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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09. 2022

6월 9일 조윤의 하루

돈 빌리기

“여보세요?”


“어… 나 윤이야. 오랜만이야.”


“어… 그러네. 윤아. 잘 지내지?”


“응… 아니 사실 그렇지는 못한데…”


“무슨 일이 있어? 말해봐.”


“나 돈 400만 빌려줄 수 있을까? 아니 이 금액은 아니더라도 조금만이라도….”


“…. 미안하다. 나도 돈 없어. 이런 걸로 전화하지는 마라. 나 끊을게.”


“앗.. 저….”


친구는 이미 전화를 끊은 다음이었다. 한숨을 쉬며 핸드폰 주소록을 살펴봤다. 이제 남은 친구가 얼마 없었다. 황… 황… 황현진. 그래 현진이. 현진이는 내 친한 친구였지. 얘도 정말 오랜만에 전화하는 건데.


나는 중학교 시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현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현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내 전화번호가 없을까 걱정되어서 현진이에게 내가 전화했음을 알리는 문자를 남겼다. 


나에게는 너무 큰 400만 원. 지금 그 돈이 없어서 나는 친구들에게,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락하고 있지만 나에게 흔쾌히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 돈이 없어서 죽을 것 같은데…. 그들은 내 연락을 받지 않거나 내 부탁을 거절했다. 그들의 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미웠다. 


그때, 현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 현진아. 오랜만이야.”


“준혁이한테 들었어. 너 돈 빌리려고 전화한 거지?”


나와 현진이, 준혁이는 중학교 시절 삼총사라 불릴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준혁이한테는 이미 전화를 했다가 돈이 없어 못 빌려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준혁이가 내 이야기를 현진이에게 한 것 같았다. 솔직히 준혁이한테 화가 났다. 걔가 뭔데 주변 사람들한테 내가 돈을 빌린다는 소리를 하는 건데?


“어… 준혁한테… 들었구나. 미안하다. 애들 사이에 괜한 소리가 돌고 있나 보네.”


“400? 그건 어디다 쓰려고?”


“아니.. 이번에 돈 나갈 곳이 있어서 그걸 급히 보내야 해서. 미안해. 이렇게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닌데.”


“너. 한 10년 만에 나한테 연락한 건가? 오랜만에 연락해서 고작 돈 빌려달라고 이러는 거야?”


현진이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아니 근데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


“그건 정말 미안해. 그러면 잠시 네가 있는 곳으로 가도 될까? 내가 자세히 이야기해줄게.”


“너 준혁이만 이런 이야기한 줄 알아? 진석이도 그런 이야기 하더라.”


진석이는 내 고등학교 친구였다. 현진이와 나는 다른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우연히 내가 노는 자리에 진석이가 끼면서 현진이와 진석이는 친해졌다. 그리고 그 진석이는…..


“진석이한테 2달 전인가 300만 원 빌렸다던데? 그렇게 큰돈을 몇 달 사이에 계속 빌리고 다니는 거야?”


“진석이가 그런 말도 해? 그럼 내가 바로 갚았다는 이야기도 들은 거지?”


나는 나를 쏘아붙이는 화가 나서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임을 잊고 현진이에게 조금 언성을 높였다.


‘너 무슨 사업한다면서? 그것 때문에 그런 거지?  일단 아무리 친한 친구여 도 나는 돈을 안 빌려줘. 그런데 이렇게 오랜만에 연락해서 대뜸 돈 빌려달라고 하면 내가 좋게 보이겠어?”


“아니 그건 정말 미안한데. 그래, 내가 능력이 없어서 빚이 좀 있어. 이번 달에 나갈 돈이 정말 있고 그래. 내가 친구들한테 손을 벌리는 것은 정말 미안한데. 내가 얼마나 힘들면 이런 말 하겠어. 진짜 미안한데 400만 원 빌려줄 수 있어? 만약 어려우면 말해. 나는 정말 괜찮아. 내가 어떻게든 마련할 거야. 만약 빌려주면 내가 어떻게든 갚을 거고.”


“…. 돈 없어. 윤아. 400만원이라는거 굉장히 큰 돈이잖아”


“그래, 알았다. 정말 미안하다. 이런 부탁해서.”


“나랑 연락하는 건 오랜만이지만 애들 사이에서 너 소문 안 좋게 돌더라. 진석이 말고도 다른 애들한테도 돈 빌리고 갚기는 하는데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연락한다고 말이야. 너 사업.. 제대로 하는 거 맞아? 이상한 거 하는 거 아니지?”


“미안… 나 더 이상은 너랑 이야기 못 하겠다. 진짜 오랜만에 연락해서 미안한데. 너한테 이런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로 내가…. 아니다. 그래 내 업보겠지. 미안해. 너무 큰 돈을 빌리려고 하는 내가 정말....미안하다. 나 먼저 끊을게. 나중에 진짜 나중에 밥이나 먹자. 잘 있어라.”


나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눈물이 나왔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애들한테 이런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까. 아니 나는 왜 애들한테 항상 돈을 빌리며 살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년 전까지만 해도 남부럽지 않게 살던 나였는데…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친구들에 대한 원망과 지금 처지에 대한 서글픔, 그리고 내가 잘못 산 것 같은 후회가 밀려왔다. 마음을 진정하기가 어려웠다. 무너진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다. 400만 원…. 아니, 내가 그저 잘못 살았을 뿐이다. 돈 때문에 친구를 잃는다는 것이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이제 내 주위에 남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때 메시지가 하나 왔다.


현진이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단순한 내용이 아니었다. 50만 원을 나에게 송금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놀라서 현진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현진이의 메시지가 또 도착했다.


“내 말 때문에 상처받았다면 미안해 50만 원 보낸다. 나도 넉넉하지는 못해. 이 돈은 갚지 마. 그리고 당분간은 연락하지 마라. 정말 나중에, 수십 년 후에 돈에 대해서 조금 자유로워졌을 때, 술이나 한잔 하자. 그때까지 잘 지내라.”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를 위해 돈을 보내준 현진이에게 대한 고마움과 이렇게 좋은 친구를 결국 잃게 되었다는 슬픔 때문이었다. 미안하다 친구야. 정말 미안해. 다들….


나는 현진이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창밖을 바라봤다. 수많은 건물 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빛이 보인다. 그중에는 꺼진 건물도 보인다. 나도 수없이 빛나던 존재 중 하나였는데 내 빛은 서서히 꺼지고 있는 것 같다. 욕을 먹어가며 현진이에게 돈을 받았지만 나머지 돈은 이제 어디에서 구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다 나의 업보다. 삶을 어디서부터 다시 바로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고민 속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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