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Aug 04. 2022

8월 4일 임진오의 하루

눈치

유난히 내향적인 진오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마디라도 들으면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걱정하느라 다른 일에 신경을 못 쓸 정도였다. 그런 과정에서 또다시 실수가 반복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 혼나는 것이 진오의 일상이었다. 

그렇다고 진오가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본인이 충분한 자신감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진오는 남들과 일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들으면 그때부터 멘탈이 굉장히 흔들렸다. 결국 진오는 남의 눈치를 굉장히 많이 살피는 사람이 되었다. 진오는 절대 먼저 주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 동조하는 식으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으면 이를 먼저 눈치채고 그의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 덕분에 그는 살아남는 법도 터득하였다. 진오는 의도치 않았지만 사내 정치에서 좋은 끈을 찾아 회사 생활을 가늘고 길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진오의 연차는 점점 높아져갔다. 결국 진오는 자연스럽게 승진을 하게 되었다.

그가 이른바 리더 그룹에 속하게 되자 진오의 성격은 아랫사람들의 불만이 되었다. 일을 잘 하기는 하지만 남의 눈치를 보고, 남들이 뭐라 하면 호들갑을 떨며 의기소침해지는 진오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아랫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진오는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는 탓에 자신에게 손해가 갈 일은 전혀 하지 않으려고 했다. 또한 일에 대한 책임 의식도 없었기 때문에 일을 잘 못 되었을 때의 탓은 온전히 아랫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진오의 아랫사람들은 점차 진오를 신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오가 회사에서 가진 기반은 꽤나 탄탄했다. 윗사람들은 실수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기분을 잘 맞춰주는 진오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진오의 실수를 감싸주려고 했다. 다만 책임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될 뿐이었다. 그리고 진오는 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명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진오가 더 높은 지위에 오르면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진오는 자신이 눈치를 잘 보니 아랫사람들도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단지 머릿속의 생각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다녔다. 진오의 부하직원들은 그런 진호가 피곤했다. 

진오는 오늘 보고 자료를 작성할 때도 부장이 요구한 것 이상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보고 자료를 부하 직원들에게 요구했다, 부하 직원들은 간단한 보고라서 그렇게 까지 할 것은 없다고 했지만 진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보고의 효율성보다는 부장의 마음에 드냐 안 드냐가 더 중요했다. 부장은 고지식한 사람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보고 자료가 완벽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진오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부하 직원들은 그것 때문에 자신들의 원래 업무를 하지 못 하는 지경이 되었다. 또한 부장이 시킨 업무는 진오 선에서 알아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것이었다. 부하 직원들은 진오의 이런 태도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오후가 되어서야 보고 자료가 진오가 원하는 형태로 나오게 되었고 진오는 부장에게 보고하러 갔다. 보고 자료는 만드는 데는 하루가 걸렸지만 보고는 고작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부장은 진오의 보고 내용에 그리 큰 관심이 있지 않았다. 애초에 부장은 지나가는 말로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조사를 시킨 것이었기에 보고 내용이 어떻든 그의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부장은 보고 자료를 슬쩍 보더니 조사하느라 고생했다는 말만 했다. 후속 조치에 대한 부장의 명령은 없었다. 그렇게 진오가 보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부하 직원들은 일이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진오는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진오는 부장에게 보고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고 있었다. 

부하 직원들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야근을 해야 했다. 한참 야근을 하고 있는데 진오는 부하 직원들에게 왜 아직 퇴근을 안 하냐고 물었다. 다들 그런 진오의 태도에 어이없어했다. 어떤 사람은 진오가 상사 눈치는 그렇게 보면서 자신들에게 욕을 먹는 것은 신경이 안 쓰이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진오는 오늘 야근을 했다. 부하 직원들이 퇴근을 하지 못 해 자신이 솔선수범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부장이 퇴근을 하고 있지 않아서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진오는 오늘 따로 할 일이 있던 것은 아니라서 야근할 이유는 없었다. 진오는 컴퓨터로 일하는 척하며 한 손에는 핸드폰으로 인터넷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야근을 하던 진오는 부장이 퇴근하고 5분이 지난 후에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다른 직원들은 여전히 야근하고 있었지만 진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일찍 퇴근하세요”라는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는 말만 할 뿐이었다. 

퇴근을 하려고 나가던 진오는 아까 퇴근한 부장이 여전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보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부장과 지금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자신이 바로 퇴근하는 것을 들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진오는 다시 의미 없이 10분 정도 의자에 앉아있다가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부장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그가 완전히 회사 건물을 떠났다는 것을 확인하고 퇴근을 마무리하였다. 그렇게 상사의 눈치만 보며 진오는 회사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그럴 것이다.  

이전 06화 8월 3일 고승우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