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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07. 2022

8월 7일 김상일의 하루

게임기

상일은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굉장히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게임기도 가지고 있어서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친구들은 상일의 집에 놀러 오기를 원했고 상일은 그런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상일은 책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매달 서점에 가는 날이 있었다. 바로 게임 잡지가 발간되는 날이었다. 상일이 어렸을 때는 잡지에 따로 비닐을 씌워두지 않아서 누구나 원하면 잡지를 서점에서 보는 것이 가능했다. 상일은 게임 잡지를 훑어보면서 이번 달에 발매되는 게임이 무엇이 있는지 확인했다. 상일은 너무 오랫동안 서점에서 잡지를 보고 있을 때가 있어서 서점 주인에게 혼난 적도 있었다. 

상일의 어린 시절 아지트는 게임을 판매하는 가게였다. 고가의 게임이라 아무리 상일이라도 항상 게임을 살 수는 없었지만 상일은 심심하면 집 근처의 게임 가게에 놀러 가곤 했다. 가게에서 일하는 알바생은 상일과 친해져서 주인 몰래 게임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게임을 좋아하던 상일이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나서는 게임을 할 수가 없었다. 상일의 부모님 역시 자식이 게임만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야 게임을 할 수도 있는 어린아이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이 되었기 때문에 자식이 게임을 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일은 중학생이 되면서 바뀐 상황이 적응되지 않았다. 몰래 게임을 하다가 혼난 적도 있었고 화가 난 아버지가 게임기를 부수기도 했었다. 하지만 상일은 굴하지 않았다. 게임기를 가지고 있는 다른 친구 집에 가서 게임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부모님끼리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기 때문에 친구네 집에서도 게임기가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그렇게 상일의 작은 반란은 가볍게 진압되었다.

상일은 서점에 가서 게임 잡지를 보는 것과 게임 가게에 가는 것으로 게임에 대한 욕구를 겨우 채웠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정말 공부 때문에 바빠서 게임을 생각할 시간마저 없어졌고 상일은 자연스럽게 게임과 멀어지게 되었다. 

상일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더 이상 게임 가지고 상일에게 터치하지 않았다. 상일은 오랜만에 게임 가게를 찾았지만 가게는 이미 없어진 다음이었다. 상일은 게임기를 새로 사는 것에 대해 고민했지만 사지는 않았다. 대학생이 되니 게임 말고 할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상일은 그런 것에 돈을 쓰는 것보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이성과 데이트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렇다고 상일이 게임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상일은 친구들과 PC방에 와서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지만 예전만큼 게임을 즐겨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게임은 그저 잠깐의 유흥거리에 불과했다. 

시간이 흘러 상일은 30대가 되었다. 상일은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자취방을 구했다. 30년 가까이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상일은 처음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신이 난 상일은 자신만의 집을 꾸미는 일에 몰두했다. 상일의 취향에 맞게 가구 배치를 하고, 상일이 좋아하는 술만 넣은 냉장고도 구매했다. 상일은 또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게임기를 사기로 했다. 

상일은 최신 게임기를 사기 위해 노력했지만 예약 판매만 시작하면 1분도 안 되어서 품절이 되는 탓에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상일은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오기가 생겨서 그 후 몇 번 더 게임기를 사기 위해 노력했다. 몇 달의 시도 끝에 상일은 꿈에 그리던 게임기를 구매했다. 그리고 게임 방송을 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참고해서 상일의 취향에 맞는 게임도 몇 개 주문했다. 상일은 자신이 게임을 원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게임기를 산지 몇 달이 지났지만 상일은 게임기를 거의 켜지 않았다. 상일은 퇴근을 하고 나면 게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게임기를 켜는 것보다 그냥 누워서 핸드폰 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다. 누워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좋았다. 상일이 힘들게 구한 게임기에는 점차 먼지가 쌓였다. 

오늘 상일은 오랜만에 게임기를 켰다. 상일은 몇 달째 진척이 안 되는 게임 하나를 플레이했다. 그래픽은 훌륭했고 게임성도 좋았다. 하지만 상일은 어쩐지 게임에 손이 가지를 않았다. 재미는 분명히 있었지만 조금 플레이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상일은 도통 게임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상일은 딱 30분만 게임을 했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상일은 이제 게임기가 없어도 된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 중고로 파는 것까지 고려했다. 상일은 중고 장터 서비스에서 자신의 게임기를 팔았을 때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확인해 봤다. 정가에 비하면 확 떨어진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는 됐다. 상일은 게임기를 팔고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해봤다. 꽤 많은 일을 하고도 남을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상일은 게임기를 팔지 않기로 했다. 있으면 안 하지만 막상 팔면 또 아쉬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상일에게 게임은 어린 시절의 전부였고 학창 시절에는 빼앗긴 것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이제 예전처럼 절실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 되었다. 상일은 게임기를 그냥 관상용으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상일은 언젠가 자신이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자식과 함께 게임을 하는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게임이 즐겁지 않으니 언젠가는 자신도 자식이 게임을 하는 것이 못마땅해 보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상일은 슬퍼졌다. 

상일은 어린 시절 게임을 즐겁게 하던 그때가 무척 그리워졌다. 하루 종일 게임을 해도 지치지 않고 하루 종일 같이 놀 친구가 있고, 하루 종일 새로운 것들이 가득하던 그 어린 시절이 상일은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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