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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12. 2022

8월 12일 고현준의 하루

엉망진창

“요새 무슨 일 있으세요?”


며칠 동안 동료들한테 자주 듣는 말이다. 얼핏 보기에는 나를 걱정하는 말 같지만 실제로는 요새 내가 일을 엉망으로 하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만큼 요새 내가 하는 일은 엉망진창이다. 

최근 며칠 동안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일에 대한 의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집안일이나 다른 일이 생겨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요새 하는 일마다 결과가 좋지 않다. 상사나 남이 했던 말도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실수가 잦아졌다. 혼나지 않는 날이 없었고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원래 일을 못 하는 직원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연봉협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했었다. 동료들은 나와 일하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그들과 일하면서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랬던 내가 일을 갑자기 못 하고 있으니 나도 미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컨디션 난조 정도라고 봤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매일매일 최악의 모습을 경신했다. 너무 일이 안 되어서 회사 옥상에서 멍 때리고 있던 적도 있었다.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직 할 일이 남았어도 칼퇴를 한적도 있었다. 오랫동안 잠을 자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은 모든 것이 최악이었다. 

나와 친한 동료들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긴 했지만 몇몇은 내가 일을 못 하는 것에 대놓고 짜증을 냈다. 내 뒤에서 쑥덕쑥덕 거리는 동료들도 많아졌다. 나도 눈치가 있어서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하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신경 쓰여서 나는 일에 실수가 더 많아졌다. 더 잘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직장인에게 슬럼프라는 것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 심각하게 영향을 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일을 제대로 못 할 정도라니….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이직을 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도피까지 생각해봤다. 새로운 곳을 가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모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직까지 했는데도 일을 못 한다면? 그것은 정말 최악이었다. 

이직은 근원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지금 당장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해결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해결 방안이라는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매일매일 정신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매일매일 결과는 같았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사는 나보고 왜 이리 정신을 못 차리고 있냐며 크게 꾸짖었다. 내가 하던 프로젝트마저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굉장히 적어졌고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시간이 남기 시작했다. 이제 방법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단 한 가지의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직. 그것이 옳은 답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큰 변화를 주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에라도 모든 것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야 한다. 내 마음을 긍정적으로 하는 것 따위는 지금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이직이라는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나는 그 행동을 해야만 한다. 그래, 결국엔 이 방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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