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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10. 2022

8월 10일 심도훈의 하루

텃세

[요청주셨던거요. 자료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메시지를 보낸 지 20분이 되었지만 답변은 오지 않는다. 아니, 일을 시켜놓고 전달해준다는 자료를 안 보여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승환님. 많이 바쁘시죠? 요청 주신 것 오늘 안에 할 수 있는데 참고할 자료가 필요합니다 ㅠ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나 자리를 비운 것인가 해서 승환의 자리를 확인했다. 얼씨구. 옆자리에 앉은 여직원이랑 시시덕거리고 있네. 욕밖에 안 나온다. 가서 따질까 했지만 그럴 기운도 없어 그냥 두기로 했다.  


10분 정도 지나자 그제야 답변이 왔다.


[아 미안해요 도현님. 그거 예전에 드린 것에 있어요!]


뭐가 예전에 준 것에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내 이름은 도현이 아니라 도훈이다. 도현은 대체 누구야. 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승환님. 잠시 이야기 가능하실까요?]


또 내 연락은 씹고 30분은 기다려야겠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그에게서 답변이 바로 왔다.


[아… 곧 회의가 있어서요! 그냥 요청드린것처럼만 해주시면 됩니다.]


와…. 진짜 미쳤나 봐. 내 상사도 아니고 같은 직급이면서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냐. 진짜 회사 다 뒤집고 싶다.


“저… 팀장님. 승환 팀장님이 요청하신 것 이 자료가 맞을까요?”


내 옆자리에 있는 시욱이 나한테 링크를 하나 메시지로 던졌다. 확인해 보니 승환이 오전에 요청한 업무 내용과 관련한 자료였다. 


“오…. 시욱님. 땡큐, 땡큐. 고마워요.”


“궁금한 것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예전 팀장님 있을 때도 했던 것이라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시욱님.”


나는 시욱이 전달해준 자료를 보며 오늘 아침 승환이 나에게 요청한 업무 내용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별거 아닌 일이었다. 어려울 것도 없었고. 다만 어려운 것은 승환이라는 사람이었다. 


내가 현재 회사로 이직한 것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지난번에 있던 회사에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과감하게 이직을 시도한 것이었는데 한 번에 붙은 것이 지금 회사였다. 비전도 있었고 내가 평소에 하던 일과도 맞았다. 무엇보다 내 커리어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회사였다. 그렇게 지금 회사로 오게 되고 업무적으로는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승환과의 관계가 그러하였다. 


승환은 회사에서 실세 같은 존재였다. 회사 매출의 50% 이상을 승환의 부서에서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승환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만큼 승환의 부서는 힘이 강했다. 회사에서는 승환과 가급적이면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았다. 그의 눈 밖에 나면 임원들의 눈 밖에 나는 것보다 더 큰 화가 찾아왔다. 이런 것들은 내가 입사하자마자 친해진 다른 부서 팀장이 나에게 전해준 정보였다. 

나는 승환이 뭐 대단한 사람인가 싶어서 별로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매출을 책임지고 있어도 나 역시 같은 팀장급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승환은 나의 불친절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우선 승환은 나에게 텃세를 부렸다. 오늘처럼 업무 내용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 일은 다반사였고 은근히 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어쩔 때는 대놓고 면박을 줄 때가 있었는데 어찌나 심한지 내가 모욕감을 느끼기는커녕 민망할 정도였다.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 팀의 실적이 우선이었으며 이를 위해서 상대방의 업무를 빼앗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팀에게 협조를 요청할 때는 허드렛일을 시킬 때뿐이었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와 우리 팀에게 승환이 한 일을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그러는 사이에 내 정신도 피폐해져 갔다. 자신감도 많이 사라지고…. 욕만 늘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있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오직 승환과의 관계 때문에 회사 생활이 힘들었다. 이직한 지 한 달 만에 그만두는 상상도 했지만 그러기엔 지금 회사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가는 길에 승환을 마주쳤다. 나는 어색하게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인사야 오늘 진작에 했지만 어색해서 나온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승환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별 대꾸가 없었다. 가만 보면 승환은 회사 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못 하는 것 같다. 그 짧은 순간 표정을 그는 전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 손을 씻으려고 하는데 내 앞에서 승환이 오랫동안 손을 씻었다. 세면대는 하나뿐이기에 나는 그의 차례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내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괜히 그가 더 오랫동안 손을 씻고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손을 다 씻고 나가려는 승환에게 나는 한마디를 던졌다.


“승환님. 오늘 점심 같이 드실래요?”


내 제안을 듣자마자 승환은 나를 계속 쳐다봤다. 내가 갑자기 밥을 먹자고 할지는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아…. 네. 그러실까요?”


승환은 말을 하자마자 화장실에서 나갔다. 나는 그가 나간 방향을 바라보고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씻었다. 

승환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밥을 먹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상황으로 항상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그와 동맹을 맺고 싶은 마음에 밥을 먹자고 제안한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그와 가깝게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승환의 비위를 모두 맞춰줄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그와 적대 관계만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가 내 앞 길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이 된다면 나 역시 그리 쉽게 당하고만은 있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야, 곽승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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