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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13. 2022

8월 13일 정선명의 하루

아버지와 닮아간다

아버지의 취미는 어느 순간부터 내 취미가 되었다.


어느새 내 나이는 40대 중반을 훌쩍 넘었다. 어린 시절에는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들처럼 담배도 펴고 술도 마시고 마음껏 놀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니 신나는 것은 없었고 힘든 일만 많아졌다. 그리고 어릴 때는 그렇게 가지 않던 시간이 어른이 되고 나니 쏜살같이 흘러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서른이 되었고 평범하게 출퇴근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오 년이 지나 45살이 되었다. 이제는 노인이 되는 것이 두려워지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점점 아버지와 닮아갔다. 어린 시절 내가 보던 아버지의 모습과 지금 내 모습은 꼭 닮아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내 기억 속의 할아버지와, 내 아들은 내 어린 시절과 똑같은 모습이 되었다. 4대에 걸친 유전자의 힘을 체감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항상 화가 많았고 내가 조금만 잘못해도 나를 크게 혼내셨다. 아버지와 어딘가를 놀러 간 기억은 없었다. 아버지는 항상 바빴고 여행을 가도 어머니와 나, 그리고 동생만 갈 수 있었다. 우리의 추억 속에 아버지가 함께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아니, 아예 없었다.

아버지도 쉬는 날은 있었다. 하지만 쉬는 날에도 우리와 함께 있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취미는 등산이었는데 매주 주말만 되면 아침 일찍 등산을 하러 갔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술에 취해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는 내 방에 들어와서 무언가를 툭 던져놓고 가셨다. 무엇인가 하고 확인해 보니 만년필이었다. 나름 내 졸업 선물이라고 나에게 사주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도 우리 부자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졸업을 축하한다’라는 말이라도 듣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없었다.

대학교는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게 되었다. 통학을 위해 자취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나는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자취를 하게 되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공존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니 모든 것이 익숙해졌고 나는 나만의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나는 30살이 되었다. 항상 건강하시던 아버지는 어느새 무기력한 노인이 되어있었다. 아버지는 건강을 위해 여전히 등산을 하시고 계셨지만 이제는 예전만큼 자주 가지 못하셨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많이 없어졌기에 나는 아버지에게 등산을 가는 것을 제안했다.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자신이 산을 굉장히 잘 타는데 나처럼 체력이 안 좋은 아이가 잘 따라올 수 있겠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말없이 아버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와 등산을 하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지금 만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등 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셨다. 아버지와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부축하면서 아버지가 궁금해하시는 수많은 것들에 대한 대답을 해드렸다. 아버지와의 사이가 한 번에 모두 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날 산행으로 우리 부자는 아주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는 아버지와는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빨리 퇴근해서 아이와 놀아주려고 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나는 왜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나를 그렇게 대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크면서 나도 회사의 중책을 맡게 되면서 점차 야근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와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졌다. 퇴근을 해도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그렇게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우리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고민이 점점 많아지자 나는 아버지와 만나는 시간을 늘렸다. 아버지와는 주로 등산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는 내 고민을 듣더니 자신이 젊은 시절 했던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신기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처럼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아이에게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라고 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조금 놀랐다.  

그날 이후 아이에게 잘해주려고 했지만 항상 부족했다. 아이는 나보다 아내와 더 친했고 나는 아이의 부족함을 내가 채워줄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의 건강은 점점 안 좋아져 이제는 함께 등산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항상 병원에 계셨는데 이제는 아버지가 그런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몇 년 더 버티셨다. 그리고 내 나이 44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와 내가 제대로 화해했는지, 내가 아버지를 제대로 용서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버지가 내 생각보다는 더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버지와 더 함께 잘 지내지 못했다는 것이 후회가 되었다.

45살. 내 취미는 어느새 등산이 되었다. 생각이 깊어질 때, 나는 등산을 가곤 한다. 아버지가 수십 년 전 걸어왔던 그런 길을 이제는 내가 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와 닮아갔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닮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와의 관계는 내 아버지와 나의 관계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다행히 아이는 나와 그리 나쁘지 않은 관계가 되었다. 아이가 사춘기이기에 항상 툴툴거리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우리 관계는 괜찮은 것 같았다.

아주 먼 훗날, 아이에게 내가 어떤 아빠였는지 묻고 싶다.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아빠였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어린 시절의 나처럼 아이가 나를 원망하고 있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절대 아이에게 나를 닮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내 아버지처럼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45살이 되어서야 나는 아버지를 이해했고, 아버지와 나는 거의 동일한 삶을 살게 되었다. 아버지가 걸었던 산을 나 역시도 걸으며 나는 그의 발자취를 느끼고 있었다. 조금은 다른 방향을 선택하려고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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