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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04. 2022

4월 4일 한혜정의 하루

자리 이동

매번 하기 싫은 것이 월요일의 출근이지만 오늘은 특히  그랬다. 출근을 하니 사람들이 분주하게 자신들의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지난주에 공지된 자리 이동 때문이었다.

지금 회사에 온 지 2년. 이 회사는 밥먹듯이 자리 이동을 한다. 지난 2년 간 자리 이동만 6번을 했다. 자리 이동을 하는 이유는 조직 개편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회사 대표와 임원진들은 자기들끼리 심각하게 회의를 하다가 어느 날 띡 조직 개편 공지를 하곤 했다. 덕분에 내가 속한 부서도 벌써 3번째 변경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모셔야 하는 상사나 같이 일해야 하는 동료가 계속 바뀌었다. 3번의 자리 이동은 조직 개편 때문이었지만 나머지 3번은 별 이유 없이 바뀐 것이었다. 임원진 나름데로의 변명에 의하면 업무의 효율성 때문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100명도 안 되는 회사에서 위치를 바꿔봤자 뭐 얼마나 차이가 있다고 이러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덕분에 우리는 책상에 짐을 많이 올려놓고 있지 않는다.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도록 서랍에 대부분의 물건을 쑤셔놓고 있다. 직원들끼리는 우리가 마치 유목민 같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 익숙해진 사람들은 굉장히 빠르게 짐을 옮기고 있다.

이번 이동이 정말 어이없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조직 개편이 아닌 업무의 효율성을 빙자한 자리이동이었는데 심지어 같은 팀인데 자리가 찢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봤을 때 다음번에 조직 개편을 하기 위한 하나의 빌드업으로밖에 안 보인다. 두 번째,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인 건데 이번에 이동하는 자리는 3개월 전에 내가 옮겨갔던 내 예전 자리였다. 내 현재 자리로 옮기는 사람도 원래 이 자리를 쓰던 사람이었다는 게 더 웃겼다. 자리 교환인 건가. 아니 이럴 거면 왜 자리를 옮기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이젠 이해를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내가 출근했을 때, 내 자리로 옮겨야 하는 현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수와 나는 서로를 보자마자 헛웃음을 지었다. 현수는 나와 정말 친한 직원이었는데 그가 보기에도 어이가 없는 상황인 듯했다. 나는 내가 옮겨야 하는 자리를 슬쩍 봤다. 이미 그 자리는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이제 내가 옮기면 되는 상황이었다.

금요일에 퇴근을 할 때, 몇몇 짐은 우리 집에 가져다 놨다. 이젠 회사에서 쓰지도 않는 물건이 몇 개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상 위는 꽤나 깨끗했다. 나는 책상 위에 남은 물건을 쓸어 담아 내 이사용 상자 안에 넣었다. 이 상자는 내가 사비로 사둔 것으로 평소에는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나는 노트북과 이사 박스를 먼저 챙겨 새로운 내 자리이자 익숙한 내 옛 자리에 올려놨다. 그다음은 모니터 2대. 이게 좀 귀찮은 것인데 선을 빼고 하나씩 들어서 새 자리에 가져다 놨다. 그리고 수많은 물건이 봉인된 서랍을 밀고 새 자리 쪽으로 이동했다. 이 서랍은 바퀴가 달려서 정말 다행인 물건이었다. 만약 이걸 들어서 옮겨야 하는 것이었으면 나는 진작에 상사한테 던져버리고 회사를 때려치웠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사 박스와 서랍 안에 들어가지 않는 큰 물건들을 쇼핑백 안에 넣어 책상에 올려두었다. 아! 그리고 의자를 가져가야지.

내 짐을 모두 옮긴 나는 다음에 이사를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원래 내 자리를 깨끗하게 물티슈로 닦았다. ‘이사를 가는 사람이 자신이 원래 쓰던 책상을 깨끗하게 한다.’ 이것은 우리 유목민 직원끼리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내가 새로 옮길 자리도 미리 자리를 쓰던 사람이 깨끗이 닦아두었고 덕분에 아는 큰 걱정 없이 내 물건들을 그대로 옮겨둘 수 있었다. 물론 책상을 정리 정돈하면 다시 한번 물티슈로 닦아야 하지만. 원래 책상 정리를 마친 나는 현수를 불러 이제 당신이 이동할 차례다라는 신호를 줬다. 현수는 내 신호에 고개를 끄덕이며 매우 귀찮은 표정으로 자신의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내 오래된 새로운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는 사실 전에 사용할 때도 좋아한 자리였다. 이곳은 왼쪽에 벽이 있어서 이 벽을 활용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벽에 머리를 기대 멍을 때릴 수 있었고 벽에 좋아하는 아이돌 포스터를 붙여놓고 있을 수 있었다. 전에도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사진을 보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미리 준비한 최애 아이돌 사진을 예쁘게 붙여놨다. 언제 또 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일단 이거에 만족해야겠다.

자리 정돈을 마친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자리를 이동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힘들게 낑낑거리며 짐을 옮기는 사람도 있었다. 빠르게 자리를 옮기고 마치 자리를 옮긴 적이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자리 이동에도 불구하고 죽어도 자리를 옮기지 않는 우리의 고인 임원진의 자리도 보였다. 당신들은 왜 안 옮기나요.

새로운 자리에 앉아 멍 때리고 있을 때 현수가 나를 불렀다. 현수는 다른 직원들과 잠시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현수는 회사 곳곳에서 여러 소문을 듣던 사람이었는데 그는 또 몇 가지 회사의 떠도는 비밀을 말해주려고 우리를 부른 것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번 자리 이동은 누군가를 좌천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절차이며 곧 조직 개편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또 자리 이동이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다행히 그때는 전체 이동은 아닐 것이라고 하기는 하는데 나는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싶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자리 이동을 빌미로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커피를 마신 나는 자리로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사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번 자리에는 조금 더 오래 있기를 바라며 한숨을 쉬고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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