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Aug 09. 2022

8월 9일 석우재의 하루

폭우 

“[전사공지] 어제부터 계속된 서울 지역의 폭우로 인해 오늘 전사 재택근무를 진행합니다. 만약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군은 오늘 하루 휴가를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안내드리니 반드시 확인 부탁드립니다. “


밤새 끝나지 않는 폭우 소리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을 때, 회사에서 전사 공지 안내 문자가 왔다. 어제부터 뭔가 불안하더니 결국 재택근무 공지가 내려왔다. 그나저나 재택이 안 되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휴가를 쓰라니…. 이러면 그냥 출근한다고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 같다. 


밖을 보니 재난 영화가 따로 없다. 어제부터 내린 비는 밤 사이에도 그칠 기세를 모르더니 지금까지도 내리고 있다. 지금 상황 앞에는 ‘하늘에 구멍이 난 것 같다’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지금은 하늘이 없는 것 같다. 원래 비가 이렇게 미친 듯이 내리는 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미친 듯이 비가 내릴 리가 없다. 


아침부터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다들 높은 곳에 살아서 피해는 없었다. 부모님은 원래 집에 계셨으니 문제는 없었고 부모님과 같이 사는 동생도 오늘 재택이라서 밖에 나갈 일이 없다고 했다, 


간단하게 세수만 하고 노트북을 꺼내 회사일을 볼 준비를 마쳤다. 다행히 내 직무는 어디에서나 서버에 접속해서 일을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재택근무는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회사 근처에 사는 내 동료는 업무 특성상 재택이 불가능했는데 온갖 욕을 다 하면서 회사에 출근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굉장히 짧은 거리였는데도 물에 다 젖어서 이럴 거면 그냥 수영복 입고 출근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며 짜증을 냈다. 


나도 그의 말에 백번 공감했다. 어제 하마터면 정말 집에 못 갈 뻔했다. 오랜만에 정시 퇴근이라는 꿈에 부풀었었는데 미친 듯이 오는 비를 보고 결국 강제 야근을 했다. 야근이 행복하기는 처음이었다. 곳곳이 침수되어서 집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집에 절대 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잘 생각까지 했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 말고도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는 직원들이 많았는데 다들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편하게 잘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도 회사에서 자는 것을 충분히 고려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회사 밖으로 나갔다.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의 상태였다. 지옥도 이곳보다는 더 나은 곳일 것이 틀림없었다. 우산을 썼지만 절대 아무것도 막아줄 수 없었다. 게다가 물을 해 집고 걸어가야 했기에 우산은 사치였다. 나는 우산으로 내 머리 통만 막으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원래는 회사에서 지하철까지 5분 거리였지만 어제는 약 30분 만에 겨우 지하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것도 내가 보기엔 빨리 간 것 같았다. 지하철 안은 무슨 대피소 같았다. 비에 젖고 옷이 지저분해진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뉴스를 확인하니 시에서 지하철을 연장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는 루트는 아니지만 어딘가에서는 지하철이 침수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정말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랐다. 


지하철을 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회사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회사 근처가 모두 정전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내가 있는 지하철 역사는 정전이 아니었지만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나는 동료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나도 안심할 상태는 아니었다. 얼마든지 나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겨우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갔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제발 무사히 집에 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지하철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갔지만 그래도 버틸만했다. 


집 근처 역에 도착하고 나는 다시 심호흡을 했다. 이제 밖으로 나가 집까지 가야 하는 미션이 생겼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 회사 근처보다는 침수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물리적인 비의 양이 많다 보니 발은 잠길 정도였다. 나는 아주 천천히, 집까지 걸어갔다. 우산은 이미 망가질 때로 망가져있었고 옷은 내 살과 하나가 될 정도로 붙어있었다. 지하철에서 집까지는 10분 거리였지만 거의 25분 만에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제 일을 떠올리니 오늘 집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감사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이 날씨와 이 상황에 밖으로 나가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나는 회사의 아주 작은 배려와 휴가를 써도 되지 않아도 되는 내 직무와 내가 큰 피해를 얻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미칠 듯이 쏟아지는 폭우를 ASMR 삼아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남았지만 그래도 이번 일로 인해 피해를 얻은 이웃들은…. 에휴. 참 씁쓸한 일이다. 

이전 11화 8월 8일 강윤우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