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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16. 2022

8월 16일 임강민의 하루

대학원생

대학원생에게도 방학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있긴 했다. 

대학교에 가면 절대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는 대학교도 모자라 대학원까지 가게 된 가방 끈 긴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 목표라는 게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대학원생으로 지낸 지 고작 1학기가 흘렀을 뿐이지만 나는 내가 무슨 이유로 대학원에 갔는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때려치우고 취업을 하고 싶었지만 막상 취직하려고 하니 자신이 없어졌다. 그저 난 공부만 오래 한 백수였다. 

대학원에 가면 교수님과 열띤 토론을 하고 뛰어난 동료들을 만나 세상에 없던 발견을 하고 세상이 존경하는 지식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교수님의 심부름을 하느라 하루가 모자랐고 알아듣기도 힘든 공부를 하느라 밤을 새워야 했고 동료들은 전우가 되었으며 세상은 나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한 학기가 끝나고 마침내 방학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학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지도 교수님은 나에게 9월에 있을 학회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이것저것 시키고 본인은 가족들과 잠시 여행을 떠났다. 덕분에 나는 매일 연구실에 출근해야 했다. 그래도 우리 교수님 정도면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서는 인격자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는 아주 개인적인 심부름은 적어도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학교에 가야 했기에 이른 점심을 먹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친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보다 4살 많은 형이었는데 그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 형은 학교의 지박령이라 학교에 무조건 있는 사람이었다. 나하고는 굉장히 친해서 이제는 친형제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나는 학교 안에 있는 카페에 앉아 형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구의 남자가 등장했다. 바로 형이었다. 그는 예전에는 운동을 꽤나 좋아했지만 이제는 매일 연구실에만 틀어박혀있고 야식만 먹기 때문에 살이 굉장히 많이 찐 상태였다. 나는 그에게 그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라테를 내밀었다. 

이 형님하고는 대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즉 대학생 시절부터 석사 시절까지 계속해서 내 선배인 사람이다. 처음에는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었지만 성격이 비슷해서 금방 친해졌다. 덩치만 산만하지 실제로는 순박한 사람이었다. 나하고는 못 하는 이야기가 없었다. 아 한 가지 이야기는 안 한 것 같다. 나보고 대학원에 오지 말라는 말은 이 양반은 절대 안 했다. 나는 진정으로 위했다면 대학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지….

대학원에 오고 나서야 이 형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석사를 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석사를 마치고 박사까지 스트레이트로 하는 형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아주 가끔 나에게 짜증을 낼 때가 있었는데 다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학원 생활은 맨 정신으로는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사람은 공부를 굉장히 잘했다. 논문이나 자료를 쓰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교수 사이에서 이쁨을 받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형은 우리 학교에서 교수 자리를 넘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는 것이 필수였다. 그래서 형은 밤새워 연구를 하면서도 미국으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구나 똑같은 24시간이 주어진 다지만 이 형이 하는 일을 보면 이 형에게는 하루가 48시간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는 형의 혼은 이미 반쯤 나가 있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형은 가벼운 리액션만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연구실로 다시 가봐야 한다고 했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자의 연구실은 같은 층에 있었다. 나는 형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연구실로 들어갔다. 

연구실마다 교수의 취향이 묻어있는데 우리 지도 교수님의 방은 클래식 음악으로 가득했다. 그는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해서 꽤나 고가의 스피커를 연구실에 들여놨다. 평소에 우리 교수님은 출근하자마자 의자에 앉아서 5분 정도 무언가를 고민한다. 무슨 엄청난 고심 거리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고 아침에 들을 음악을 고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 듯 그날 들을 자신이 들을 음악을 튼다. 그리고 그는 하루 종일 그 음악만 듣는다.  나는 강제로 같은 음악을 하루 종일 듣게 된다. 

한 가지 더 짜증 나는 점은 스피커의 애매한 볼륨이다. 실제로는 엄청난 출력의 스피커지만 우리 교수님은 다른 방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까 봐 작은 소리로 음악을 듣는다. 그렇다고 내 자리에서 아예 안 들리는 것은 아니라서 내 귀에서는 굉장히 애매한 크기의 볼륨으로 들린다. 신경을 안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 신경 쓰이지도 않는 그런 상태다. 그러면서 교수님이 가끔 나를 불러 뭔가를 시키기 때문에 귀를 아예 막고 있을 수는 없다. 클래식 음악을 안 좋아하는 나는 가끔 정말 음악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은 때가 있었다. 

오늘은 교수님이 없었기 때문에 연구실은 굉장히 조용했다. 가벼운 에어컨 소음과 교수님 책상 뒤편에 있는 작은 냉장고의 일정한 소음만이 연구실을 메우고 있었다. 나는 카페에서 가져온 남은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를 켜고 어제 정리하던 자료를 다시 살폈다. 방학 때 학교에 오는 것이 굉장히 싫긴 하지만 막상 조용한 곳에서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오니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2시간 정도 공부 겸 자료 정리를 하고 있을 때, 대학원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도 지금 학교이니 잠깐 수다나 떨자는 것이었다. 나는 연구실에서 나와 동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동기는 오늘도 자기 지도 교수님 욕을 했다. 동기의 지도 교수님은 굉장한 꼰대였다. 정작 내가 대학생 시절에는 좋은 교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학점도 빡빡하게 주지 않고 학생들에게 잘해주는데 누가 그를 싫어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대학원에 오니 그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는 대학원생에게는 그의 꼰대력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를 막대함은 물론이고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대학원 생활을 1한기 만에 그만두는 선배도 봤다. 그리고 그는 개인적인 심부름도 시켰다. 특히 내 동기는 그의 개인적인 심부름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했다. 결국 동기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지도 교수님을 욕했다. 

동기의 푸념을 듣고 있을 때, 다른 동기들도 학교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오늘은 우리 동기들끼리 스터디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음 학기를 앞두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었다. 한 학기 동안 여기저기서 털리고 나니 우리끼리라도 뭉쳐야 한다는 일종의 전우애가 생긴 덕분에 우리는 방학 동안 일주일에 1~2번 모여서 같이 공부한 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는 굉장히 학구적인 모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우리의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었다. 

스터디를 마치고 우리는 밥을 먹었다. 이대로 동기들과 어디로 놀라가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오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밥을 먹고 나 말고 다른 동기 2명은 학교에 남았고 다른 동기들은 그 길로 집에 갔다. 

나는 밤늦게까지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는 예비 지박령 2명과 간단히 커피를 마셨다. 커피 좀 적게 마시고 싶은데 그나마 이것마저 없으면 더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밤 10시…. 아직 해야 할 것이 더 남아있지만 그래도 방학인데 오랫동안 있고 싶지는 않아서 가방을 들고 연구실 불을 껐다. 내일은 스터디가 없는 날이니 보다 내 일에 집중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학교 건물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낮에 봤는 선배 형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형님은 도대체 언제 집에 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형과 담배를 피우며 신세한탄을 했다.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놀렸다. 그래도 이 형과 동기들이 있어서 대학원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집에 못 가는 형을 위로하고 그리운 나의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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