오늘 일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이 싫었지만 그렇다고 이 일로 더 크게 싸우기엔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경수는 은채가 대충 화가 풀린 것 같아서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겉보기에만 그랬다. 속은 썩어가고 있지만 오늘도 둘의 관계는 어설프게 다시 칠해졌을 뿐이다. 균열은 하나도 메워지지 않은 체, 경수와 은채의 사랑은 겉으로 보기에만 멀쩡한 체 다시 내일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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