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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14. 2022

8월 14일 송하승의 하루

이발

하승은 매일매일 정해진 데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절대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닥쳐서 그의 스케줄을 변경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하루는 매일 아침 6시 10분에 시작된다. 이는 하승이 지난 10여 년 간 계속해서 지켜온 원칙이다. 그리고 하승은 6시 15분에 명상과 요가를 한다. 6시 45분이 되면 하승은 토스트기에 토스트를 넣고 씻으러 간다. 세면을 하는데에 필요한 시간은 5분이다. 하승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토스트를 입에 넣고 머리를 말리러 간다. 머리를 정돈하고 얼굴에 로션 등을 바르는 데에는 5분이 채 안 걸린다. 어느 정도 몸을 정돈한 하승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시고 컵을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입어야 하는 옷은 전날 미리 정해놨기 때문에 하승은 재빨리 옷을 갈아입는다. 이렇게 모든 정리를 마치고 나면 7시 10분이 된다. 여기까지 시간 오차는 없으며 하승은 매일 아침 7시 10분에 출근을 시작한다. 주말에도 똑같은 스케줄로 움직이며 단지 7시 10분 이후의 일정이 많이 다를 뿐, 하승이 시간을 안 지키는 경우는 없다.

하승은 월 단위로도 스케줄을 미리 정해놨다. 그의 달력에는 매달 며칠에 해야 하는 일들을 수두룩하게 적혀있었다. 그가 월 1회 반드시 지키는 스케줄 중 하나가 바로 이발이었다.

하승은 머리를 기르지 않고 짧게 커트를 하는 것을 선호했다. 머리가 길어지면 머리를 감고 말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하승은 그 모든 것들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길어짐에 따라 미묘하게 머리를 말리는 시간이 달라지게 때문에 하승은 이런 변수들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래서 하승은 매달 둘째 주 일요일을 이발을 하는 날로 정했다.

하승은 오늘도 이발을 하러 단골 미용실로 갔다. 매달 찾아오기 때문에 미용실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거의 대부분 하승을 알고 있었다. 하승의 담당 미용사는 리아쌤이라는 사람이었다. 리아쌤은 5년째 매달 하승의 머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리아쌤은 하승이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명백히 알고 있었다. 하승이 요구하는 스타일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하승은 의자에 앉자마자 리아쌤과 간단한 스몰토크만 하고 그 이후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승은 미용실에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승이 지금 미용실에 정착하게 된 것도 리아쌤이 하승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지 않고 편하게 대해주기 때문이었다. 리아쌤도 사실 하승 같은 사람이 편했다. 간단한 커트라서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지만 자주 방문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말도 별로 할 필요는 없어 리아쌤 입장에서는 하승 같은 손님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커트를 마무리하는 데는 보통 20분 정도가 걸렸다. 하승은 정돈된 머리 상태를 보고 만족해하며 리아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리아쌤은 익숙한 듯 ‘다음 달에 봐요’라고 하승에게 인사했다. 계산을 마친 하승은 미용실을 빠져나와 미용실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셨다. 머리를 하고 옆 가게에서 커피까지 마시는 것이 하승이 매달 지키고 있는 스케줄이었다. 두 가게가 모두 문을 닫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하승은 매달 이 일정을 지킬 예정이다.

이발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하승은 꼭 다시 머리를 감았다. 이미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서비스를 받고 온 다음이었지만 하승은 찝찝하다는 이유로 다시 머리를 감았다. 하승은 그렇게 두 번은 감아줘야 얼굴 어딘가 묻어있을 잘린 머리털을 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승은 머리를 말리며 거울을 봤다. 그리고 오늘 자른 머리가 어떤지 상태를 꼼꼼히 체크했다. 하승은 여기서 무언가 오차가 있으면 굉장히 불쾌해했다. 하지만 리아쌤도 5년 동안 하승을 다뤄왔기 때문에 여기서 오차가 발생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승은 거울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도 모두 하승의 정해진 스케줄이었다. 하승은 단지 이발을 하는 스케줄뿐만 아니라 이후의 리액션까지 모두 머릿속에 정해놓고 행동했다.

이 모든 정해진 일정이 끝나면 하승은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잤다. 정확히 20분 동안의 낮잠이었다.  이 역시 하승의 계획이었다. 하승은 그렇게 8월 둘째 주 일요일도 그가 정한 데로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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