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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11. 2022

8월 11일 정순현의 하루

새벽

원래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새벽에 깨는 경우가 많아졌다. 요새는 새벽 5시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예전 같으면 이 시간에 깨면 다시 잠을 잤었는데 이제는 그냥 일어난다. 새벽이 주는 묘한 분위기에 어느 순간부터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새벽 5시. 새벽의 풍경은 미묘하다. 아직은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이지만 먼저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는 시간이다. 창문 밖에서 들리는 청소차 소리, 무엇이 바쁜지 쌩쌩 달리는 자동차 소리, 미묘하게 울리는 새들의 소리 등 이 시간 특유의 느낌이 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먼저 일어나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침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매일 새벽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렇게 하루를 먼저 시작한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서 새벽부터 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의 사연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저 사람은 출근을 지금 하는 것일까? 출근을 지금 한다면 새벽 5시부터 달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오히려 지금 퇴근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야간 근무를 하고 집에 빨리 가서 자고 싶어서 속도를 높이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단순히 속도를 즐기고 싶은 사람인 게 아닐까?

거리를 걷고 있는 저 남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술에 취해서 지금 집에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새벽부터 일거리를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아닐까? 그저 새벽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닐까? 

이런 식으로 상상을 하는 것이다. 새벽과 사람이라는 주제이기 때문에 생각의 범위가 굉장히 좁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잠에서 이제 깬 뇌를 다시 활동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실 내 관심은 단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아직 오픈하지 않은 가게의 간판에도 눈길이 갈 때가 있다. 

집 건너편에 있는 중고폰 가게는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 신용불량자도 개통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불법은 아닐까? 아니면 무언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할 수 있도 신용불량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런 서비스가 있는 것인데 나 혼자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은 흔한 이름은 선녀보살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분명 점을 보러 오는 곳은 틀림없는데 정말 신통한 것일까? 집 근처에 있으니 나도 한번 가볼까? 갔는데 나한테 안 좋은 일이 있다고 하면 어쩌지?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무언가가 내 뒤에 있다고 한다면 그대로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나와도 되는 것일까? 

창 밖과는 다르게 집 안은 고요하기만 하다. 아니지, 자세히 들어보면 소리는 분명히 있다. 냉장고의 소리 말이다. 일정한 음이 들리지만 자세히 들으면 기괴한 음악과도 같다. 정말 집중해서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소리다. 만약 나를 어딘가에 가둬두고 이어폰으로 저 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있으라 그러면 나는 미쳐버릴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평소에 저 소리가 신경 쓰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익숙한 소음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저 안에는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식량이 보관되어 있으니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물체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소음의 불쾌함보다 더 큰 것이 아닐까?

새벽이라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깬 상태는 아니라 생각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바뀐다. 

새벽은 모순의 시간이다. 아직 잠을 자거나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아직 아침도 밤도 아닌 순간이다. 밤의 주도권이 강한 때도 있고 아침의 주도권이 앞서는 때도 있다. 현재 나도 그렇다. 잠에서 깬 것도 깨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국 새벽을 둘러싼 싸움에서 아침이 이기든 나는 결국 완전히 깨어나게 된다. 몸은 가벼워지고 생각은 정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밖이 아니라 안을 살필 때다. 씻거나 아침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해야 한다. 이제야 생각이 또렷해진다. 

이렇게 하면서 아침을 조금은 더 여유롭게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아침에 출근하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후 아침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 고독과 시끄러움,  밤과 아침의 미묘한 경계, 그리고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나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앞으로도 포기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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