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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06. 2022

8월 6일 황진선의 하루

첫 이별의 날

집에 들어온 지 1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옷도 벗지 않고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었다. 머릿속에는 다양한 감정이 생겨났지만 금세 사라졌다. 내가 지금 어떠한 감정 상태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슬프다.


지금 내 상황이라면 슬픔이라는 감정이 가장 잘 어울리겠지만 정말 지금 내가 슬픈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아프다.


이 감정 역시 지금 내 기분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립다.


지금 이게 사실 꿈이라서 내일이면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직 그를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화난다.


이 감정이 상식적으로 맞겠지만 정확히 이 감정은 아닌 것 같다.


모르겠다.


나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지금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온전히 나 혼자서 감내해야만 한다. 눈물을 나와야 할 것 같은 타이밍인데 나오지도 않는다.



오늘 나는 그와 헤어졌다. 22살, 또래보다는 늦은 나이에 시작한 첫 연애. 그 연애의 끝은 알 수 없는 타이밍에 찾아왔다. 그가 나에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온 것처럼.


연애라는 것을 해보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는 내가 좋다며 나에게 잘해줬다. 결국 나는 그의 마음을 받아줬고 그를 통해 나는 새로운 감정들을 배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 설렘이라는 감정, 사랑하는 사람을 안았을 때의 감정, 사랑하는 사람과 다툼을 했을 때의 감정 등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내 성격 탓에 나는 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방법을 잘 몰랐지만 그는 나를 천천히 리드하며 내가 그가 내 마음의 중심에 들어올 수 있게 노력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믿을만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의 연애는 1년 동안 이어졌다. 내 나이 22살. 그의 나이 26살. 우리가 결혼하기에는 굉장히 이른 시기였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그와 결혼하는 상상을 했었다. 그 사람이라면 내 평생을 바쳐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젋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그와 만나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는 나와 만나는 것보다 친구와의 만남을 더 우선시했고 약속이 없는 날에는 취업 준비를 핑계로 나와 만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와의 만남에 집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면서 그의 관심을 되돌리려고 노력했었다. 처음에는 그도 그런 나의 노력에 고마워했지만 언젠가부터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그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그가 바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내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단지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우리 사이가 소원해진 후 3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가 지금 어떤 카페에서 모르는 여자와 함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친구는 나에게 사진까지 보냈다. 가슴이 철렁했다. 둘의 사이는 단순한 지인이나 친구 사이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다정해 보이기도 했다.


순간 눈물이 나왔다.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라 화를 내야 하는 때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친구가 보낸 사진과 함께 이를 따지는 메시지를 그에게 쏟아냈다. 그가 내 메시지를 읽었다는 흔적은 있었지만 그는 나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그 사이 나도 마음을 정했다. 그와 헤어지는 것이 맞다. 어쩌면 내가 먼저 차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지금처럼 어정쩡하게 끝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처음 데이트했던 카페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는 내 모습을 단장했다. 최대한 예쁜 모습으로 가고 싶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가기 전,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의 답변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나는 깊게 한숨을 쉬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혹시나 했지만 카페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나는 커피를 시키고 그를 기다렸다.


1시간…


2시간…


3시간…



그는 오지 않았다. 이렇게 비겁한 사람을 좋아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잘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그를 차단했다. 내 인생에서 그를 다시는 만나기 싫었다.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바로 그였다.


그의 표정은 무엇이었을까?

미안한 표정이었을까?

당당한 표정이었을까?

귀찮은 표정이었을까?

다시 나와 시작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을까?

이제 와서 후회하는 표정이었을까?

그냥 나를 경멸하는 표정이었을까?


모르겠다. 나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내 앞에 물이 있었으면 그대로 그에게 끼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금 커피를 다 마셔서 뿌릴 것도 없었다. 나는 그의 눈빛을 마주치지도 않고 그대로 가방을 들고 그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말했다.


“꺼져, 이 나쁜 새끼야”


수없이 많은 대사를 연습했지만 제일 별로이면서 어설픈 방식으로 그에게 이야기했다.

순간 부끄러웠지만 후회할 시간도 없었다. 그의 대꾸조차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카페 밖으로 나왔다.


그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내 인생을 찬란하게 만들 줄 알았던 그는 내 인생을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그동안의 일을 떠올리니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릴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그저 내 감정이 궁금했다. 화가 나는지, 슬픈지, 아픈지, 그가 아직 그리운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방에는 그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가 사준 선물과 편지, 그리고 우리들의 사진이 있었다. 지금 당장 저것들을 치워야 하는 것은 알았지만 움직일 힘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주 천천히 그의 마음을 받아들여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 것처럼 이별이라는 감정은 아주 천천히 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리고 그 충격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첫 이별의 밤은 그렇게 나에게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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