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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pr 05. 2022

4월 5일 최정빈의 하루

새로운 직원

오늘은 회사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는 날이다. 신규 입사자가 있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나에게 의미 있는 날이었다. 바로 내 부사수가 입사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회사를 3년째 다니고 있지만 아직 우리 부서에서 막내로 일하고 있다. 내 경력이 5년 차를 넘어가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대기업이 아니라 직급 변동이 빠른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막내 생활이 길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회사 전체에서 내가 막내는 아니다. 다른 부서는 계속해서 신입이나 인턴 직원들이 들어왔지만 우리 부서는 그렇지 않았다. 막내라고 해서 특별히 어려운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서의 막내이다 보니 이런저런 귀찮은 일은 거의 내가 맡아서 하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있던 곳이 군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강압적인 회사였기 때문에 나는 그곳에서의 짧은 생활이 몸에 배어있었다. 실제로 군대에서 막내 생활을 상병 때까지 했던 것도 지금 나의 행동의 원인인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나는 우리 부서에서 3년째 막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리 부서에 아예 사람이 안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 나보다 연차가 높은 사람들이었다.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이었고 나보다 나이도 많았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막내 생활을 자처했다. 다행히 팀원들은 친절하고 착해서 같이 지내는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눈치가 보였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생활을 3년째 이어오고 있었다. 

올해부터는 나는 내 밑에 부사수가 있기를 바랐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회사의 일이 과중되면서 야근이 잦아졌고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지쳐갔다. 내가 존경하던 사람은 작년을 끝으로 회사를 나갔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 사람 역시 금방 그만뒀다. 회사가 커지면서 일은 끝없이 늘어갔고 우리는 점차 갈려갔다. 그래서 더욱 새로운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내 팀장이 우리 팀의 TO를 얻어냈다. 그것도 무려 두 자리였다.  한 자리는 원래 있어야 할 부팀장급 인사였고 다른 한 명은 신입금 인사였다. 바로 내 부사수가 될 사람이었다. 나는 부사수가 뽑히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뽑히지는 않았다. 

그렇게 2달 정도가 지나고, 지난달 드디어 내 부사수가 뽑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면접을 보러 갔던 내 사수에게 새로 들어올 사람에 대한 정보를 캐기 시작했다. 사수의 말에 따르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의 이름은 영수였다. 영수는 올해 대학교를 막 졸업했고 대기업 위주로 취업 자리를 알아보다가 취업이 잘 안 되어 계속해서 취준생으로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리 회사를 발견했고 본인이 가고 싶어 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눈을 좀 낮춰서 이번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수는 이런 사정을 면접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수는 우리 회사에 대해서 제대로 준비한 것이 없었고 본인이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사수에게 왜 이런 사람을 뽑은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사수는 분명 영수가 면접에 대한 예의를 지킨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의 능력이 있고 그만큼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합격을 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사수 본인의 의지보다는 팀장의 의지가 굉장히 강했다고 했다. 팀장은 영수가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영수가 워낙 똘똘해서 일을 잘할 것 같아서 그를 뽑았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과연 회사를 잘 다닐지, 아니 그전에 회사에 오기나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영수가 회사에 입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영수가 입사하는 날이다. 왜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영수가 입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영수가 변덕 없이 회사에 입사하기만을 기대했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다행히 내 염려와는 달리 영수는 회사에 오기로 했고 입사 첫 날도 지각하지 않았다. 영수는 오전에 인사팀과 계속해서 면담을 하고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오전에 영수와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영수는 우리 자리에 앉았고 우리는 영수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팀장은 기분이 좋아서 회사 근처에서 가장 맛이 있는 중국집에서 자신이 쏘겠다고 했다. 우리 팀원들은 열광했고 영수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영수는 조금 긴장하고 낯선 분위기에 있어 어색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팀장은 중국집에서 탕수육까지 사서 우리 팀원들에게 잘해보자고 격려의 말을 해줬다. 우리는 박수를 쳤고 영수는 어색한 듯 조용히 박수에 호응했다. 아무래도 내가 영수가 잘 적응할 수 있게 잘 도와줘야 할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영수가 자리 정리를 하는 것을 도와줬다. 사실 도와줄 것은 거의 없었다. 영수는 백팩 말고는 어떤 짐도 가져오지 않았고 백팩에서 꺼내는 것도 없었다. 영수는 단지 회사에서 지급한 용품과 컴퓨터 등을 정리했다. 나는 영수의 컴퓨터 세팅과 필요한 프로그램들이 잘 깔려있는지를 살펴봐줬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나는 영수에게 회사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영수는 내 말에 고객을 끄덕였지만 그렇게 열심히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지금 하는 말들 중에 중요한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설명이 끝난 후, 나는 내 일을 하면서 영수에게 회사 자료를 열람하고 있을 것을 지시했다. 영수는 알겠다고 대답했고 나는 영수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영수를 가르치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업무가 꽤 많았기 때문에 오늘 하루를 영수에게 모두 쏟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약 2시간가량을 내 업무를 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물론 가끔 영수가 무엇을 하고 있나 힐끔힐끔 살펴봤다. 영수는 모니터만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영수의 표정을 보니 컴퓨터의 자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모니터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일이 어느 정도 끝났을 때, 팀장이 영수를 따로 불렀다. 아무래도 영수와 면담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영수랑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지금은 팀장이랑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결국 나는 내 다른 일을 하면서 영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팀장과 면담이 끝난 영수가 돌아오자, 나는 영수를 데리고 회의실로 갔다. 그리고 영수와 회사 업무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이야기를 하며 그와 친해지려고 했다. 날씨 이야기, 여행을 어디를 가는 것을 좋아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등의 이야기였다. 영수는 내 질문에 대답은 했지만 약간 단답형의 답변만 했다. 나는 영수가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내 이야기를 하며 영수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다. 영수는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시선을 아래쪽으로 하며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영수와의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자 나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영수가 첫날이라 적응이 되지 않았을 텐데 여기저기서 부르고 있으니 조금 정신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자리로 가자는 말을 하기 무섭게 영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자리로 갔다. 나는 영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자리로 돌아간 영수는 다시 회사 자료를 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나에게 떨어진 다른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졌다. 그렇게 내가 일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시계는 퇴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퇴근 시간에 바로 일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대부분 야근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퇴근 시간이 지난지도 몰랐다. 일을 하다가 우연히 시간을 확인한 나는 영수에게 미안하다며 먼저 퇴근하라고 했다. 영수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영수도 미안한지 잠시 머리를 긁으며 나에게 지금 가도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행여나 영수가 도망갈까 봐 오늘만 이런 것이라며 대부분은 정시에 퇴근한다고 변명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영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짐을 챙겨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내일은 꼭 시간 내서 영수 업무를 가르쳐주겠다고 말했다. 영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팀장한테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떠났다. 


오늘 일을 마무리하니까 어느새 9시가 되었다. 우리 팀에는 팀장과 나만 남아있었다. 팀장은 나에게 영수가 어땠는지를 물었고 나는 영수가 조금 긴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팀장은 영수의 적응을 잘 도우라고 나에게 주문했다. 팀장은 영수 같은 사람의 마음을 잘 잡으면 우리 회사에 제대로 적응하고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나에게 당부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잠시 화장실을 갔다. 볼일을 보고 다시 자리로 들어오는데 팀장이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을 봤다. 나는 협력 업체에서 온 전화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 경우가 꽤 많았고 결국 다음 날 내 업무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오늘은 신경 쓰지 않고 퇴근하고 싶었다. 내가 집을 챙기고 있는데 전화를 끊은 팀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팀장에게 내일 일을 마무리하겠다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팀장의 다음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영수, 걔 입사 포기했다. 퇴근하고 바로 인사팀에 전화해서 그만두겠다고 했단다…. 아휴 요즘 애들은 왜 이러는지…. 조금 다녀보고 결정하지 왜 이러냐.”


나는 팀장이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서있었다. 이렇게 빨리 그만둔다고? 아무도 영수에게 뭐라고 안 했고 아무도 영수에게 시킨 것이 없는데, 도대체 왜? 야근을 많이 해서? 아니면 어디 좋은 곳이라도 붙었나? 나는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그저 지금 상황이 어이없었다. 그래서 헛웃음이 나왔다. 


팀장은 나에게 담배나 피우러 가자면서 내 어깨를 토닥였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온 부사수였는데…. 너무 쉽게 그가 다시 떠났다. 내 막내 생활은 아직 당분간, 어쩌면 올해 내내 계속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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