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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15. 2022

8월 15일 토마스 리의 하루

재미교포

토마스는 진협이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밖에서 사용한 적이 없었다. 토마스에게 진협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뿌리를 위한 이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토마스의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할아버지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직장까지 얻는 데 성공했지만 한국 생활을 그리워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한국으로 돌아왔고 자연스럽게 토마스의 아버지는 학창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야 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토마스의 할아버지가 한국을 그리워한 것처럼 미국에서 태어난 토마스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결국 토마스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마침내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정체성에 힘들어했지만 겨우 미국 생활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토마스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바로 토마스의 어머니였다. 토마스의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미국에서만 산 재미교포 3세대였다. 한국말을 하면 알아듣기는 했지만 의사표현은 할 수 없었으며 한국인으로의 정체성보다는 미국인의 정체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둘의 사랑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둘은 결혼을 했고 4년 뒤, 토마스가 태어났다. 

토마스는 태어나자마자 진협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토마스의 할아버지는 토마스가 집안의 항렬을 쓰기를 원했고 진협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것을 아들에게 강요했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군말 없이 자신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지만 토마스의 어머니는 그런 것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진협이라는 이름은 토마스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이후로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할아버지만이 진협이라고 손주의 이름을 불렀다. 토마스는 자신의 한국 이름이 진협이라는 것을 알기는 알았지만 발음도 어렵고 한글로 쓰기도 어려워 귀찮아했다. 

토마스는 집안에서도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많이 썼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한국말을 조금 더 익숙했지만 아내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사용해야 했기에 토마스도 자연스럽게 영어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토마스는 한국말 자체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아버지가 가르쳐준 몇 개의 표현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게다가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는 토마스 집안의 분위기 때문에 토마스는 한국, 혹은 한국인과 인연을 맺을 일이 거의 없었다.

토마스는 미국 대통령의 이름과 순서를 모두 외울 수 있었지만 한국의 역사는 알지 못했다. 집안에서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아버지뿐이었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아들이 한국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뿌리는 어느 정도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아주 가끔 토마스의 아버지는 한국의 역사를 토마스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다가 토마스는 아버지 일 때문에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게 되었다. 코리아타운에서 산 것은 아니었지만 토마스의 집은 예전보다 한국인들과 더 많이 교류하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싶었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마저 부정한 것이 아니었던 토마스의 아버지는 오히려 이사를 간 것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8월 15일이 되자, 토마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국의 독립기념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토마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토마스는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에 대해 모두 이해하고 공감한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어떠하였고 광복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다. 토마스는 언제가 기회가 되면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토마스의 할아버지는 완벽한 한국인이었고 토마스의 아버지는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 있었다. 토마스의 어머니는 한국계인 미국인이었고 토마스는 역시 그러하였다. 다만 토마스는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조금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알아갈 수 있었다. 토마스는 앞으로도 미국인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토마스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한국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땅에서 사는 수많은 교포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토마스의 아버지는 자신의 후손이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기를 바랐다. 비록 자신은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기를 원했지만 그로 인해 정체성이 흔들렸던 것을 바로잡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토마스에게 한국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앞으로도 자신의 후손에게 계속되기를 원했다.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토마스는 이제 그러한 것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는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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