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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27. 2022

5월 27일 송혜원의 하루

전 직장과의 조우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분이 좋았을 때는 예전 회사를 때려치우던 날이었다. 반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분이 안 좋았을 때는 바로 그 전 직장과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었다. 그것도 예전 회사가 갑, 우리 회사가 을일 때 말이다. 


사건은 몇 달 전에 일어났다. 회사에 새로운 클라이언트가 생겼는데 어이없게도 내가 바로 직전에 다니던 회사였다. 전혀 업무가 겹칠 것 같은 영역도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전 직장이 나의 클라이언트가 된 것이었다. 더 화가 났던 것은 내가 담당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팀장한테 예전 직장과의 관계가 있는데 내가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냐며 따졌지만 팀장은 오히려 친하기 때문에 더 일을 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내 의견을 묵살했다. 너무 화가 났다. 아니, 어떻게 전 직장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라는 것이지?


물론 내가 전 직장과 표면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직을 하고 싶어서 회사를 떠난 것이었고 전 직장 동료들은 나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다. 나는 전 직장을 정말 싫어했고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상종도 하기 싫은 동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나는 다시 내 전 직장을 마주해야 했고 정말 보기 싫었던 그 사람과 웃으면서 대화를 해야 했다. 그 사람이 시키는 말도 안 되는 행동 앞에서도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했고 현재 회사에서는 내가 그들과 친하기 때문에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라 기대했다. 


“언니, 오늘 일은 정말 미안해요. 저도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정팀장님이 워낙…그런 거 아시잖아요.”


혜수는 내가 전 직장에 있을 때 마음의 문을 연 소중한 후배였다. 그녀와 나는 퇴근 후에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서 신나게 놀며 서로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퇴사 후에도 혜수와 가끔 만나서 전 직장 욕도 시원하게 하고 힘들 일이 있으면 서로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때론 친자매 같은 면도 있어서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를 혜시스터즈라고 불렀다. 


공교롭게도 전 직장의 담당자가 혜수였다. 혜수는 자신의 처지를 매우 난감해했다. 나는 그나마 혜수가 담당자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혜수가 무리한 요구 사항을 이야기해도 나는 어느 정도 이해하려고 했다. 혜수의 입을 빌려 나에게 지랄하는 옛 상사의 횡포에도 나는 최대한 인내하려고 했다. 절대 혜수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혜수는 하루의 일이 끝나고 나면 항상 나에게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혜수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일적으로 힘든 것은 맞았고 혜수와 나의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았다.


정팀장은 내가 전 직장에서 굉장히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모든 것이 가식적이고 거짓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밑의 직원들을 막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협업을 하고 있는 다른 회사 사람들한테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들들 볶았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내가 봐도 심할 정도였고 내가 정팀장을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그를 싫어했지만 회사에서는 성과도 잘 내고 다른 사람들을 컨트롤 잘하는 정팀장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 망할 정팀장이 이번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있었다. 첫 미팅 자리에서 정팀장은 내가 이 일을 맡아서 정말 좋다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정말 능글맞았고 역겨웠다. 그런 그가 총책임자로 있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화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혜수의 입을 빌려 끊임없이 나를 압박했고 나와 다른 직원들은 점점 지쳐갔다. 너무나도 힘든 일이 많았다. 


오랜 고생 끝에 오늘은 프로젝트가 끝나는 날이다. 정팀장이 신나게 갈궈서가 아니라 우리 회사가 너무 고생해서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되었다. 정팀장은 이 모든 게 자신의 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혜수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혜수는 나중에 술 한잔 하자고 답변을 보냈다. 이제 다시 혜수와의 관계가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정팀장의 말을 빌리기는 했지만 혜수의 태도에도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인간적으로 혜수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이번 일로 끝이 아니라 아무래도 앞으로도 일적으로 계속 만나야 하는 사이다 보니 내가 조금 혜수와 거리를 두고 있어야 했다. 서로 행복하게 일을 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오랜 고생 끝에 한 고비를 넘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에서는 나의 전 직장의 사옥을 볼 수 있다. 매일 그 회사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회사와의 악연은 원래부터 계속될 수밖에 없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 길을 지나가지 않게 이사를 가면 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이 망할 회사를 지나치며 가야 한다. 나는 회사 건물이 보이자 고개를 돌렸다.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더라도 굳이 보고 싶지는 않다. 또 하루가… 일주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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